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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강주일 기자]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과 피바디상을 거머쥔 ‘정글피쉬’까지…. 1990~2000년대 안방극장을 수놓은 KBS 히트작 뒤에는 늘 그가 있었다. 1995년 KBS 예능국에 입사해 ‘슈퍼선데이’, ‘서세원쇼’, ‘개그콘서트’, ‘이소라의 프로포즈’ 조연출을 거쳐 ‘반올림’ ‘정글피쉬’ 등을 통해 유아인·고아라·김수현·박보영을 발굴해 낸 예능·드라마 연출가 김정환 PD(현 KBS 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그는 연출자로 안주하지 않았다. 미국 USC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편성·사업·전략 부서를 거쳤고, 2016년 KBS 전사 조직개편을 이끌었다. 2,030만 구독자를 거느린 KBS WORLD 유튜브를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한류 플랫폼의 폭발력을 경험한 뒤에는 서강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최근 저서 『AI 시대의 공영 미디어 전략』을 펴낸 그를 8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에서 만나 30여 년 궤적과 공영방송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카이스트(KAIST) 경영과학도였던 그는 대학 3학년 시절 기숙사에서 우연히 본 20부작 다큐멘터리 ‘TV 문화기행’에 매료돼 진로를 틀었다.
“학교에 다닐 때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고민이 컸어요. 신촌문고에서 진로 관련 책을 100권 넘게 읽으며 고민하다 ‘PD를 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죠. 공학적 시스템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제 마음 속에 생기더라고요. ‘사람이 왜 의미와 재미를 찾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거친 그는 청소년 드라마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상업성과 시청률 면에서 소외받던 장르였지만 공영방송 PD로서의 자존심이 작동했다. 그는 “당시 공영방송 KBS에 제대로 된 청소년 프로그램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공영성과 경쟁력은 대립하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어야 공공성이 살고, 공공성이 살아야 콘텐츠 경쟁력도 유지된다”고 단언했다. 그가 제작한 ‘정글피쉬’는 결국 피바디상까지 받았다.
“제작자로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반올림’이 국내 시청자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정글피쉬는 국제적인 성과를 거둬서 자신감이 높아졌죠. KBS도 국제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때 피바디상을 같이 받은 작품이 미국 HBO의 ‘안투라지’였는데, 이 작품 한국 버전의 작가가 ‘정글피쉬’를 썼던 서재원 작가에요. 서재원 작가는 ‘손더게스트’ ‘동궁’등을 쓴 유명 작가가 됐죠.”
스타 캐스팅 비화도 풀어냈다. ‘반올림’ 시절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유아인에 대해 “처음 주인공 회차를 찍을 때 카메라 앞에서 손과 입술을 파르르 떨 정도로 긴장했다. 60회 가까이 찍고 쫑파티를 할 때 내 목을 붙잡고 펑펑 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정글피쉬 1’의 주역 김수현과 박보영에 대해서는 “김수현은 눈빛이 너무 좋아 ‘저 눈 때문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박보영과 세워보니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이 완벽하더라”고 전했다. 또 고경표에 대해선 “‘정글피쉬 2’ 오디션 당시 ‘이번에 떨어지면 진짜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배수진을 쳤는데, 다행히 잘 풀려서 이민을 안 갔다”며 ‘아빠미소’를 지어보였다.
스타 PD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왜 경영학으로 눈을 돌렸을까.
“좋은 PD 몇 명이 좋은 작품 몇 편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도 중요하지만 제작을 둘러싼 시스템이 방송사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MBA를 간거죠. 기획·투자·제작·유통이 하나의 산업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했습니다.”
그는 할리우드와 가장 밀접한 USC를 택해 MBA를 하면서 School of Cinematic Art의 ‘Business of Entertainment’과정을 함께 수료했다. 그는 “미국은 기획 단계부터 로컬과 인터내셔널 시장을 철저히 나눠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다는 점을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시야는 한국으로 돌아와 2016년 KBS 조직개편으로 이어졌다. 제작 부문에 프로덕션(스튜디오)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브랜드마케팅부를 신설하며 편성 전략을 대폭 강화했다. 이는 2017~2018년 KBS의 흑자 전환을 견인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국제방송국장 시절에는 KBS WORLD 유튜브 채널을 총괄하고 K-POP 월드 페스티벌을 주도하며 글로벌 플랫폼의 위력을 직접 목도했다.
“2022년 KPOP월드 페스티벌 대회에서는 칠레출신 참가자가 우승을 했는데, 이때 우승자가 칠레 대통령을 만날 정도로 K POP에 대한 열기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납니다. 그러니 KBS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기대감도 더욱 커졌죠.”
그는 최근 화두인 AI에 대해 방송의 본질적 변곡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단방향 지상파 레디오 프리퀀시(RF) 기술에 머무르면, 쌍방향 인터넷 프로토콜(IP)과 알고리즘 추천을 앞세운 글로벌 OTT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 사례를 들며 공영 미디어의 뼈아픈 실책을 지적했다.
“수많은 경찰 인력과 국민 세금이 투입된 국가적 문화 행사를 유료 글로벌 OTT에만 내주고 지상파가 중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온 국민이 방송을 함께 보며 문화적 자긍심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책무가 아닐까요. ‘뮤직뱅크’ 제작진처럼 압도적인 카메라 연출 역량이 있었음에도 플랫폼 협상력과 재정 한계로 이를 놓쳤습니다. 공영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설득해 국내 송출권을 확보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연구위원은 AI 시대에 공영방송의 존립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고 역설했다. 그는 “AI가 조작된 정보와 ‘슬롭(Slop·저품질 쓰레기 콘텐츠)’을 쏟아낼수록 사람이 검증하고 책임지는 콘텐츠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KBS는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신뢰의 기준이자, 테크 산업에 청정 데이터를 공급하는 ‘데이터 그린벨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KBS가 위기를 딛고 도약하기 위한 최우선 선결 과제로는 ‘기업문화 개선’과 ‘통합 인사’를 꼽았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부가 진영 논리로 갈라져 4,000명 직원 중 절반만 일하는 구조로는 어떤 첨단 전략도 작동할 수 없다. 줄 서기와 사내 정치를 배격하고, 철저히 능력과 전문성에 기반한 통합 인사를 단행해 무너진 조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음속을 돌파하려면 엔진뿐 아니라 부품 전체를 갈아 끼워야 하듯, 사명부터 멀티플랫폼 스튜디오 체제, 기업문화까지 싹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