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조 1682년, 창귀가 판을 치던 조선 땅.
‘매.난.국.죽’의 큰 어른들의 뜻으로 창귀를 이용해 범을 치는 ‘범을 잡는 무당’이 생겨났어.
창귀를 만드는 범은 100년은 족히 산 악령으로 사람을 잡아 자신의 발 아래 두는 파렴치한이었지. 그들은 범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당이 아닌 이상 그들을 쉽게 알아차릴수 없었어.

게다가 첫 사냥 때만 나서고 후에 모든 창귀는 발 아래에 둔 잡것들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매일 밤 고을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었어.
*

“흐끅,흐읍..히끅,흑..”
서 가의 연화. 緣花. 인연 ‘연’ 자에 꽃 ‘화’. 꽃 같은 인연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아이는 날때부터 옆구리에 붉은 반점과 함께 신기가 타고나 말문이 트이고 5살이 되던 해, “아저씨! 어찌 아저씨는 어찌 용이 자리를 튼 자리에 앉으려 하십니까?” 라는 말을 좌의정 박씨에게 했는데 그로 한달 뒤 좌의정 박씨가 역모를 꾸며 처형 당했어.
이 소문을 들은 고을 사람들은 그 아이를 소름 끼쳐 할 정도였어. 다른 고을 사람들을 보면 다음 일을 척척 맞추니 말이야.
곱상히 생긴 딸자식을 궁에 보내 중전감은 못 되더라도 후궁첩지는 받을까 기대했던 아비는 그 아이가 참으로 못나보였지. 그래서였을까, 심지어는 형제들을 시켜 아이를 못살게 굴기까지 했어.
“그만해..!!”
“귀신이나 보는 잡것아! 내가 왜 귀신의 말을 들어야하는지 모르겠구나. 썩 꺼지거라!”
“난 귀신을 보지 않아! 나는 그렇지 않단 말이야!”
“잘도 거짓을 고하는구나. 이 벌레 같은 잡것아. 원님께 일러바치겠다!”
7살이 된 아이는 5살의 아우에게까지도 ‘잡것.’ 이란 소리를 들어야했지. 밤마다 울며 지내는 것도 어느새 아이의 일상이 되었어.

“연화야. 밤은 위험하니 해가 지거든 안으로 들어와 꼼짝 말고 있거라. 응?”
“예. 어머니.”
그 아이를 챙겨주는 건 부모와 6남매 중 유일하게 어미뿐이었어. 그만큼 아이도 어미를 잘 따랐고 말이야. 기댈 사람이라곤 하나밖에 없으니 더 그랬던 거겠지.
“어머니 오늘도 신당에 가십니까?”
“그래야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느냐?”
“저도 따라가면 안됩니까? 홀로 이리 있으면 두렵고 눈물이 납니다.”
“허나 밤은 창귀가 득실대어 위험하다 하지 않았느냐.”
“어머니께서도 가시는 길을 제가 못 간단 말씀이십니까?”
“귀한 딸 아이를 창귀에게 뺏길 수 없는 법이지. 어서 안채로 들어가거라. 새벽녘이 오거든 다시 내려올 테니.”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냐.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 밤이 늦었다.”
그런 아이의 어미는 달이 밝을 때 신당에 가 항상 빌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이의 기구한 팔자를 닫아주리라 굳게 믿었지.
*
하루는 아이가 방 안에서 자수를 두고 있을 때였어. 어깨가 뻐근한 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집에서 부리던 노비 하나가 아이에게 다가와 큰도련님 그니까 아이의 첫째 오라버니가 아이를 찾는다 전했어. 이유를 물으니 고개를 설설저으며 잘 모르겠다 답하는 노비였지.

유난히 작았던 아이의 방 문을 여니 소복히 쌓인 눈이 보였어. 아이의 방에서 제일 떨어진 곳으로 향해 작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리고 주머니 하나가 던져졌어.
툭-
“이게 무엇입니까..?”
“장터에 나가 막내가 먹을 유과를 사오거라.”
“네..? 싫습니다.. 누이들도 있고 아우들도 있고 심지어는 오라버니도 계신데 왜 저만 나간단말입니까? 저는 방에서 자수를 두려 했단 말입니다..”
“대장부는 밖에 나가 심부름 하지 않는다. 어찌 사내가 장터에 나간단 말이냐. 더구나 곱상하게 생긴데다가 누구처럼 기괴한 팔자를 지니지 않았는데 몸에 생채기 하나 나면 어쩌려 밖에 나가느냐.”
“저는 기괴하지 않습니다.. 저도 몸에 상처 하나 나는 것이 싫습니다…”
“시끄럽구나. 누이들은 후궁첩지 심지어 이 나라의 국모가 될 수도 있는 몸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 하나 없겠지.”
“그럼 제 자수를 태우지 않겠다 약조해주세요..”
사실 아이는 장터에 나가는 게 싫진 않았어. 사람들 시선이 불편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래도 아이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이 삭막한 집보다 따듯했거든. 다만 만들던 손수건이 태워질까. 그게 싫었어.
“쯧쯧.. 그 자수가 불길하여 어디 쓰일 수나 있겠느냐? 태우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깟 자수가 뭐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기 전에 어서 나가거라!”
문이 쿵 하고 닫히고 뒤를 돌다가 아이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어.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났지만 울 수 없었지. 거기서 울었다면 시끄럽단 소리를 들을 것이 뻔 했기 때문이었어. 아이는 주머니를 작은 손으로 꼭 쥐고 어머니께 장터에 가자 말을 하려 어미를 찾았어.
눈이 쌓인 마당을 걸어 사랑채 앞 까지 갔어. 아비의 방이라 숨을 죽이고 발소리마저 죽인 채 지나가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렸어. 무슨 말을하는지 잘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어미의 목소리였지.
“…오늘이…날이에요…”
“달이…하도록 해…”

귀를 더 기울여보려 했는데 마당 뒷편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아이는 장터로 뛰어 나갔어.
*
“연화 왔느냐?”
“아저씨께서는 오늘도 나와계시는군요!”
“허허. 당연하지. 오늘도 유과를 사오라 시키던?”
“네..”
“기특해라.. 기분이다! 오늘은 저번보다 많이 주마.”
“감사합니다!”
유과는 거의 주마다 사러 가다보니 유과가게 주인장과 아이는 서로 안목이 있는 사이었어. 사람들이 아이를 손가락질 할 때 품어준 몇 안되는 어른이기도 했고 말이야.
그때였어. 콧노래를 부르며 유과를 소쿠리에 하나하나 담아주던 주인장 보던 아이의 머리 위로 소금이 와르르 쏟아졌지. 아이는 소리를질렀어. 이를 보고 주인장은 빠르게 아이를 끌어안고 자기 뒤로 숨겼어.
“연화야!! 할매! 뭐하시는겁니까?!”

“저저 소름끼치는년..!! 죽지도 않고 또 장터에 나왔구나! 고을을 다 망가트릴년.. 쯧쯧.. 나라가 어떻게 될런지.”
“얘가 할매한테 뭔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시는데요! 아직 애입니다! 7살 먹은 애라고요!”
“얼씨구. 편을 드는게야?! 귀신씌인 년을 뭐라고 감싸?! 재수가 없을라니까.”
“나는 귀신을 보지 않아요!! 않는다고요!! 씌이지도 않았고 난.. 나는..!!”
아이는 울며 소리쳤어. 밥도 잘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아이가 그렇게 악을 쓰니 노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혀를 차며 아이를 지나쳤지.
그 모습에 주인장은 우는 아이를 안고 토닥였어. 머리에 앉은 소금도 살살 털어주며 말했지.
“연화야. 괜찮느냐?”
“아저씨.. 아저씨..”
“괜찮다. 잘했어. 다친데는 없느냐?”
“예.. 괜,찮습니다..”
“유과를 가지고 가거라. 누가 뭐라든 대꾸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거라.”
“예..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주에도 보자꾸나.”
늦으면 장터에서 그런 말을 듣고 집에가서 더한 말을 들으며 얻어맞을까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걸었어.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들려오는말이 싫었지만 얻어맞는 게 더 싫으니 아이는 꾹 참고 집으로 향했지.
*
집에 가는 길 저리던 어깨가 빠질 듯 아파왔어. 무서운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고 아이는 힘껏 달려서 집으로 향했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소리를 질렀어. 가지고 온 유과는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고운 옷엔 흰 눈이 묻었지. 아이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아이는 눈을 꽉 감았어.
새 하얀 눈이 자리잡고 있던 마당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록 많은 검붉은 피로 물들었고 사랑채 문은 저 멀리 날아가 있었지. 그 안에 있을 무언가는 말도 하기 싫었어. 차마 말할 수 없는 광경에 아이는 숨이 넘어갈듯 울었지.
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니 다리 한 쪽을 잃은 어미가 몸을 벌벌 떨고 있었어.
“어,머니..! 어머니.. 아아..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무섭습니다..”
“네가.. 네가..!!!”
아이의 어미는 하반신을 질질 끌며 아이에게 다가왔어. 어미의 표정은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어. 마치 아이를 탓하는 것 처럼 말이야.
그 순간 방 문이 날아가고 어미는 희고 큰 범에 의해 문 밖으로 끌려 나갔어. 어미의 괴성이 들리고 아이는 까무룩 기절하고 말았어.
*
얼마 후 발소리가 들려왔어. 붉게 물든 눈을 밟고서 아이가 기절한, 문이 날아가버린 곳으로 다가왔지.
저벅저벅 소리가 나고 한 남자가 방 안에 들어왔어.

“참으로.. 안타깝구나..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련.”
그 남자는 아이를 안아들고 집을 나섰어.
아이는 몸을 구부리며 남자에게 안겼고 남자는 아이를 고쳐안고서 피투성이가 된 집을 유유히 빠져나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