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장한 악장이 시작되고 아이의 손이 검으로 향할 때 아이는 끝내 검을 뽑아들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 앉았어. 머리를 쥐고 고통스러운 듯 바닥을 짚었지.
“못하겠습니다..! 머리가.. 머리가..”
“쉬이.. 숨 쉬거라. 천천히. 기가 눌려서 그런다.”
아이의 팔을 이끌어 높은 바위 위로 앉혀 준 태형은 검을 반듯하게 차고서 옷깃을 단정히 했어.
“범의 춤은 범을 홀리는 춤이다. 산신이라 불리우고 족히 100년은 넘게 산 것들의 혼을 홀려야하니 오래 걸릴 수 밖에.”
태형은 아이가 춤을 추던 자리로 향했어.
“너의 혼을 악장에 맡겨라. 다음 동작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넌 충분히 몸에 익혔으니.”
태형의 한쪽 손 끝이 하늘을 향하자 악사가 연주를 시작했어. 선율이 흐름과 동시에 태형은 정말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기 시작했지.

태형의 도포자락이 휘날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 듯 풀들이 흔들렸어. 아이의 머리를 휘날리게 할 정도였으니, 아이는 넋을 놓고 춤을 바라보았지.
악장이 바뀌자 태형은 검을 뽑아들었어. 칼 끝이 목에 향했다가 위험하고 찬란하게 흩어지며 팔 언저리를 훑어보는 모습은 아이를 홀려내기 쉬웠어.

칼을 앞으로 뻗었다가 바닥을 훑고서 다시 칼집에 넣어놓고 다시 팔을 올려들었지. 양 팔이 곡선을 그리며 위 아래로 강물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흔들리고 왼쪽 발이 땅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오른쪽 발은 흙을 훑어 원형을 만들어냈어.
바닥에 살며시 앉아 바닥에 닿은 손 끝으로 자신의 앞을 곡선을 그리며 쓸어 낸 후 도포자락을 잡고 일어나 앞으로 두 발자국 가며 손가락사이로 도포 자락을 흘려내렸어.

옷 자락을 놓친 손끝은 부드럽게 주먹을 쥐며 태형의 앞으로 다가가고 다시 손을 펼쳐 한바퀴를 빙그르 돌던 태형의 가슴 위에 놓여졌어.
뒤로 두 발자국 앞으로 한 번 다시 뒤로 두발자국 걸어간 후 왼 발은 오른발 뒤로 오른 손은 허리춤 뒤로 향했고 가슴 위에 놓인 손은 다시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했어.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지.
“..태형님..”
“홀리라 하였더니 홀려지고 있느냐.”
“저.. 다시 하겠습니다.”
*

“연화야 떨지 말고 응? 제가 다 떨립니다.. 저도 첫범무를 할 때 얼마나 떨었던지.. 그때는..”
“너무 많은 말 말거라. 누가보면 네가 첫 범무 하는 줄 알겠어.”
“아.. 죄송합니다..”
사군자 어르신들의 신당으로 가는 길. 대표 범무당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그 사이로 아이가 타고 있는 꽃 가마가 있었어. 누가 닦아놓은 것인지 산 속임에도 길이 험하지 않았지.
“형님. 그나저나 오늘 첫 범무는 몇이나 된답니까? 사군자 중에서는 한 명씩 나오겠지요?”
“첫 범무는 다섯이고 그 중 누가 인정 받을지는 모르는 것이지.”
“다섯이나요?”
“길무당*(사군자 출신이 아닌 무당)이 키운 아이라 하더라. 길무당이 키운 아이는 잘만 한다면 모두가 인정하나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수아니더냐.”
가마 속에 차분히 앉아 심호흡을 하는 아이가 가마의 창을 열고 산 속 바람을 맞았어. 그러곤 어릴 적 어미가 불러주던 노래를 흥얼거렸어.
*

“어서오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중히 인사하는 이 남자는 대나무 댁의 김 가의 남준. 녹색의 도포를 두른 남자는 시원한 인상과 움푹 패인 보조개가 눈에 띄었지. 그에 태형과 정국은 말에서 내려 가벼운 인사를 나눴지.
“늦은 건 아니겠지요? 어르신들께서는 안에 계십니까?”
“네. 가마는 뒷마당으로 가시고 후엔 안내인을 따라 가시면 됩니다. 대표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죠.”
그 말에 정국이 가마를 말아쥔 손등으로 두어번 두드리며 안에 있을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

“지금부터 말 한마디 할 수 없는걸 안다. 부디 해 왔던 것 처럼, 잘 하거라.”
그 말을 마치자 가마가 천천히 움직였어.
*
“사군자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매화 댁 김 가의 태형입니다.”
“매화 댁 전 가의 정국입니다.”
두 사람은 문 넘어 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신을 벗어두고 신당 안으로 들어갔어. 얼마 지나고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왔지. 계단을내려와 대표 범무당들의 거처로 향했어.
“매화 댁이 도착하셨습니다.”
남준이 그 말을 하고 문을 열자 두 사람이 일어나며 그들을 반겼어.

“오랜만입니다. 인상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반갑게 손을 뻗어오는 이는 국화 댁 정 가의 호석. 이조차 웃음짓게 만드는 미소를 지니고 있었어. 그 미소가 햇살같다하여 범무당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지.

“들어오세요. 추운 날 먼 길 오셨습니다.”
문을 더 열며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하는 이는 난초 댁 박 가의 지민. 차가운 인상에 잘 웃지 않고 그에게 춤을 배우는 무당이면 눈물이 마를 새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어.
하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따스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

“그래서 매화 댁의 아이가 범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죠?”
“내내 궁금했습니다. 어찌 언질 한 번이 없으셨습니까?”
“저로서는 급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범무가 끝나거든 말씀드리죠.”

“것보다.. 그 아이가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는데 사실입니까?”
“탐나십니까?”
“하하. 마치 연인인 것 처럼 말씀하십니다?”
“저에겐 제 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표들은 차를 한 잔씩 하며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이번 해의 범무를 추는 아이 중 제일 큰 기대를 하고 제일 큰 궁금증을 가진 아이니 말이야.
*
큰 기와집 안, 사군자가 만나 담소를 나누고 신께 안녕을 비는 신당이 있는 곳. 그 밖을 나오면 총 스물 다섯의 계단이 있지. 위로부터 5층에는 총 4명의 사군자 큰어르신들이, 10층에는 총 5명의 사군자 대표 범무당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어.
“올 해는 조금 더 화려해진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길 신께서 이번 범무회는 화려하고 상대하게 하라 하시지 않으셨답니까.”
“아무래도 그 아이 때문이겠지요?”

그 아래로 내려와 돌 길을 따라가다보면 물을 만나. 물 위에는 초를 품은 부용꽃(연꽃)이 수를 놓고 있었어. 물길 사이를 지나는 나무 길을따라가면 팔각형의 무대가 나타나지. 곧 아이가 춤을 추게 될 그 무대 말이야.
무대 주위는 물이 둘러싸고 총 네 갈래로 나누어지는 나무 길을 따라가니 사군자에 속한 범무당 300명이 앉아있었어.
총 다섯의 첫 범무자들은 각각의 사군자 범무당들을 뒤로한 채 무대와 가장 가까운 앞 자리에 앉았어.
“5인의 범무당 대표 들어오십니다.”
그 말에 300명의 밤무당들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어. 매화 댁 부터 대나무 댁까지 모두 들어오고 그들이 자리에 앉자 남준이 손을 들어올리자 모든 범무당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자리에 앉았지.
그러고 얼마 뒤 다시 목소리가 울려퍼졌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사군자 어르신들께서 들어오십니다.”
그러자 대표 범무당 5인과 모든 범 무당 300인이 일어나며 무당들은 한 쪽 무릎을 꿇고 무녀들은 무릎을 끓고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어.
그들이 자리에 앉자 범무당들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
“이번 해도 여러분과 범무회를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어르신들은 한 마디씩 하고 안내인이 다세 운을 떼었지.

“보름달이 뜬 오늘. 범이 눈을 뜨니, 그대들은 춤을 추라.”
그 말이 떨어지자 범무회를 시작할 악장이 연주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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