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you came

Episode 1

김태형은 늘 같은 시간에 카페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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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다섯 시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면 문 위의 작은 종이 울리고, 검은 셔츠나 단정한 니트 차림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창가 쪽 두 번째 자리, 벽에 등을 기대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곳. 그 자리는 어느새 그의 자리가 되어 있었다.

서윤은 태형이 들어오는 걸 보면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발걸음, 카운터 앞에 잠시 멈춰 서는 방식까지 익숙했다. 처음엔 그냥 눈에 띄는 손님이었다. 조용한데 괜히 시선이 가는 사람. 잘생겼다는 말이 너무 뻔해서 오히려 하기 싫은데, 안 할 수도 없는 얼굴.

그러다 보니 사장님도 태형을 알고, 서윤도 태형을 알게 됐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으시죠?”

 

서윤이 묻자 태형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수는 적었지만 불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계산할 때마다 꼭 눈을 맞추고, 음료를 받을 때는 작게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식이었다. 별거 아닌데도 이상하게 예의가 반듯했다.

서윤은 컵에 얼음을 채우며 힐끗 태형을 봤다. 오늘도 역시 같은 자리로 갔다. 밖이 다 보이는 널찍한 창이 있는 곳으로.

 

“서윤 씨.”

 

옆에서 컵 닦던 사장님이 낮게 웃었다.

 

“그 단골 손님이랑 친해졌어?”

“누구요.”

“누구긴. 맨날 저기 앉는 분.”

 

사장님 시선 끝에 태형이 있었다.

서윤은 대꾸도 안 하고 컵 뚜껑을 닫았다. 내가 무슨 수로 친해져, 저런 잘생긴 남자랑...

그 속마음을 읽었는지 사장님이 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굴 반반하던데 카페 알바 해 볼 생각은 없대?”

“...모르겠는데요.”

“아깝다. 저 얼굴이면 손님 더 늘 텐데.”

 

서윤은 그냥 웃어넘겼지만, 괜히 귓가가 조금 간질거렸다. 그런 말을 듣고 바로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도 이상해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태형은 창밖만 보고 있었다. 저기까지 들렸을 리는 없는데, 괜히 민망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저녁 손님이 몰리고, 주문이 몇 번 몰아치고, 정신없이 컵을 헹구고 머신을 닦다 보니 어느새 마감이 가까워졌다. 태형은 드물게 오래 남아 있었다. 보통은 한 시간 남짓 머물다 가는 편인데, 그날은 책을 펼쳐 둔 채 거의 마감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다.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서윤이 유리문에 비친 밤빛을 보고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에는 이미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와.”

 

서윤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비 오는지도 몰랐네…”

 

하필이면 그런 날 우산은 집 현관 앞에 두고 왔다. 아침에 흐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고, 바쁘게 나오느라 챙길 생각도 못 했다.

사장님은 오늘 먼저 퇴근을 했고, 남아있는 우산이라고는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주인이 있는지 모를 작고 낡은 우산 1개 뿐이었다. 옆에 있는 저 고급 우산은, 태형이 들고온 것이던가?

 

그때 뒤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태형이었다.

 

책을 덮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밖을 한 번 보고, 계산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서윤은 괜히 아무 일 없는 척 컵 정리를 계속했다.

태형이 문 옆 우산꽂이에서 검은 우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같이 가실래요?”

 

서윤은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놓칠 뻔했다.

 

“네?”

“비 많이 와서요.”

 

태형은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처럼 짧게 덧붙였다.

 

“방향 비슷하면, 같이 가면 될 것 같은데.”

 

서윤이 거절하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왔고, 받아들이기엔 생각보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 네. 그럼 잠깐만요.”

 

태형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마감을 끝내고 카페 문을 잠근 뒤, 서윤은 태형과 나란히 섰다. 우산이 펴지자 빗소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생각보다 우산 아래 공간은 좁았고, 서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조금 안쪽으로 말았다.

 

태형은 말없이 우산을 서윤 쪽으로 더 기울였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굳이 생색내지도 않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서윤은 옆을 힐끗 봤다. 그쪽 어깨가 금세 조금씩 젖고 있었다.

 

“어깨 젖으시는데요.”

“괜찮아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빗물이 인도 위로 튀고, 멀리 차 지나가는 소리만 낮게 섞였다. 둘 다 크게 말을 하는 편은 아니라서 더 조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편하진 않았다.

 

서윤은 우산 끝에 맺히는 물방울을 보다 말고 생각했다.

 

매너 있는 사람이네.

여자친구가 좋아하겠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스스로도 조금 웃겼다. 이름도 잘 모르는 손님인데 벌써 그런 쪽으로 단정 짓고 있는 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잘생기고,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우산도 저렇게 기울여 주는 사람이면 없는 게 이상했다.

 

“항상 오래 계시네요.”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태형이 시선을 살짝 돌렸다.

 

“오늘은 조금 더 있었어요.”

“평소보다요?”

“네.”

 

짧은 답.

서윤은 괜히 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말을 걸어놓고도 갑자기 어색해졌다. 그런데 태형이 뜻밖에도 먼저 말했다.

 

“서윤 씨는 마감 자주 해요?”

 

자기 이름이 태형 입에서 나온 순간, 서윤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다 곧 제 가슴팍의 명찰을 떠올리고 괜히 민망해졌다.

 

“아, 네. 주말엔 거의요.”

“힘들겠네요.”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또 잠깐 침묵.

하지만 이번엔 전보다 덜 어색했다.

 

골목 초입이 가까워졌을 때, 서윤은 문득 아쉬운 기분을 느꼈다. 이대로 집 앞에서 인사하고 끝이면, 내일부터는 또 카페 손님과 알바생으로 돌아가겠지. 조금 전까지 같은 우산 아래 걷던 게 괜히 꿈처럼 흐려질 것 같았다.

 

“저 여기서 조금만 가면 돼요.”

 

태형이 걸음을 멈췄다.

 

“데려다드릴게요.”

“네? 아니에요, 진짜 가까워서…”

“비 많이 오잖아요.”

 

이번에도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게 거절하기 어려웠다.

서윤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앞 골목에 도착했을 때, 비는 아까보다 더 세졌다. 서윤은 우산 아래에서 한 발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감사했어요.”

“아니에요.”

 

태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런데 그 담담한 얼굴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서윤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다 다시 돌아봤을 때, 태형은 아직 그대로 서 있었다. 우산을 든 채, 빗속에 혼자.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말에 서윤은 잠깐 멈칫했다.

 

“네. 그쪽... 도요.”

"태형."

"네?"

"김태형. 내 이름"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멋진 남자는, 씨익 근사한 미소를 지어주곤 "갈게요" 한 마디를 던진 후 미련없이 등을 보였다.

 

집으로 올라와 현관문이 닫힌 뒤에도 서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이 괜히 조금 빨랐다.

 

그냥 단골 손님이었다. 카페에 자주 오는, 조용하고 잘생긴 손님. 그뿐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시간에 카페에 오던 사람이 아니라, 비 오는 날 우산을 기울여 주던 사람으로.

서윤은 젖은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여자친구 진짜 있겠지.”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서윤은 다음번 그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