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uela virtual de Weak Hero] Te hice llorar porque eres bonita.

내 세상은 언제나 흑백이었다.

무엇을 해도 지루했고, 누구를 괴롭혀도 금방 질려버렸다.

그런데 오늘, 그 메마른 종이 위로 아주 낯설고 선명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연시은.

붉게 부어오른 뺨과 함께, 달아오른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아이.

그 무채색의 아이를 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소리 없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제2화. 잘못된 만남의 시작


 

 

 

담임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교실 앞쪽에서 들려오는 조례 시간. 수호는 턱을 굄 채, 제 옆에 앉은 시은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시은은 마치 옆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정면만을 응시하며 미동도 없었다.

 

“반가워, 예쁜아. 이름이 뭐야?”

 

수호의 낮은 목소리가 시은의 귓가를 스쳤다. 시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조차 주지 않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수호의 가슴 밑바닥을 간지럽혔다.

 

“통성명은 해야지. 짝꿍인데.”

 

시은은 여전히 정면만을 응시했다. 시선이 닿은 칠판 어디쯤에 영혼이라도 박아둔 것 같았다. 수호는 입꼬리를 비틀며 조금 더 몸을 밀착했다. 그 무표정한 얼굴이 수호의 묘한 가학심을 자극했다. 수호의 시선이 시은의 붉게 부어오른 뺨에 머물렀다. 창백한 피부 위로 도드라진 상처가 묘하게 시각을 자극했다.

 

“근데... 그 뺨은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시은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으나, 끝내 수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펜을 쥔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수호는 반응 없는 저 얼굴에 억지로라도 파문을 일으키고 싶다는 고약한 충동이 일었다.

 

수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톱 끝으로 시은의 붉은 뺨 위를 아주 느릿하게, 짓이기듯 긁어내렸다.

 

“여길 건들면 말을 하려나?”

 

손톱 끝이 붉게 부어오른 피부를 파고들 듯 자극하자, 시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수호의 손목을 거칠게 쳐냈다.

 

'착-!'

 

날카로운 마찰음이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시은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로 수호를 쏘아보았다. 수호는 제 손목을 쳐낸 시은의 눈에 담긴 노골적인 혐오를 확인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씽긋 웃음을 터뜨렸다.

 

철저히 무시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움받는 게 낫다는 듯, 수호의 눈이 즐겁게 가늘어졌다.

 

“반가워, 짝꿍. 이제야 나를 봐주네?”

 

수호는 시은의 살벌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느릿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시은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에 시선이 머물렀다. ‘연시은’ 세 글자를 입안에서 굴리듯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 묘한 흥미가 서렸다.

 

“아, 연시은. 이름이 시은이구나?”

 

수호는 다시 시은의 눈을 마주하며 덧붙였다. 그 미소는 시은의 분노조차 장난감처럼 즐겁다는 듯 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이름도 예쁘네.”

 

.

 

.

 

.

 

[이한의 시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한은 턱을 괴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전학 오자마자 제멋대로 자리를 옮겨 앉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하는 짓거리마다 눈에 거슬렸다.

 

특히 저 전학생 놈의 손가락이 시은의 붉게 부어오른 뺨에 닿는 순간, 이한은 까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시은이 수호의 손목을 쳐내며 낸 날카로운 마찰음이 조용한 교실에 울려 퍼졌을 때, 이한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대놓고 시은이를 편을 들었다간, 하이에나 같은 반 애들이 시은이를 더 물어뜯을 게 뻔했다. 이한은 최대한 귀찮다는 듯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드륵-'

 

종소리와 동시에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교실 안의 어수선한 소음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이한은 성큼성큼 다가가 수호가 삐딱하게 앉아 있던 책상을 발로 툭, 걷어찼다.

 

“야, 전학생. 너 오자마자 존나 나댄다?”

 

낮게 깐 이한의 목소리가 수호의 귓가에 꽂혔다.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지나치게 날이 서 있는 음성이었다. 수호는 여전히 시은을 향해 씽긋 웃던 얼굴 그대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이한을 올려다보았다.

 

“응? 나?”

 

“아침부터 자리 옮기고 지랄이야, 거슬리게. 적당히 해라.”

 

이한은 시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수호의 눈만 살벌하게 쏘아봤다. 마치 제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수호는 이한의 위협적인 태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시은을 돌아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아, 무서워라. 그지, 시은아?”

 

수호는 비아냥거리듯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시은 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이한의 경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수호의 시선은 여전히 시은의 붉게 부어오른 뺨에 고정되어 있었다.

 

“근데 시은아, 너 이거... 얘가 그런 거지? 딱 보니까 손버릇 안 좋게 생겼네.

 

수호가 이한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툭 던진 말에 이한의 이성이 끊겼다.

 

'드륵-! 쾅! '

 

이한이 수호의 책상을 거칠게 걷어차며 그의 멱살을 한 손으로 낚아챘다. 수호의 몸이 공중으로 들썩이며 끌려 올라왔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에 잠겼다.

 

“야, 내가 작작 하라고 했지.”

 

이한이 이빨을 갈며 수호를 바짝 당겨 세웠다. 살벌하게 타오르는 이한의 눈빛에도 수호는 여전히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동자 속에 서려 있던 장난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서늘하고 날카로운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와... 크큭. 눈빛 봐.”

 

수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낮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이한의 이성을 비웃듯, 수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제 얼굴을 이한의 코앞까지 바짝 들이밀었다.

 

“이러다... 한 대 치겠다? ”

 

낮게 내리깔린 수호의 목소리가 이한의 귓가를 긁었다. 수호는 피할 생각도 없다는 듯, 오히려 턱을 살짝 치켜들며 도발적으로 속삭였다.

 

“그럼 쳐봐. 시늉만 하지 말고 "

 

코앞까지 다가온 수호의 눈동자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히려 '어디 한번 휘둘러 봐'라고 재촉하는 듯한 그 기괴한 정적에 이한의 인내심이 완전히 끊겼다. 이한의 오른 주먹이 터질 듯 꽉 쥐어지며 허공으로 치켜들리려는 찰나였다.

 

'드르륵-'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담임이 들이닥쳤다. 담임은 멱살을 잡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한을 향해 소리쳤다.

 

“이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전학 온 첫날부터 친구를 괴롭혀? 당장 손 안 놔!”

 

담임은 정치인의 아들이자 학교 후원자의 자제인 안수호의 눈치를 살피느라 급급했다. 수호가 전 학교에서 어떤 사고를 치고 왔는지, 왜 이곳으로 강제 전학을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담임에게 수호는 학생이라기보다 모셔야 할 상전에 가까웠다.

 

이한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터뜨렸지만, 담임은 막무가내였다.

 

“수호야,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이한이 너, 오늘 혼 좀 나봐야겠다.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이한은 억울함에 눈을 부릅떴지만,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우면 시은에게 불똥이 튈까 봐 결국 멱살을 쥐었던 손을 거칠게 풀었다. 수호는 옷깃을 정리하며 그런 이한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비웃음을 날렸다. 이한은 교실을 나서며 수호의 옆을 스칠 때, 오직 수호만이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낮게 읊조렸다.

 

“...넌 이따 보자.”

 

수호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거렸고, 이한은 분노를 삭이며 담임을 따라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다시 조용해진 교실. 이한이 사라지자 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수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와, 대박. 너 누구길래 선생님이 이한이만 데리고 가?”

“야, 너 혹시 돈 많아? 집안 장난 아닌가 보네?”

 

아이들이 수호를 둘러싸고 떠들어대는 사이, 시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강우영이 던져버렸던 이어폰을 찾기 위해서였다. 시은의 시선이 수호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이어폰에 닿았다.

 

시은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수호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여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시은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수호의 신발이 이어폰 위를 콱, 내리눌렀다. '직-' 하고,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이어폰 헤드가 바닥에 짓눌렸다.

 

시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시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호를 올려다보았다. 수호는 주변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오직 시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이 아이의 세상에도 나라는 물방울이 번지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이 아이의 세상을 온통 짓밟아버리게 될까.

 

그리고는 소리 없이, 오직 입모양으로만 느릿하게 물었다.

 

‘...왜?’

 

그 짧은 물음 속엔 '왜 그런 눈으로 봐?', '왜 반항 안 해?' 같은 비틀린 호기심이 가득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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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내가 지금 짓밟고 있는 것이 이 아이의 물건이 아니라, 훗날 내가 구걸하게 될 단 한 줄기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내 무채색 세상에 떨어진 건 축복이 아니었다.

나를 서서히 무너뜨리고, 끝내 갈기갈기 찢어놓을 잔인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