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apan belas, kehidupan yang bagaikan bunga

Delapan belas, kehidupan yang bagaikan bunga

중학교를 졸업하고 원래라면 바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맞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여주는 그러지 않았다.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1년의 휴식기간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1년의 시간이 여주에게 있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전이 암흑기라고 한다면 1년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막 들어섰던 현재는 확실히 황금기임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예쁜 이에게 친절하다.

잘생긴 이에게도 모두가 친절하다.

다들 아니라고 하지만, 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우린 아직 그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남에게 주는 평가를 장난과 농담이라고 예쁜 포장지에 포장해서 주곤 한다. 막상 그 속엔 날카로운 칼날들만 가득한데 말이다. 예쁘게 포장한다고 해서 내용물까지 예쁘게 변할 순 없는 것처럼 항상 그것을 선물로 받는 여주의 마음도 괜찮을 리 없었다.

어떤 날은 매일을 울었고

또 어떤 날엔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고자 마음 먹기도 했으며

또 다시 어떤 날엔 억지로 자신을 그 틀에 맞춰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누군가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하며 비아냥거렸으며 다른 누군가는 그냥 그 모습을 인정하고 살라며 같잖은 훈계질을 하였다. 중학생, 한참 사춘기시절 아닌가. 아마 그 시절 자기 외모에 대해 스트레스 받아보지 않은 이는 많이 없을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했고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여렸던 여주는 그 모든 것이 상처로 돌아왔다.

이래도 욕먹어

저래도 욕먹어

그냥 내가 죽기 바라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에 빠졌던 여주는 결국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고작 중학생이, 지나가는 말 하나하나에 그랬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여주는 항상 개구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바란건 따뜻한 위로 한마디였는데 다들 그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뭐 그런 말로 예민하게 구냐.

그래, 여주는 남들보다 예민한 아이였다. 예민하니 눈치가 빨랐고, 눈치가 빠르니 남들이 말하는 속뜻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생각이 참 많은 아이였으니 자존감도 참 낮은 아이였다. 내가 예민해서 그렇구나. 여주는 그렇게 결정내렸다. 아무도 나같은 건 관심도 없고 사랑해주지 않으니,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나는 변해야겠다. 중학생의 김여주는 사라져야겠다.

그래서 여주는 성형을 했다.

성형이 정답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성형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주를 정답이라고 했다.

참 모순적인 일이었다.

눈, 코, 입, 모두 뜯어고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오가며 지나가다 좋은 말 하나씩 던져주고 갔다. 그런데도 성형했다는 사실을 밝히면 다시 여주는 개구리가 되었다. 그러니 숨기자고, 이제 김여주는 없다고. 김여주는 한참 전 장난삼아 돌을 던진 이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더이상 개구리가 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