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림 시점 ]
━ 뭐지, 저 오빠는?
━ 응?
━ 호석 오빠, 가능하다고 생각해?
나는 바로 옆방인 태형 오빠와 여주 언니 방을 가리켰다. 하필 내가 옆을 돌아본 때가 지렁이 안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순간 저렇게까지 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태형 오빠와 분명히 접점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안무를 굳이 해야 하나, 여주 언니한테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가능은 하지···? 뭐 스트릿에서 저런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 진짜? 저게 아무렇지 않은 안무라고?
━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는 안 했는데? 가능은 하다고 했지.
━ 그게 그거지···. 예리라고 했어도 오빠 그런 반응 나왔을까?

━ 에이~ 뭘 또 예리로 비교하냐.
━ 거봐···.
━ 1등 하자고. 그래서 나는 예리, 넌 태형이 딱 휘어잡아야지.
━ 갑자기 그 말 하니까 욕심이 팍 생기네. 잘해보자고. 우리 스트릿으로 보여주자.
[ 원 시점 ]
━ 확실히 구간이 짧다 보니까 금방 한다.

━ 우리가 잘 맞아서 빨리 끝나는 건 아니고?
━ ㅋㅋㅋ그것도 맞지. 잘 맞긴 해.
꼭 1등 해서 지민이랑 데이트하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안무를 만들고, 춤추다 보니 어느새 연습까지 끝나고 있었다. 오로지 여기에만 집중해서 지민이랑 예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할 틈이 없었다. 끝나고서야 보니 옆방은 연습이 한창이었다.
━ 다들 아직 연습 중인 거 같은데 먼저 올라갈래? 더 연습하기엔 무리인 거 같지?
━ 응, 올라가자. 빨리 끝나니까 좋네~ 난 먼저 씻을게.
━ 응~ 나도 씻고 나오지 뭐. 가림이는 언제 끝나려나.
태형이와 먼저 올라와 우리는 땀으로 샤워해서 각자 씻으러 들어갔다. 서로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러브 댄스를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설렘 정도는 오고 감이 있었지만, 호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저 친구로서의 내가 얕은 정정도 같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이번 러브 댄스는 오로지 지민이만 생각하며 임하고 있는데 꼭 1등 해서 지민이와 재밌는 시간을 또 보내고 싶다.

━ 여주는?
━ 아까 씻는다고 갔는데 아직 안 나왔나.
━ 아, 알겠어.
━ 혹시 가림이 봤어?
━ 곧 올걸? 아까 끝난 거 같던데?
━ 알겠어. 고맙다~
씻고 나오니 밖에서 지민이와 태형이가 얘기하는 게 들렸다. 지민이가 나를 찾고 있는 듯했다. 얼마나 안 봤다고 얼굴을 보고 싶어 다급한 마음에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문을 열고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 박지민!!
━ 어? 뭐야ㅋㅋㅋ 머리 안 말렸어?
━ 너 목소리 들리길래. 넌 씻었어?

━ 아직. 얼굴 보고 씻으러 가려고.
━ 진짜~?!
━ 기분 좋아 보이네?
━ 으음? 딱히? 그냥 너 봐서 기분 좋은 건가?
━ 나도. 머리 말리고 나와. 나도 씻고 올게.
━ 알겠어!
나는 지민이를 봐서 기분이 갑자기 막 티 날 정도로 방방 들뜨고 좋아졌는데 지민이는 반대로 되게 차분했다. 내가 안 보고 싶었나? 저 사랑꾼이 나를 안 보고 싶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아침과는 좀 다른 텐션이라 무슨 일이 있나, 예리랑 뭔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이 조금 됐다.
.
━ 어? 언니, 씻었어?
━ 응. 너 잘 왔다.
━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지민이야말로 무슨 일 있어? 둘이 뭔 일 있었어?
━ 엥? 아니? 왜 그러는데?
━ 지민이 텐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이길래. 난 또 둘이 무슨 일 있었나 했지.
━ 집히는 게 있긴 한데···. 둘이 아직 얘기 잘 안 해봤지?
━ 너 안 왔으면 나가서 지민이한테 물어보려고 했지. 왜, 뭔 일인데.
━ 그러면 이따가 대화해봐. 내가 먼저 얘기할 건 아닌 거 같아.
━ 뭔데···. 심각한 거야?
━ 아까 러브 댄스 안무하면서···. 여기까지만 줄게. 잘 생각하고 나가.
그러고는 예리도 씻으러 들어가고 난 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 러브 댄스 안무면 처음에 스킨십 동작 있고, 선택 동작 있고···. 설마 처음 동작 때문에 그런 건가···?! 충분히 오해할 만하고, 지민이가 그랬다면 나도 똑같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 같았다.
.
‘똑똑’
━ 어? 왜?
━ 지민이 있어?
━ 씻고 있는데?
━ 아···.

━ 안에서 기다릴래? 어차피 나 나갈 거라.
━ 어! 그래. 고마워.
이건 내가 먼저 찾아가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판단했다. 저녁 준비하고 그러다 보면 오늘은 얘기할 시간이 마땅치 않을 거 같아서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았다. 얌전히 할 말을 생각하며 지민이 침대에 앉았다.
━ 어? 여주야, 왜 여기 있어?
━ 야!! 옷은 입어야지!!
지민이 목소리에 뒤를 돌았는데 윗옷을 안 입고 있었다. 하긴 내가 방에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겠지만, 너무 놀랐다. 아마 그 선명한 복근 때문에 더 놀란 게 아닐까···. 다 입었다는 지민의 말에 그제야 다시 뒤를 돌았는데, 젖은 머리를 탈탈 터는 모습을 보고 드라마로만 직관하며 느꼈던 그 설렘을 지금 느꼈다.

━ 그래서 왜 오셨을까? 남자 혼자 씻고 있는 방에 들어와서?
━ 아니···. 해명할 게 있어서 왔는데 다 까먹어 버렸어···.
━ 응···? 다 까먹다니?
━ 아, 몰라···. 나중에 말해줄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모습이 뻔히 보였다. 볼은 붉어지고, 눈동자는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으며 손과 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해야 할 말을 머릿속에 다 정리해 두었는데 이것마저 다 까먹어 물거품이 되었다. 박지민이 뭐라고, 저게 뭐가 멋있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도 나를 모르겠다. 지민이는 급하게 나가려는 나를 보고 문 앞으로 뛰어와 못 나가게 막았다.
━ 어디가. 하려던 말 안 하면 궁금해 미치겠는 게 한국인 국룰 아닌가?
━ 난 한국인 아니라 그런 거 모르겠는데···.
━ 뭐? ㅋㅋㅋ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인데?
━ 아, 몰라···. 그런데 진짜 할 말을 나도 까먹어서 그래.

━ 그럼 생각해 낼 때까지 못 나가.
━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 여기 있지?
━ 아까 텐션 안 좋았던 사람 맞아···?
━ 내가?
━ 그냥 요점만 얘기할게. 처음 안무 네가 오해할 만한데 그건 뭐 어쩔 수가 없었어. 나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가사랑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던 거고, 이겨서 너랑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서 그냥 욕심 좀 낸 거야. 네가 서운하면 너도 똑같···,
━ 여주야.
━ ···응?
━ 알겠어.
━ 응?
━ 너 마음 이제 알았으니까 괜찮다구. 해명 안 해도 된다고. 사실 아까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지금 싹- 사라졌다.
━ 진짜?
━ 우리 누구라도 이겨서 꼭 좋은 시간 갖자. 약속.
━ ···약속!
괜히 엄청 걱정했다. 사실 질투 많은 거는 알고 있었는데 이런 면에서는 본인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 이해해 주는 그런 따뜻한 매력도 숨어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원래 배려하고 따뜻한 사람인 거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이 마음은 모른다. 이 상황에서 해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설렜다. 그리고 이 사람이랑 연애하면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그렇게 4일 후 러브 댄스 촬영일 ]
━ 어···? 정국이··· 아니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