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스트] 눈사람.

 

 

 

나는 당신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눈이 유난히도 소복이 내려앉던 어느 겨울,

 

당신의 손끝에서 빚어지고

 

당신의 온기가 숨결이 되어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은이 술에 취해 엉성하게도 만들었던 작은 눈사람은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서 한참동안

그 다 얼어버린 붉은 손끝을, 멀어지는 작은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

 

*

 

 

 

 

" 내가 하지 말랬잖아! 어쩌자고! "

 

" ....... "

 

"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심장에 혈이 돌면 너 죽는다고! "

 

" ...알아. 그런데도 멈출수가 없어. "

 

 

그 작고 엉성한 눈사람은 월직차사의 도움으로 인간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명을 다하지 못했는데 명부의 실수로 죽을 위기에 처한 육신에 자신을 깃들여 일어섰다. 본체는 눈사람이기에 심장에 혈이 돌아서는 안 된다며 감정을 모두 빼앗긴 인간이.

 

그는 3년을 죽어라 노력해 소은의 대학 후배로 입학했고, 항상 곁에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감정이 없음에도 원하고 바란 단 한사람, 소은의 온기 때문에 심장에 혈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장에 혈이 돌면 몸에 온기가 돌고, 온기가 돌면 그는 죽는다.

 

봄이 오면, 눈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듯이.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망설인 적도, 주춤한 저도 없었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남김없이 소은에게 전부 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언제나 제 손끝이 떨리고

태양 밑에 서기가 힘들어져도 내색 한번 없이 거기 있었다.

 

 

" ...괜찮아. 이번 봄은 따뜻할거야. 그저, 어느 순간 한번씩만 떠올려줘. "

 

" 너에게서 태어나 너의 행복이 반드시 찾아오길 바라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

 

" 내 이름을 기억해 줄래? "

 

 

최연준.

그 작고 엉성했던 눈사람, 그 바스라질 육신 안에서 너의 봄을 위한 거름이 되길 바랬던 나는,

최, 연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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