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Villain

※도용 시 사과문 30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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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illain



트리거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01.



끊이지 않는 총격전. 그 속에서 사탕을 빨며 칼자루를 휘둘리는, 상대의 육체를 찔러 난도질을 해놓는 그녀가 보였다.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지 끊이지 않는 웃음과 함께 온몸을 피로 적셔 들어갔다.



"...시시해."



손쉽게 죽어버리는 상대들에 금방 재미를 잃었다. 나를 미치게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쉽게 죽어주지 않는 그런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나는.



저벅저벅 -



"살살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장난해? 세게 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린 건 이것들이라고."



그녀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이 물고 있던 사탕을 그의 입에 밀어 넣었지. 남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 사탕을 입에 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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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한 대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알고 있냐."



엉망이 된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의뢰한 건 본인이지만 뒤처리도 자신이 해야 했기에 늘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그녀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네 입술이 존나 섹시한 거는 잘 아는데."



그녀는 피가 묻은 손으로 그의 입술을 살살 쓸었고, 자신으로 인해 묻은 피를 닦아 주겠다 듯이 그에게 입을 진득하게 맞춰갔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남자의 손은 그녀의 허리로 향했고, 널부려진 시체들 가운데에서 서로의 혀가 얽히고 탐해갔다.



"하아···. 역시 마지막은 네 입술로 마무리를 해야 돼."



사귀는 사이도 아닌, 갑과 을의 관계인 그 둘. 그녀는 가늘게 웃으며 숨을 고르더니 그와 함께 엉망인 이곳에서 벗어났다.



02.



그녀는 어떠한 의뢰든 다 들어준다. 돈만 부족하지 않게 준다면 그 어떠한 의뢰도 내색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그녀일 것이다.



뒷바닥에선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콧대 높은 정치인들조차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다. 그녀를 한 번 본 순간 잊을 수가 없거든.



그녀는 농도 짙은 눈빛으로 남자든 여자든, 자신에게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칼보다 날카로운 그녀의 혓놀림이 많은 이들을 농락 시키고 가지고 논다.



그녀의 이름은 알려진 적이 없기에 모두들 자기들 꼴리 대로 이름을 지어 부른다. 사람을 홀리는 구미호, 꽃뱀 등. 불리는 이름이 워낙 다양하지만, 그 이름들은 다 그녀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기에 헷갈리는 경우는 없었다.



따분함을 없애보려 쉬지 않고 의뢰를 받던 그녀에게, 어느날 색다로운 의뢰 하나가 들어왔다.



"그러니까, 그냥 단지 내가 너랑 연인인 척만 해주면 되는 거다?"



그녀는 처음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고작 애인 행세일 뿐인데 거액을 내게 내민 그 남자에 흥미를 느꼈다. 반반하게 생긴 저 얼굴, 시시할 거 같은 의뢰긴 하지만 이런 의뢰를 수행해 보는 것도 나쁠 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런 의뢰 때문에 선금을 1억이나 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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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어려운 의뢰가 아니라는 건 알지 않나?"



그녀는 의뢰자를 흘기듯 쳐다보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당장 내일부터라고 했지? 내가 준비해야 되는 거 다 말해 봐. 내가 완벽하게 준비해 갈 테니까.



03.



딱히 화장도 잘 안 하던 그녀는 아침부터 화장은 물론, 고데기도 빡세게 하기 시작했다. 옷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돌아볼 정도로 골라 입었지.



"흐응, 내가 봐도 너무 이쁜데?"



남자 여럿 꼬시기 딱 좋았다. 섹시한 그녀의 모습에 어떤 남자가 홀리지 않을까? 여자가 봐도 너무 예쁜데.



칙, 칙 -



마지막으로 향수까지 뿌린 그녀는 집 밖으로 나왔고, 차를 몰며 의뢰자가 오라고 했던 장소로 향했다.



04.



또각또각



걸을 때마다 풍겨오는 매혹한 향.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즐기며,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의뢰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찾았다."



저 앞에서 보이는 의뢰자. 워낙 외모가 잘나서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는 쉽게 잊혀지는 외모가 아닐 뿐더러,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의뢰자 앞에 서있는 여자는 청순한 이미지에, 작고 여리여리했다. 정말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기는 물론, 새하얀 피부를 보니 저 여자의 피로 물들여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만들었다.



"자기야, 나 왔어."



그녀는 곧바로 의뢰자에게 팔짱을 꼈다. 일부러 그의 팔에 가슴이 닿게 만들었더니, 앞에 있던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져 들어갔다.



"왔어?"



의뢰자는 약간 놀란 기색이었지만 금방 연기에 몰입했다. 의뢰자의 말로는 저 여자가 자신의 여친이라고 한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헤어지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의뢰자의 개인 사정은 건들지 않는 게 규칙이니 신경 끄기로 했다.



"이 젖비린내 나는 애는 뭐야?"



그녀의 말에 여자는 발끈하더니 입을 열었다. 도대체 누군데 자신 남친한테 아는 척하시는 거냐고. 그러자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의뢰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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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야. 만난지는 좀 됐지."



여자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꽉 쥔 주먹이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눈에 맺힌 눈물을 보니 안쓰러움이 느껴졌지만, 내 알바는 아니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상황 파악이 안돼?"

"....."



여자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심지어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억울하고 어처구니도 없을 것이다.


어쩌다 이런 남자한테 걸려서 눈물을 흘리는 건지. 그리고 이 남자는 어떠한 이유로 굳이 이런 방법으로 헤어지려는 건지 궁금했다.



"그러게 내가 질척대지 말라고 했을 때 곱게 사라졌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잖아?"



뻔뻔하게 나오는 의뢰자. 사정은 모르겠으나 제3자의 입장으로 봤을 땐 똥 묻은 벤츠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싼 차를 몰고 다니면 뭐 하나?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데.



"...나쁜 새끼."



여자는 의뢰자를 노려보고는 가방을 챙겨 곧장 나가버렸다. 생각보다 쉽게 끝나서 당황스럽다랄까? 난 뭐 뺨이라도 때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걸 굳이 거액을 들여서 헤어지려는 이유가 궁금하네."

"고객의 개인 사정 같은 건 캐묻지 않는 게 규칙이라며."

"쯧, 재미없기는."



칼같이 선을 그어버렸다. 난 규칙을 위해서라도 쉽게 포기를 했고, 의뢰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약속한 돈은 꼭 입금하고, 다시는 마주치는 일 없음 좋겠네."

"...왜지?"

"다음에 만날 때는 의뢰가 아닌 이상은 내가 그쪽을 죽이는 거 말고 더 있겠어?"



누군가가 그쪽을 죽여달라고 의뢰해 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나랑 안 마주치는 게 그쪽한테 좋은 거라고.


그쪽 전 애인이 나한테 그쪽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하는 것도 재밌는 그림이 되긴 하겠네. 물론, 절대 사적인 감정은 없어. 난 의뢰를 받고 그 의뢰를 수행할 뿐이거든.



"돈은 곧 보내 보록 하지."

"좋은 자세네."

"... 다시는 볼 일이 없길 바라."

"잘 지내시길."



그녀는 의뢰자에게 가벼운 눈 웃음을 지어주고는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자신의 만년 의뢰자를 만나러 가야 됐거든.



05.



난 늘 여태껏 단독으로 움직였다. 누군가와 함께 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같이 일하자며 달콤한 제안을 내밀어도 칼같이 거절했다.


이유를 말해보자면 나는 배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말하지. 난 무서워하는 게 없는 독한 여자라고. 이런 내가 무서워하는 게 배신이라는 걸 알게 된 자는 콧방귀를 뀌며 믿지 않을 것이다.


배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만큼 비참한 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파트너 따위도 없을뿐더러, 사람을 절대 믿지 않는다. 물론 내 만년 의뢰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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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왔네."

"빨리 끝났거든."

"빨리 끝난 건 둘째치고, 왜 너한테서 남자 향수가···."

"아~ 의뢰가 의뢰자분의 애인 행세여서 그래."



김석진. 나의 만년 의뢰자. VVIP라고 해도 될 정도로 7년 전부터 나에게 계속 의뢰를 맡긴 자이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의뢰자랄까? 의뢰비도 따박따박 주고, 웬만한 의뢰자들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거액의 의뢰비에 늘 김석진의 의뢰를 우선시했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갑과 을의 관계로 유지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 자를 만나게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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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묵혀뒀던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