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seulnaesaeng
#Short Story 3

라면
2021.03.12Views 83
무작정 오는 버스 아무거나 탔다. 이 동네에 계속 있다가는 너무 억울해서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다, 이건 억울한 감정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갈기 갈기 찢기는 기분이고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다.
"학생! 여기 종점이야!"
버스에서 몇 시간을 있었는지 모르겠다. 종점에 도착해서야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내리라며 나를 흔들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 내려 목적지 없이 또 그렇게 몇 시간을 앞으로만 걸었다.
'99 횟집'
새벽 2시까지 불이 켜져 있는 가게 이름은 99 횟집이었다. 하필 왜 이 집이냐고. 나는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프리지아를 선물하세요~'
하필 왜 프리지아를 사라는 꽃집 광고 팻말이 내 눈에 들어온건지. 짜증이 났다. 어딜 가나 네 생각 뿐인 나인데, 너는 그 사랑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니.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연애한 시간만 13년이다. 그리고 그 긴 것처럼 보였던 13년은 오늘 하루로 모두 끝났다.
'지아♥'
ㄴ 미안해. 변명 할 생각 없어.
아까 지아가 보낸 카톡을 아직까지 못 읽겠다. 이걸 읽으면 정말 우리의 관계가 끝인 것 같아서. 내가 13년동안 사랑한 네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그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임강훈'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오늘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 네가 무슨 염치로 나에게 전화를 거는건지. 분노했지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수신 버튼을 누르고 나는 아무말 없아 핸드폰을 귀에 가져가댔다.
- "······. 성찬아."
강훈이가 울먹거렸다. 본인도 잘 아는거겠지,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죄를 지은건지. 13년동안 연애한 내 여자친구를 너는 빼앗은거니까.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나보네."
- "성찬아···."
"왜 불쌍한 척 해. 지금 제일 불쌍한 건 난데."
-"미안해···. 나도 진짜 참아보려고 했는데···."
"X랄하네 진짜."
-"나 지아 진짜 오랫동안 좋아해왔어. 고등학생 때부ㅌ,"
"야."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차지아랑 연애한 나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냐."
-"······. 성찬아···. 미안해."
"응. 미안하면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마."
-"성찬아···. 제발···."
"야, 임강훈. 너 솔직히, 아니. 마지막이니까 솔직해져봐라."
-"······."
"내가 애들한테 소문 퍼트릴까봐 이러는거잖아."
-"······."
"너 진짜 나한테 미안한 거 아니잖아. 너 멈출 생각 없잖아."
-"······. 성찬아···."
"그러니까,"
13년을 연애했고, 8년을 친구로 지냈다. 13년을 연애한 여자친구가 8년동안 가족처럼 지낸 친구와 바람이 났다. 주변에서는 이정도면 결혼해도 될 것 같다고 우리를 응원했고, 나도 솔직히 그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차지아 너라면, 내 미래와 평생을 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아와의 미래를 잠깐이나마 상상하며 임강훈 너한테 떠들어댔던 시간들이 부끄러웠다. 나를 얼마나 병신이라고 생각했을까. 지 여친 바람난 것도 모르고 결혼에 대해 지껄이고 있었으니. 나를 보면서 얼마나 재밌었을까. 마지막 말을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던 둘을 떨쳐 내기 위한 첫 번째 용기였다.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
-"······."
"우리집에 있는 네 짐은 내일까지 밖에 내놓을게."
-"······."
"이게 지금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
-"······."
"마음 같아서는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어. 네 모든 걸."
-"미안해."
"응, 너는 미안해야해. 평생 미안해하면서 살아, 나한테."
-"ㅁ, 미안해···. 진짜 미안해 성찬ㅇ,"
임강훈이 운다. 전화기 건너로 오열하는 임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도 눈물 몇 방울 흘리고 악착같이 참아오던 임강훈이, 서럽게 꺼이꺼이 울어댄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왜 우는건지 모르겠다. 임강훈을 향한 원망의 눈물인지, 증오인지. 난 진짜 모르겠다. 지금 당장 전화를 끊어야 맞는건데, 방금 그렇게 결심했는데. 막상 끊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겠다. 나는 어느새 임강훈이 우는 그 몇시간을 다 들어주고 있던거다. 또, 바보같이.
-"성찬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
그래. 나는 이렇게 당해놓고도 호구인거다. 사랑하는 사람 둘 앞에서 또 지게 되는, 그런 멍청하고 미련한 병신.
ㅡ
펜트하우스에서 하윤철이 오윤희 배신하는 거 보고
급 소재가 떠올라 쓱쓱 적어봤어요
10년 넘게 사귄 애인이 내 베프랑 바람 난다...?
저같으면 그냥 손 떨려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