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it a try, producing

[Episode 3] The story of breaking a glass in front of Matangz


-다음날-

 

사실, 어제 노아의 녹음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미안하게도. 

머릿 속 가득 우형에 대한 생각 뿐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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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코드 민우형. 


전에 몸 담았던 대형 엔터사 ‘블룸’에서 

프로듀서로 일한지 3년차가 되던 해,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 ‘제로코드’를 맡게 되었다. 

우형은 그 그룹의 리더였다. 


5년의 연습생 생활 끝에 드디어 노래하고 춤 출 수 있어

더 바랄 게 없다는, 그 반짝이던 눈을 잊지 못한다. 


나보다 두 살 어린 그는 내 날선 프로듀싱에 울고 말았는데, 

순간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나를 무서워하고 동경하고 의지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 아이돌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프로듀서인 나에게 

‘남자 아이돌 프로듀싱은 맡지 말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향한 집착은 점점 심해져 

라이브에 커플링을 끼고 나온다던가, 

나와 여행 중 찍은, 내가 희미하게 유리창에 비친 사진을 

SNS에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를 협박했다. 


내 존재가 우형을 망쳐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그래서 그의 프로듀서로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연애 종료를 고른 것이다.


그나저나, 어제 예준이 문자 내용을 본 거 같...


“일찍 오셨네요?”

“히익!”


뒤에서 들려오는 예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과하게 놀라버렸다. 양반은 못 되네. 


“아, 네... 차 밀릴까봐 한 시간 일찍 출발했거든요.” 

“안 밀렸나봐요. 그대로 한 시간 일찍 오셨네ㅎㅎ”

“네, 근데 예준님은 왜 이렇게 일찍...?”

“전 원래 한 시간 일찍 와요. 그럼 조용해서

작업 하나라도 더 마무리할 수 있거든요.”


속으로 리더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아, 그나저나 어제...”


문자 얘기? 역시 봤구나?

아니 그렇다쳐도, 발신자가 누군줄 알고? 


“제 노래 진짜 괜찮았어요? 많이 취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컨디션이 100%가 아니었어서...”


예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아쉬워했다.

노래 얘기였구나. 나 은근 자의식 과잉이네. 


“하아아암~”


뒤에서 하품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노아였다.


“왔어?”

“응? 평상시에 되게 늦게 오신다고 들었는데...”

 

“에? 남예준. 네가 말했지. 내 흉 봤지 프로듀서님한테.”

“나 아니야. 조만간 하려고 하긴 했는데.”

“이쒸, 나보고 한시간 일찍 오라매. 

보민 프로듀서님 기다리게 하지 말자매.

그래서 눈 뜨자마자 바로 왔고만...”


예준의 사전 특명이 있었구나.

외부인인 내가 혼자 먼저 도착하게 되면 어색할테니.  

근데 그렇다고 한 시간씩이나 일찍 나와준다고? 

남예준이란 사람의 인간성과 배려심은 어디까지일까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

 

라운지가 꼭 호텔 라운지바 같네. 

회사 내부는 전반적으로 

멤버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쓴 티가 났다.


음료 냉장고부터 간식 팬트리, 각종 운동기구와 침대까지...

한 발자국도 나갈 필요가 없어보이는 그런 곳. 

속으로 감탄하며 큼지막한 소파에 예준, 노아와 나란히 앉았다. 


“이 원두가 제일 맛있어요.”


예준이 내 앞에 드립커피를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남예준 나는!”

“타 먹으면 되지 않을까? 노아는 뭐가 어딨는지 잘 아니까?”

“와~ 치사해 진짜로.”

“알겠어 알겠어ㅎㅎ 아이스?”


예준은 웃으며 다시 일어났다. 

농담하는 목소리도 다정한데 묘하게 무게가 있었다.

이런 사람이 화내면 무섭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탁 트인 라운지에서 

예준, 노아, 나 세 사람의 회의가 시작됐다. 


“보통 작업하실 때 어떻게 하세요?”

“음, 그냥 모든 단계가 제 마음에 들어야 넘어가는 것 같아요. 

주로 혼자 하는 편이라...”

“블룸 엔터 같은 큰 데서 일하셨는데도요?”

“네, 공동 작업이었던 건 제 데모곡이 아닌 경우고, 

제 곡은 저만 만지는 편이었어요.”

“약간 완벽주의시구나. 와, 빡셀 거 같은데...”

 

“노아야.”


예준이 나지막하게 부르곤 싱긋 웃었다.

워딩이 세게 느껴져서겠지. 

사실 이미 플레이브 콘텐츠를 몇 개 보고 와서 

노아의 워딩이 프리한 편이란 건 알고 있었다.

표현 대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마일드하다는 것도. 


“아 오케이, 죄송해요 프로듀서님”

“아니에요. 진짜 빡세게 하면 돼요.”

“풉!”


노아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내 말 맞잖아 남예준~! 보민 프로듀서님 보통 아니라니까?”

“너 받아주시는 거야.”

 

못 말린다는 듯 예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친구가 표현이 좀 그래도 착한 친구예요.”

“전 편하게 대해주시는 게 좋아요. 

이왕 협업하게 된 거 두분이랑 마구 부딪히면서 하고 싶어서.”

“그래 남예준 네가 너무 벽을 만드는 거라니까?!”

“커피나 닦을래? 네가 뿜은 거.”


예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벌떡 일어서서

휴지를 가져다 주었다. 

노아는 궁시렁궁시렁거리며 테이블 위 커피를 닦았다.

이 둘 정말 친하구나.


“아, 근데 블룸엔터에선 왜 나오신 거예요?”


쨍그랑! 


아직 목소리에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노아가,

편해진 분위기 속 스몰토크 삼아 던진 질문에

바보같이 그만 당황해 버렸다. 

우형에 대한 생각을 겨우 떨쳤을 즈음 

너무 직접적으로 질문이 들어와서였을까. 


그 덕에 예준이 타서 건넨 드립커피가,

아니 ‘아스테룸’ 이라고 예쁘게 적힌 머그컵까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죄송해요.”


벌떡 일어났다가, 일어나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주저앉아 유리잔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손을 거칠게 쳐냈다. 

화난 표정의 예준이었다. 

 

“손 대지 마세요.”

“아니에요. 제가 할...”

“베인다고요.”


잔뜩 찌푸린 예준의 낮게 깔린 음성에 

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세요? 나오세요 일단.”


노아가 내 손목을 잡고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손 봐봐요.”


노아가 내 손을 이리저리 살피고,

온 몸으로 나를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는 동안 

빗자루를 들고 온 예준이 능숙하게 큰 조각들을 쓸어 담고, 

청소기로 완벽하게 마무리까지 끝냈다. 


“죄송해요 진짜...”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예준이 그제야 좀 누그러진 투로 물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내 슬리퍼에 닿았다.

무언가 들어갔을 거라고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소파에 앉아보세요.”

 

노아, 예준 둘 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내 발을 노려보고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숨까지 참게 되었다.

 

 

예준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슬리퍼를 벗기고 내 발을 이리저리 살피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