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t Jeon Jungkook's home.

Season 2 Episode 3

[3]

"어라."

"김태형?"

"우와. 햄님! 나 아는 구나?"

"네. 그런데."

때마침 회사에 볼 일이 있었는지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태형이와 마주쳤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김태형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윤기는 녹음실 안에서 작업에 열중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꾸 머릿속에서 햄이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

'답답해.'

괜한 이야기를 꺼낸 걸까. 생각도 했지만 윤기가 말하지 않았다면 햄이는 쭉 윤기의 마음을 몰랐을 거다.

'그렇지만 모르게 두는 건 억울하니까. 내가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아도 한 번 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다.'

윤기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와중에 녹음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기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정국이 서있었다.

"민윤기."

정국의 부름에 윤기와 정국 사이에 범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태형이는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 나를 보고 잠시 안절부절 못하다가 일단은 보는 눈이 많은 회사를 나와 벤으로 나를 데려갔다.

"대체 무슨 일이? 누구한테 맞았어요?"

"아니요. 맞은 건 아닌데요."

맞은 건 아니라는데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기에 바쁜 내 모습에 태형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울어요?"

"그건 말할 수가 없어요."

"혹시 우리 멤버들이랑 관련 있는 이야기에요?"

"..."

태형이는 뭔가 알고 있는 걸까. 나를 바라보는 태형이는 뭔가 떠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떡하지. 그렇지만 윤기가 나에게 고백했고 연습생인 나는 정국이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정국이랑 윤기형이 좋다고 해요?"

"네?"

"역시. 맞나보네요."

태형이는 내 반응에 거의 확신을 하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사실이랑 달라요."

"에이. 형이랑 정국이랑 내가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그것도 모르게요?"

"그렇지만 정국이는 아니에요. 나 혼자 정국이를 좋아하는 걸요."

"아. 누나는 정국이를 좋아해요? 윤기 형 불쌍하게 됐네."

태형이 나를 너무 편하게 대해준 나머지 나도 태형이를 편하게 생각했는지 속마음이 나와 버렸다. 태형이는 놀라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네요?"

"그야 누나는 정국이 홈마니까요. 정국이 좋아서 홈마한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정국이한테 유리한 게임이잖아요. 구조가."

"그렇지만 팬심이랑은 완전히 다른 마음인 걸요."

"사실 저는 그런 감정에 아직 서투르지만. 팬심도 사랑의 일종이니까요. 이상형에 가까울수록 끌리기 쉬운 것처럼 말이에요."

확실히 정국이를 좋아하는 코드는 달라지지 않았다. 순진무구한 웃음이나 천진난만함,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국이를 여전히 좋아한다.

"그렇군요."

"말 편하게 하자."

"그래도 돼?"

"나도 말 놓을 테니까."

태형이는 붙임성도 좋구나. 왠지 방금 처음 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팬 사인회에서 많이 봤다고 하더라도 태형이는 내가 처음일 텐데.

"근데 나를 어떻게 알아?"

"윤기형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고. 매번 팬사인회에 왔잖아."

"그걸 알아?"

"그럼, 우리는 팬을 소중하게 대하거든."

태형이는 보는 것처럼 따뜻한 사람이구나. 왠지 내가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든다. 역시 좋아하길 잘했어.

"그나저나 혼란스럽겠네. 고백 받은 거야?"

"고백이라기보다는."

"좋아한다는 말 들은 거 아냐?"

"음."

"뭐가 그렇게 애매해? 상대가 누군데?"

"윤기."

윤기형이라면 헷갈리게 하지 않을 텐데. 감정이 누구보다 확실한 사람이니까. 그럼 누나 쪽이 눈치가 없다고 밖에 볼 수가 없네. 왜 태형이 말에 반박할 수가 없는 걸까. 생각해보면 윤기는 나를 특별히 많이 챙겼는데. 나는 왜 한 번도 윤기가 나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렇지만 윤기는 이미 유명한 아이돌이고. 나는 연습생이니까. 며칠 전까지는 팬이었고."

"거리감이 있다 이거지?"

"응."

"윤기형은 그 거리감을 좁히려고 많이 노력했잖아? 잘 생각해봐. 누나의 기분을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몰라. 윤기 형은 세심하거든."

확실히 연습생이 되고 낙하산이라고 괴롭힘을 당할 때도 윤기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는 일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정국이 이야기만 했는데 힘들 때 나를 위로 해주던 사람은 늘 윤기였다.

"그랬어. 그랬던 것 같아."

윤기는 쭉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어. 내가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지. 정국이를 향한 마음은 나의 일방적인 마음일 뿐이다. 정국이는 나 같은 걸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도 않을 텐데. 나를 누구보다 아껴주는 윤기의 마음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윤기와의 일을 떠올리면서도 정국이를 걱정하는 내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은 너무 밉다.

 

정국은 녹음실에 들어선 뒤로 소파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윤기를 마주봤다.

"오늘 햄이가 왜 운거야?"

"그걸 꼭 내가 설명해 줄 이유가 있나."

윤기는 햄이의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인지할수록 정국이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지? 형?"

"뭐가."

"햄이랑 친구이상의 사이 같은 거."

"왜? 그러면 안 돼?"

정국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윤기가 햄이를 많이 아껴서 그냥 아끼는 마음으로 햄이를 달래준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안 돼."

"뭐?"

"안 된다고. 친구 이상 같은 거."

윤기를 향한 정국의 눈동자에 옅은 불꽃이 일렁였다.

 

정국은 연습실에서 홀로 춤 연습에 매진했다. 지금 뭔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속이 불타올라 버릴 것만 같았다.

'왜? 네가 뭔데 안 된다고 말하는 건데?'

'그야 햄이는 이제 데뷔를 앞둔 연습생이고.'

'정말 그 이유야?'

'...'

'그런 이유라면 난 멈출 생각이 없는데.'

정국은 본능적으로 윤기가 자신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국은 햄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하지만 연습생이라는 직위는, 특히 데뷔를 앞둔 상태에서는 불안정한 상태라 어떤 것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정국의 몸동작이 점점 격해졌다. 정국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정말 팬이나 친구라는 관계에 다 담을 수 있는 감정일까. 아니면.'

정국이 춤을 추다 말고 연습실 거울을 마주보고 섰다.

'좋아하는 걸까.'

 

태형이는 내가 진정되자 회사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태형이가 남긴 마지막 인사는 꽤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요.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요. 무려 데뷔를 앞두고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연애잖아."

"위험."

그래. 나는 데뷔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정국이나 윤기의 마음을 완벽하게 거부할 수 없다. 그건 팬심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향한 감정이 변화한 걸까.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어쩌면 그때가 더 나았을지도 몰라. 멀어서 당연히 닿지 않을 줄로만 알았는데 눈앞에 있으니까 자꾸 닿고 싶고 더욱 욕심을 부리게 돼. 어쩌면 동등한 위치에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돼. 어차피 갈 곳은 연습실이겠지만 내 발은 목표점이 없는 것처럼 방황했다. 그러다 무심코 발을 들인 편의점에서 때마침 물을 사고 있는 정국이를 마주했다.

"저기 정국아."

"..."

뭐라도 말해야하는데. 그래야 정국이가 윤기와 내 사이를 오해하지 않을 텐데. 정국이를 부르긴 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정국이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방금 전에 윤기 일은."

어렵게 말을 뗐는데 정국이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내 손을 잡아끌어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 근처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온 정국이는 나를 골목의 벽에 밀어 세웠다. 정국이의 양 팔이 나를 정국이의 품속에 가둬두고 있었다.

"햄아."

"응."

"형이 좋아?"

"그러니까 방금 전에 네가 본 건."

"아니. 그냥 네가 형이 좋냐고."

"정국아."

정국이는 확실한 답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가 아닌 남자로 윤기가 좋냐고 물어보는 거겠지.

"난 무서워."

"..."

"분명히 햄이를 친구처럼 대했는데. 그래서 자꾸 생각나고 자꾸 그립고 보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윤기형이라고 해도 너랑 같이 있는 걸 보면, 나보다 민윤기를 의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아. 정국이는 나만큼이나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네가 지금 중요한 시기라는 거 알아. 그래서 내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정국아?"

"그렇지만 역시 나는 햄이가 좋아."

친구까지가 아냐. 난 이미 그 선을 넘었어. 정국이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귓가로 정국이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 울림이 내 마음 속에 더 큰 떨림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멤버에게 고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