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be a dream

pt.10 Stigma





여름이 식고 가을이 흘러갈 무렵 난 물 흐르듯 그렇게 지냈다.
몇달이 지날동안 한번도 창고 교실에 발들이지 않았고, 제일중 애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아, 아니다. 못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알바가 바쁘기도 했고 뭐.
알바가 아닌 이제 정식 직원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유독 바쁜 나날이었긴 했지만 난 아직 먼지쌓인 피아노가 놓여져 있는 빈 공간 속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악보들도, 어쩌면 시들어버렸을지도 모르는 호석이의 화분도, 혹 너무 낡아 찢겨버렸을지도 모르는 남준이의 책들도.

민윤기도 카페에서 만난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몇달이 지날동안 한번도 작업실에 찾아가지 않았고, 민윤기도 오지 않았다.
몇달 안봤다고 목소리가 기억이 날락말락 했다.
정말 사람은 금방 잊혀지는걸지도 모르겠다.
















송주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 지친다."
창문을 내다보며 창밖 젖은 야경을 보고 있자하니 예뻤다. 하늘이 맑지도 별이 이곳을 수놓아져 있지도 않았지만 어느 하늘이든 이곳이 내 하늘이었다.
라디오를 틀고서는 소파에 기대앉았다.

치지직 거리는 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타고 흘렀다.
93.9MHz CBS FM, 라디오 [새벽밤]의 강 현입니다.

"마지막 사연이 들어왔네요. '민'님이 신청해 주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작업실에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데 잠시 쉴 겸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에픽하이의 fly가 듣고싶어서 신청합니다.' 민님이 신청해주신 에픽하이의 'fly', 저는 이 곡을 마무리로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모두 좋은 밤 보내세요."

'눈을 뜨고 바라봐도 빛은 없고 
꿈을 꾸며 살아가도 길은 멀고 
내 뜻대로 가도 숨을 몰아 쉬었고 
진실을 말해도 돌아섰죠' 

'민', 그 한 글자의 이름과 사연이 겹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단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민윤기구나 그래.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는 음악으로 위로받고 만다.
라디오가 끝마칠 때까지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핸드폰의 밝은 화면 외에는 아무것도 켜진 것 없는 외로운 밤
내가 위로받을 수 있던 이유는 저 너머 작업실을 새벽동안 지키고 있을 민윤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년동안 지내던 것 뿐이었지만, 나는 가족보다 더 많은 위로를 받았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가을비가 내린다. 단풍이 가득한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 앞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때 솔직히 소름이 쫙 돋았다.
현재 새벽 2시가 넘어가고 비가 오는 이 날씨에 혼자 있는 집 안에서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도어 뷰 너머로 쳐다본 밖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비에 젖어있는 태형이었다.
'김..태형?'

'선배. 안에 있으면 잠시 저 좀 도와줘요'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나는 최대한 감정의 변화 없이 자연스레 태형이를 맞이했다.거실 불을 키고 발수건을 놔두고 젖은 머리에 물기를 좀 빼라고 수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옷장을 뒤져 갈아입을 만한 옷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 태형이 젖은 머리로 서 있었다. 

"자 속옷. 이거랑 옷 갈아입고 와"
집에 가족이 없어서 그런거지 있을 옷은 다 있었다. 정리해둔 서랍속 옷을 꺼내어 태형이에게 건냈다.
태형은 군말없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맞아?"

"..네"
보기에는 그럭저럭 사이즈가 맞아보였다. 약간 한 치수 더 큰 느낌. 그래도 뭐 별 상관은 없었다.
"화장실 옆 안에 드라이기 있으니까 그걸로 머리 대충 말려."
나는 가볍게 보일지 모르지만 갑자기 걱정부터 하기에는 아직 난 태형의 상황을 몰랐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쭈뼛거리며 서 있는 모습에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따뜻한 코코아 하나를 타서 태형이에게 주었다. 그러고는 나는 커피를 하나 다시 타 마시기 시작했다.
약간 울었는지 훌쩍이는 모습과 좀 부은 눈이 나 울었어요 하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비오는데 길 안 잊어버리고 잘 찾아왔네"

".....왜 안물어봐요"

"뭘?"

"왜 제가 여기 왔는지요."

"너가 말해줘야 아니까. 그냥 뭐 기다린건데."

"............"

"천천히 말해. 아니면 굳이 말 안해도 되니까. 잘데 없으면 저쪽 안방 안쓰는 데에서 자고."
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씁쓸한 향이 올라왔다.
코코아가 서서히 식어갔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고 태형이는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도망쳤어요. 집이 무서워서"

"어, 그런 것 같더라."

"근데..이제 어떡하죠. 다 내 잘못인데"

"너가 왜"

"누나가...."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어요."

"...그게 과연 네 잘못이었을까"

".........."
민윤기가 설명해줬던 대로, 내가 예상했던대로였다.
말하면서 더 울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눈이 더 부어보였다. 나는 비닐에 얼음 몇개를 담고 눈 위에 올리라고 주었다.

"고마워요."

나는 네모입으로 웃어보이는 그 얼굴이 여전히도 아팠다. 과연 이들의 내일은 어디에 있을까.
과연 우리의 하늘은 있긴 할까.
"아..."
콰과과광. 내가 하려했던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천둥이 쳤다.
나는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려던 한 마디를 다시 삼키고 태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위로를 못하는 나에겐 최대의 위로.
오늘만큼은 걱정하지 말고 푹 자라는 의미기도 했다.

"일단 좀 자둬. 잠도 못잤겠다."

"이쪽방 써요?"
굳게 닫혀있는 문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아니 그 반대쪽 방."

"아 네."

"잘 자고."

"...고마워요 누나."

나는 태형이가 들어가고 난 후에도 그 굳게 닫힌 방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또 새벽은 흘러갔다.
"김태형, 일어나자. 일어나서 밥 먹어."

태형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저벅저벅 걸어왔다.
눈도 못뜨고 멍한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반찬은 얼마 없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
냉장고를 열어 며칠 전에 샀던 반찬을 꺼내고 계란 후라이를 만들었다.

"윤기 형도 그렇고 왜 우리한테 잘해주는거에요?"

"내가 여름방학 때 말하지 않았었나? 그냥 뭐 너네들을 믿으니까."

"그런 말 안했던 것 같은데"

"아, 들켰네......음... 오지랖이라고 해두지 뭐."
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밥을 먹고, 정리하고, 바람쐬는 일들은 내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었고, 일부였다.
누군가 보면 지루한 삶이라 말하겠지만, 내 인생은 그걸로 충분했다.
학교 가방을 챙기고, 학교에 가는 길에 나는 태형이에게 초콜릿을 하나 사 주었다.

"이거 먹어."

"고마워요."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갑자기 창고 교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죄를 대신 받던
연약하기만 했던 너


















ps. 네 10편이 끝났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요? 어쩌면 열린 결말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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