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교복 보러 오신 거에요?
아직 10월이라 교복 살 시점은 아니긴 한데…”
그러게요. 좀 당황하셨을 거 같아요. 전학생이라고 변명을 한다. 이맘때쯤에 전학생이면 이상할 것도 없지.
“아, 어디 교복 찾으세요?”
“신도림고등학교요. 우선 동복을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훈훈하게 생긴 직원 하나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량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봐야 해서요.”
“아, 네!”
13명을 보고 아름다움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뛰어넘을 만큼 꽤 잘생긴 얼굴이다. 일반인치고 꽤나 준수한 편이다.
그 얼굴로 살짝 미소를 짓고 떠나는데 지훈이 오빠처럼 스르륵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나 뭔데 쟤 맘에 안 들지”
순영이 오빤 방금 그 직원이 떠난 자리를 째려보았다
“나도.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가지고…”
정한이 오빠가 저런 말 하는 거 욕 다음으로 처음 봤다. 뭔 얼평을 그렇게 하냐. 썩 좋은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귀여운 질투 정도로 넘어가도록 하자. 이건 여동생바보물이니까…
“아, 물량 있고요.
치수 재야하니까 여직원 불러드릴게요. 잠시만요.”
살짝 목례하고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은 쫑알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완전 썩은 놈은 아니야”
정한이 오빠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쟤가 만약에 본인이
치수 잰다고 하면 죽여버렸을텐데.”
“야, 우지야. 네가 그런 얘기하면
진짜 죽여버릴 거 같단 말이야…”
“나도 동감이다, 정한아…
이러다 사람 하나 죽어나갈 듯…”
95즈의 몰이에 지훈이 오빠는 당황했고, 당황한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이래서 95즈의 몰이를 좋아하는 캐럿이 많구나.
“귀여워, 오빠…”
나의 말에 정한이 오빠가 푸학, 하고 웃으며 반박 아닌 반박을 한다.
“팬미팅에서 초딩이 우지한테 귀엽다고 했는데
디노가 ‘딱 한 시간만 같이 있어봐라’라고 했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다…
첫인상이랑 많이 달라졌어.
그냥 귀여웠는데 이제 좀 무서운?”
“동감. 은근 무섭다니까? 동생인데?”
지수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뗀다. 역시 지수 오빠는 정한이 오빠에 비해 스킨십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프로듀서라 더 그럴 수도.”
그리고 이 대회 이후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려는 대화를 여직원의 등장으로 끊긴다
“치수 재겠습니다”
다들 말하는 쓰리사이즈를 잰 후 그 치수에 맞는 교복을 가져온다. 검정색에 가까운 곤색이고 카라에 황토색 줄이 있는 마이에 하얀색 셔츠, 그리고 채도 낮은 주황색 니트. 그저 바라만 봤던 그 교복이다. 괜히 쓰다듬어보다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이렇게 규격화된 옷을 입는 게 너무 오랜만이다.

“ㄱ,괜찮나…?”
풀고 있던 머리를 묶고 멋쩍게 웃어보인다. 같이 온 멤버들은 하나 같이 칭찬일색이다
“와… 교복핏 대박이다.
야, 여주야 제복입는 직업은 어때? 심각하게 고민해봐바”
순영이 오빠는 신났고
“진짜 예쁘다… 머리도 묶고 다녀.
귀 나오니까 훨씬 예뻐보이네.”
정한이 오빠는 진심으로 칭찬하고 있고
“턱선이 보일 정도면 엄청 마른 건데…
살 좀 찌자, 장여주. 좀… 안쓰럽다.
근데 이 와중에 턱선은 예쁘네.”
지훈이 오빠는 칭찬이야, 욕이야.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여직원의 물음에 네, 하고 대답한다.
“그럼 계산 도와드릴게요.”
정한이 오빠가 아 네, 하고 카운터로 간다. 정한이 오빠가 왜 확정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교복을 입고 싶어했단 것도 정한이 오빠가 제일 먼저 알았고, 그래서 내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얼마에요?”
“30만원입니다”
나에게 30만원이라 하면은 월세에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금액이었다. 교복, 생각보다 비쌌구나.
정한이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카드 계산을 하고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 생각보다 돈 많이 썼더라.
교복이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어…”
내 말에 같이 온 멤버들 모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스킨십에 스스럼 없는 정한이 오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널 위해선 이 정도야, 뭐”
하, 낯부끄럽다. 왜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줄 아는 정한이 오빠가 내심 대단했다. 나도 그런 말 할 줄 알면 고마운 마음 전달할텐데. 괜히 발끝을 바닥에 툭툭 친다.
“가자. 갈 데가 더 있어. 서둘러야 해”
지훈이 오빠가 정한이 오빠의 손을 치우고 내 손을 잡았다. 살짝 놀란 상태였는데 뒤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 남자 직원이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지훈이 오빠는 내 손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고 정색하고 말한다. 조금만 더 세게 잡았으면 아플 뻔 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얼버무리려던 그에게 되묻는다.
“그럼요?”
“저… 제 이상형이신데…”
와, 저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아마 저 사람이 보기에 멤버들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엄청 친한 사이일거라고 예상은 갈 텐데. 심지어 지금 지훈이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있으니 연인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번호를 딴다니.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정한이 오빠도 굉장히 날이 서있다. 이런 상황 처음이다. 남자에게 번호를 따일 때 이렇게 견제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근데 나 오빠들이랑 다니면 남친은 절대 못 만들겠다.
“아, 전 이정현이라고 합니다.”
그냥 오빠 정도로 생각했나. 그것도 친오빠가 아닌 사촌 오빠라거나 옆집 오빠 정도로. 왜인지 그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 이상형은 슈아 오빠와 비슷한데, 뭐랄까 이 사람은 선이 너무 굵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뭐라고 거절해야할 지 몰라 우물쭈물대고 있었다. 그러자 정한이 오빠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싫으면 싫다고 해, 그냥. 괜찮아”
말 할 때 나오는 숨결과 가까워지자 느껴지는 정한이 오빠의 체온이 예민한 부위 중 하나인 귀에 느껴졌다. 간지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난 예의 바르게 허리도 한 15도 정도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도 자기가 죄송하다며 교복점 안으로 들어갔다.
“잘했어.”
순영이 오빠의 말에 괜히 쑥스러워져서 잡고 있었던 지훈이 오빠의 손을 그대로 끌고 차까지 뛰어갔다. 지훈이 오빠는 처음엔 당황해하더니 곧 내 앞에서 뛰어 날 끌어주었다. 그리고 날 보고 씨익 웃어준다. 그리고 뒤에선 다른 멤버들이 딱히 좋은 표정은 아닌 상태로 우리를 쫓아온다.
이렇게 많은 내 사람들과 행복한 삶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산 지 얼마 안 되어서일까, 너무 소중한 이유는.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삶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