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그리고 들어오는 얼굴들은 96즈다. 우지도 96즈지만 그를 제외한 96즈. 준 님, 호시 님, 원우 님.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시끄럽다.
“와, 가을인데 아직도 덥냐.”
호시, 그러니까 권순영 님이 말한다. 열정이 넘친다는 퍼포팀 리더다. 다행히 멤버들의 기초 정보는 기억에 남아있다.
“너만 더운 건데? 지금 5돈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은 전원우 님이다.
“인정. 너 여름에 어떻게 사냐?”
한국 사람보다는 발음이 어눌하지만 충분히 발음이 좋은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준, 본명은 문준휘.
“연습을 하고 왔으니까 더운 게 상식에 맞지.”
호시 님은 그에 관련된 말을 더 하려다가 원우 님의 터치에 입을 다물고 날 빤히 쳐다보았다. 6개의 눈동자가 내게 집중되니 살짝 뻘쭘해졌다.
“저…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호시 님은 조금은 적대적인 말투로 물었다.
“얘 뭐야.”
“보나마나 슈아 형 아님 정한이 형이 데리고 왔겠네.”
원우 님은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평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오늘 하루 밤만 재우게.”
승철이 오빠의 말은 그 셋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호시 님, 원우 님, 준 님 모두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랐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고 간다는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말이야, 그게”
이해를 진짜 못한 건지, 이해는 했는데 믿고 싶지 않은 건지 되물었다.
“말 그대로야. 하루 재운다고.”
안 되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아마 여기서 하루 자려면 고아인 사실을 다 알고 있어야할 듯 하다.
“진짜 딱 하룻밤이에요. 고아원 들어가기 전에…
미안해요, 멤버들. 제가 졸랐어요. 정한이 오빠한테…”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호시 님의 띠꺼운 말투.
“아이돌인 거 알고 그런 거야?”
“아니요… 그 때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못 봤어요.”
“찬이랑 비슷해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찬…이란 분과 동갑 맞아요. 열여덟.”
내 나이가 생각보다 어린 것을 깨달았는지 호시 님도 꼬리를 내리고 뱉었다. 딱 하룻밤만이라고. 그리고 나머지 둘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의미없는 대화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건 허락 받은 거야, 안 받은 거야.
“허락 받은 거야. 여주, 안 피곤해?”
슈아 오빠가 다정하게 물었다. 그런 슈아 오빠를 보고 우지 님은 한숨을 뱉으며 들어갔다. 내가 왜 아직도 여깄냐는 말과 함께. 우지 님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시끄러운 사람 둘이 집으로 들어왔다. 도겸과 승관이다. 메보즈이자, 시끄러운 사람들 중 2명이다.
“어, 뭐야. 찬이 친구?”
둘 중 승관이란 사람이 말했다. 난 바로 반박했다. 사실 찬이라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아, 그건 아닌데…”
“그래? 그럼 누구랑 관련 있는 애야?”
도겸 님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아무래도 정한이 오빠가 몇 명 데리고 오는 모양인데, 아마 정한이 오빠의 여동생의 친구를 데리고 오는 것 같다. 그러니 이 또래 여자애들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거겠지.
“얘, 오늘 자고 간다?”
정한이 오빠는 굉장히 안심하고 있는 말투로 물었다. 메보즈는 집에 오는 여자애들을 전혀 신경 안 썼나보다.
“누구 방에서 재울건데? 나 방 비울까?”
심지어 방 비울까 물어보는 도겸이라는 사람. 이건 신경 안 쓴 게 아니라 그냥 착한 게 아닌가…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데리고 왔으니까.”
정한이 오빠가 대답하고 메보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싶다. 난 분명 불청객인데.
“저… 지수 오빠?”
“아, 응. 왜?”
“다들 연습하고 들어오는 거에요?”
“응 그렇지. 얘만 빼고. 얘는 쨌지!”
슈아 오빠는 정한이 오빠의 등을 세게 쳤다.
“아 나 왜! 당당하게 허락 받고 나간거거든?”
“그래도 배신감이란 게 있잖아!”
승철이 오빠가 소리를 빽 지른다. 내 예상이 맞았다. 꼭 대가족 같았다.
“연습하는 거 안 힘들어요…?”
내 질문에 정한이 오빠가 답을 해온다.
“어차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
음… 여주가 좋아하는 건 뭐야?”
“게임…?”
사실 내게 좋아하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꿈이란 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내게 너무 큰 사치였다. 꿈이란 걸 꿔도 되는 건지,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건지도 모르는데… 게임이란 것도 초등학교 때나 했었나
“게임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훅훅 가지?
그거랑 같은 논리야.”
“아아…”
아아는 무슨. 기억도 안 나는구만.
“버논이랑 명호, 민규, 찬이 남았나.
웬만하면 한 번에 들어왔으면 좋겠네.”
승철이 오빠가 무심한 듯 다정하게 뱉었다.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날 걱정해주는 듯 했다. 승행설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디노 님을 뺀 나머지 멤버들이 들어왔다. 버논 님, 디에잇 님, 민규 님, 이렇게 3명. 계속되는 허락에 나름 자신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생겼다.
“빨리 씻고 자야지~”
3명 중에 가장 키가 큰 민규 님이 말했다. 말은 진짜 신난 듯한 잔뜩 격양되어있었고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너 방금도 자고 왔잖아.”
그리고 바로 반박하는 디에잇 님. 그 특유의 어눌한 발음이 괜히 민규 님을 욕하는데 효과적으로 보인다.
“잠이란 건 아무리 자도 부족한 거야, 뎨잇.”
아닌 척 하지만 잠이 많았던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찬이 친구? 찬이는 여사친 없는데?”
이국적으로 생긴, 아니 혼혈에 가까운 사람, 버논 님이 날 보고 묻는다.
“ㅇ,안녕하세요 찬…님 친구 아니고요…”
“우와, 찬이한테 님 붙이는 사람 처음 봐”
디에잇 님의 저 말은 진짜 처음 본 거다. 악의가 숨어있다고 하기엔 얼굴 표정이 너무 순수하다.
“오늘 하룻밤만 신세 져도 될까요.”
일부러 물음표 대신 마침표로 말을 마쳤다. 안 돼,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길 바라면서.
“누가 데리고 왔는데. 뭔 생각으로 그랬대.”
버논 님이 짧고 퉁명스럽게 뱉었다. 그리고 정한이 오빠는 자신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고아원 가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화목한 집에 있어보고 싶었어요… 진짜 죄송해요.”
“아… 따지려던 건 아닌데.”
고아라서 그런지 아님 진짜 아니었던 건지 그의 얼굴은 자책으로 물들었다.
“감사합니다…”
“엄청 불편할텐데…?”
불편함의 대상이 나인지 본인인지. 사실 내가 있으면 전자랑 후자 둘 다 불편하긴 하다.
“넌 얘 없어도 다 불편하잖아?
청소 안 되어있다고 불평하지 않나…”
“ㄱ,그만…”
“그러면서 왜 애한테 그런 말을 하냐.”
후자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디에잇 님이 평소 그의 행동을 짚어주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I'm so tired…”
버논 님의 목소리는 무척 작았지만 들을 수 있었다.
“허락해주신 걸로 알게요.
피곤하실텐데 잡아서 죄송합니다…”
“No problem.”
버논 님의 영어에 슈아 오빠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최한솔 갑자기 안 하던 영어를 왜 하는뎈ㅋㅋ”
“…그냥”
버논 님도 민망했는지 그냥이라고 일단락한다. 슈아 오빠도 웃으며 말한다.
“Okay. Get in there and rest.”
대충 해석하자면 ‘알겠어, 들어가서 쉬어.’ 정도 되려나. 버논 님의 짧은 끄덕임으로 그 3명도 방으로 들어갔고, 디노 님의 귀가를 기다리며 95즈와 함께 소파 위에 앉아있다.
“크크크. 최버논 왜 저러냐”
승철이 오빠가 웃으며 말한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여주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어차피 하루만 있을건데요…?”
“버논이 이상형인 거 같은데?
귀여운데 예쁘고, 머리 긴 거~”
정한이 오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인데 이렇게 편할 수 있다니.
“I don't like him.
Because I don't like to pretend to be cool.”
방금 슈아 오빠와 버논의 대화를 듣고 영어 한 마디를 뱉었다. 그러자 슈아 오빠는 빵 터지며 말한다.
“얘 뭐야…! 발음 왤케 좋아?”
“뭐랬냐. 앞에 I don't like him밖에 못 들었다.”
정한이 오빠는 구체적인 해석을 요구했고 슈아 오빠는 미소를 띄우며 해석하였다.
“멋있는 척 별로 안 좋아한대"
“야아~ 최버논 첫인상 잘못 박혔고요~”
승철이 오빠의 얼굴에서 즐거움은 떠나지 않았다. 입동굴은 열려있고 목소리는 격양되어있다. 보기 좋다. 듣기 참 좋다.
“It's just joke. 그냥 농담이에요. 잘생겼잖아요…”
“아 뭐야, 얼빠였어?”
승철이 오빠가 묻는다.
“네. 그래서 정한이 오빠한테 졸랐죠.
하루를 자도 잘생긴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야 내가 졸랐잖아. 하루만, 하루만 이러고…”
“에이- 이럴 땐 그냥 가만히 있어요.
오빠 자존심 지켜주는 건데.”
“근데 여주 발음 진짜 좋다. 어디서 배웠어?”
“독학이여-”
발음이 좋다는 칭찬은 내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내가 이런 실력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왜일까.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편한 이유는. 오빠가 있었다면 아니 적어도 가족이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
이때까지 오지 않은 사람이니 찬, 디노 님이겠지. 아니나다를까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찬 님이었다.
“조금 늦었네. 연습 더 하고 온 거야?”
“…네.”
승철이 오빠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는 게 다였다.
“찬아, 괜찮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보였다.
“그나저나 얜 누구야…?”
피곤해서인지 목소리에 힘이 없다. 괜히 나까지 안쓰러워진다.
“장여주라고 해요. 18살이고요.”
“아아… 친구구나. 편하게 해.
뭘 그렇게까지 존댓말을 써. 온 김에 자고 가…”
“으,응!”
“말 놓는단 부분에서 응이야,
자고 간다는 거에서 응이야?”
“…둘 다.”
내 대답에 95즈가 가만있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나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야야, 나도 좀 놔주라. 안 불편해?”
“나~도~”
“말 편하게 해. 내가 먼저 했는데 안 하면 좀 그렇잖아”
정한-승철-지수 순으로 반말을 요구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어가볼게요.”
찬이의 힘없는 목소리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가 방에 들어가 우리 말을 듣지 못할 거라고 예상되자 난 곧바로 오빠들한테 물었다.
“찬이한테 무슨 일 있어?”
“쉽게 말하자면 욕 먹고 있다고 해야할까.
나쁜 내용의 글도 올라오고, 악플도 많이 달리고…”
정한이 오빠의 얼굴도 걱정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방금까지 들떠있던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았고.
“얼마나 심하면 저래…”
“춤 못 춘다, 노래는 왜 하는 거냐,
디노 때문에 세븐틴이 망할 거다…”
“…에반데. 너무한 거 아니야? 찬이 엄청 힘들겠다…”
“그래서 멤버들이 엄청 걱정하고 있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면 참 좋을텐데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슈아 오빠의 안 좋은 얼굴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방금 전까지 예쁜 눈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위로… 해주고 싶은데, 그건 선을 넘은 걸까…”
내 말에 95즈 모두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슈아 오빠가 다시 말을 꺼냈다.
“찬이는 말이야, 친구라고는 초등학교 친구밖에 없던
녀석이야. 친구 관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거든…”
꼭 나와 닮은 것 같다. 몇 살부터 연습생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지식은 없다. 그러나 친구가 초등학교 때까지밖에 없다는 건 아마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게 아닐까. 뭐 물론 연습생 한다고 친구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나도 그래. 힘든 사람은 힘든 사람이
제일 잘 위로한다고. 한 번 해보고 싶어, 위로.”
승철이 오빠는 리더답게 대답한다.
“그룹 내에서도 친구 한 명 없고..
그래서 마음 문을 열기가 힘들 텐데…
우리야 찬이 위로해주면 좋지.
아무래도 같은 팀 멤버니까.”
난 뜻하지 않게 받아버린 책임감을 안고 고개를 끄덕인다. 슈아 오빠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영어로 말한다.
“Dino is soft and weak. Dino called you a friend, but I want you to be careful.”
해석하자면 ‘디노 여리고 약한 애야. 디노가 너를 친구라고 부르긴 했지만 조심해줬으면 좋겠어’가 되겠다. 찬이가 여리고 약한 애인 거 알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Okay. Don’t worry. I’ll be careful”
영어로 대답하자 정한이 오빠와 승철이 오빠는 약간 멘붕에 빠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