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늦었다.
버스가 애매하게 늦게 왔고, 엄마는 나가기 직전까지 방을 청소하고 가라며 잔소리를 했다.
결국 평소보다 십 분 정도 늦게 도서관에 도착했다.
열람실 문을 조심히 열고 안쪽 창가를 봤다. 늘 앉던 창가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런데, 그 옆도 비어있었다. 늘 바른 자세로 앉아있던 등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온건가? 나도 늦었는데.
의아함에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로 갔다.
그리곤 순식간에 마음의 긴장이 탁, 풀렸다.
내 자리 옆엔 여전히 신유가 있었다.
그런데, 평소완 다르게 엎드려서.
신유가 자고 있었다.
책상 위에 팔을 접고, 그 위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로.
문제집은 펼쳐져 있었고, 샤프는 손에 느슨하게 쥐어져 있었다.
자는 거 처음 본다.
나는 조심히 의자를 빼고 앉았다.
드르륵 소리가 날까 봐 거의 숨까지 멈췄는데, 신유는 깨지 않았다.
피곤했나보네. 집 가서도 공부 하나?
흐음, 한 번 쳐다보곤 책을 펼쳤다.
펼치긴 했는데, 시선이 자꾸 옆으로 간다.
속눈썹 생각보다 길다.
코도 높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평소엔 맨날 나 놀리듯이 웃더니, 자니까 되게 얌전하네.
아니 뭐.
그냥 보인 거다. 옆자리니까 보일 수밖에 없잖아.
샤프로 애꿎은 입술만 짓이기다가 이내 내려놨다.
문제를 풀려고 했는데, 신유 얼굴이 너무 평화로워서 괜히 얄미웠다.
저렇게 말간 얼굴로 쪽지에 그런 장난을 쳤단 말이지.
하여간 사람 헷갈리게 하는 데 뭐가 있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신유의 볼 쪽으로. 어쩜 남자애가 이렇게 피부가 하얗지?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손끝으로 볼을 살짝 콕, 찔렀다.
말랑...
그 순간.
손목이 잡혔다.
“헉.”
나도 모르게 소리가 튀어나왔다.
신유가 눈을 뜨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눈인데, 이상하게 또렷했다.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네.”
목소리가 낮았다.
자다 깨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낮았다.
나는 잡힌 손목을 빼려고 했다.
근데 신유가 힘을 세게 준 건 아닌데, 그냥 못 빼겠는 느낌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응.”
“네가 자고 있길래.”
“자는 사람 볼을 찔러?”
“나, 나도 모르게... 미안.”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잘 때 이래?”
사과에는 대꾸도 없이, 신유가 부스스 일어났다.
살짝 짜증이, 아니면 화가 섞였나? 그건 잘 모르겠다.
무튼 영문을 모르겠는 질문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안 해!”
앞자리 사람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차.
나는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치만 얘가 먼저 이상하게 몰아가잖아!
나는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너한테 처음 해봤어.”
말하고 나서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
이건 또 왜 이렇게 들리냐. 이상하게 말한 것 같아.
나도 말하고 흠칫 놀라 잡히지 않은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신유도 잠깐 조용해졌다. 다른데를 보고있던 시선이 내 쪽에 잠시 머물다, 이내 떨어졌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지로 내 손목 안쪽을 아주 살짝 눌렀다.
“그래?”
기분 좋아 보여.
너무 티가 난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좋냐?”
“응.”
“뭐가.”
“처음이라며.”
나는 바로 손을 뺐다.
이번엔 신유가 순순히 놔줬다.
귀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머리카락으로 대충 가렸다.
“공부나 해.”
“네가 깨웠잖아.”
“그건... 미안.”
“별로.”
“별로?”
“나쁘진 않았다고.”
아 진짜.
낯부끄러워져 문제집을 확 펼쳤다. 공부해야해.
샤프의 뒷부분을 괜히 딸깍딸깍거린다.
그래놓고 한 문제도 못 풀었다.
신유는 옆에서 잠깐 기지개를 켜더니, 가방 안을 뒤적였다.
그러다 에어팟 케이스를 꺼냈다.
음악을 들으면서 하려나보네. 어째 나와는 다르게 빠르게 평온해지는 것 같아서 괜히 심통이 난다.
나는 다시 문제로 시선을 내렸다. 됐어 나도 신경 그만 쓰고 공부 하자.
그때 신유가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에어팟 한쪽이 있었다.
“뭐야?”
“에어팟."
신유는 이어폰을 내 손바닥에 톡 올려놓았다.
“같이 듣자.”
나는 에어팟을 내려다봤다.
머뭇거리다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신유는 이미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에어팟으로는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잔잔한 기타 소리, 그리고 조금 뒤에는 사랑 이야기를 하는 가사.
나는 눈만 천천히 굴려 신유를 봤다.
“이거...”
“응.”
“사랑노래잖아.”
“그러네.”
“그러네?”
“노래가 그렇네.”
뭐가 이렇게 뻔뻔해.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신유가, 문제집에 필기를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뭘 웃는건지 정말.
어디서 그려낸 듯한 청춘의 한 페이지같은 이 상황이, 나도 마냥 좋기만 했다.
이어폰 한쪽에서 사랑 노래가 들리고,
옆에서는 신유의 낮은 숨소리랑 샤프 긁는 소리가 들리고.
창가로 들어온 햇빛이 책상 끝에 걸렸다. 툭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선을 옮겨 문제집을 내려다봤다.
나 진짜 시험 망하는거 아냐? 어째 여기 와서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기도하다.
옆에서 뭔갈 열심히 적던 신유에게서 인기척이 났다.
뭔가가 적힌 공책 귀퉁이를 내 쪽으로 밀려이었다.
[너도 자. 내가 깨워줄게]
나는 샤프를 들고 바로 답했다.
[내 볼 찌르게?]
공책이 다시 넘어왔다.
[응. 복수하려고]
나는 신유를 쳐다봤다. 신유는 여전히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근데 귀가 조금 빨갰다.
아, 귀엽네.
푸, 하고 괜히 웃음이 나와서 재빨리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문제집에만 시선을 고정하던 신유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래서 나를 올려다본다.
“왜 웃어."
"뭐, 그냥..."
"그냥?"
"귀여워서."
나는 아주 작게 대답했다.
놀랐는지 신유의 눈이 커졌다. 내가 얘를 당황시키기도하고.
어쩐지 우쭐해진 기분, 이긴 기분이었다.
내 눈을 쳐다보던 신유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나한테 당했지? 처음으로 내가 이겼지? 하며 역으로 놀려주려다가, 시야에 걸린 그의 빨개진 귓가가 보였다.
어떤 반응을 해준 것도 아닌데 어쩐지 내가 다 부끄러워졌다.
내 귀도 신유처럼 순식간에 화르륵, 달아올랐다.
뭐야 여기서 부끄러워하면... 여태까지 네가 한 짓들은!?
우리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려서 문제집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몸을 틀고있어도 이어져있는 에어팟으로 사랑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아마 둘 다, 문제에 집중을 하진 못했겠지.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나 뿐만이 아니었을거라는.
도서관은 조용했고.
내 옆자리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