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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큰 물결.


고깃 씀.




 그가 누군지 알기 위해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익숙하지만 선명하지 않은 그 기억속으로. 바닷속으로 가라앉듯 기억이라는 물에 빠져 본다. 깊이, 점점 더 깊이. 숨이 조금씩 멎어갈 때즈음 네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신을 잃은 것인지 너는 눈을 감고 있다.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다에 몸을 맡긴 듯 보인다. 나는 그런 너의 손을 잡아 본다. 나의 따뜻한 온기를 차갑게 식어가는 너에게 나눠 주니 너는 눈을 슬며시 뜬다.


「너의 눈은 바다를 담은 듯 푸르게 반짝인다.」


 열일곱의 내가 어선을 보며 서 있다. 푸르고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어선은 어딘가 엉성해 보인다. 금방이라도 바다에 삼켜져버릴 것만 같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은 열일곱의 나, 바지에 모래알이 묻을 것을 알면서도 모래사장에 주저앉는다. 그리곤 다리를 쭉 편다. 맨발에 샌들을 신은 탓에 바닷물을 타고 흘러오는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사이에 자리잡는다. 그 느낌은 그다지 좋진 않다. 그렇지만 잔잔한 바닷물이 발가락 사이를 쓸고 갈 때면 간질간질해서 그 느낌이 좋다.


 “안녕?”


 너는 모래알이 바지에 묻는 것 따위 개의치 않고 내 옆에 앉으며 내게 인사를 건넨다. 너의 목소리는 낮은 중저음에 진중하고 새벽같은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그 속에 약간의 장난스러움이 담겨있다. 처음 보는 너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에 열일곱의 난 너에게 인사를 건넨다. 너는 내 인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기 곰처럼 배시시 웃는다.


 “내 이름은 김태형이야. 넌?”


 “…김너울.”


 “너울. 이름 예쁘다.”


 항상 내 이름을 말하면 누구든 특이하다, 라는 반응을 먼저 보였었다. 하지만 너는, 김태형 너만큼은 내 이름을 예쁘다고 말해 주었다.


「너의 이름은 김태형이었다.」


 너와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나눴는지 모른다. 재잘대는 네가 귀찮다기보다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해가 지고 바다가 노을을 담을 무렵 나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그곳엔 여전히 어선이 떠있다. 그 어선은 아직도 엉성해 보인다. 드넓은 바다 위에 떠있는 엉성한 어선은 마치 열일곱의 나와 닮아 보인다.


 나와 닮은 어선은 순식간에 거친 파도에 휩쓸린다. 너무나도 거친 파도가 위아래로 넘실거린다. 사람들은 그 파도에 몸을 맡기며 수평선 너머로 떠내려간다. 나는 아직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가 내 혼을 집어삼킨 것이다. 너는 내게 어서 피하자고 소리친다. 하지만 난 너의 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릴 뿐이다.


 바다는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켜버린다. 마치 바다 위에 엉성하게 떠있던 어선처럼. 바다 저 멀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 할머니께서 울부짖으신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 한다. 깊은 바닷속으로 잠식되어 가기에. 거친 물결에 고막이 막힌다. 바다는 내가 싫은 듯 더 거칠게 변해 간다. 그렇게 바다는 나를 심해 속으로 데려간다.


 잃어가는 정신 속에서 너의 모습이 보인다. 너는 꽤 필사적으로 내게 손을 뻗는다. 너의 필사적인 모습에 잃어가던 정신을 차리고 너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 본다. 손이 잡힐 듯 말 듯한다. 너는 내 손을 잡기 위해 더욱더 뻗으며 이리저리 휘저어 본다. 드디어 너와 내 손이 맞잡는다. 서로의 온기는 점점 식어가다가 서로의 온기가 맞닿았을 때 비로소 따뜻해진다.


「거친 나의 파도와 잔잔한 너의 파도가 충돌한다.」


 잔잔한 물결을 타고 나의 육체가 뭍으로 오른다. 배를 가득 채운 물을 가까스로 토해낸다.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내 모습을 보며 너는 괜찮냐고 물어본다. 너의 얼굴은 걱정을 가득 담고 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자 너는 그제서야 안심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 괜찮다니 다행이야, 너울아. 너는 언제나 내 이름을 부른다. 너울아, 하고. 마치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는 듯이. 잊지 말라고.


 저 멀리서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속엔 할머니의 걱정 담긴 외침이 섞여있다. 너는 그 소릴 듣고서 잔잔한 물결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져간다. 나를 구해 줬던 그 물결을 타고서, 깊게, 아주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