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 댁, 최 가의 호정입니다.”
저 멀리 앉은 호석이 이름을 알리자 얼굴에 가면을 쓴 사내가 일어나 앞으로 나섰어. 천천히 무대로 다가가 심호흡을 했지. 호정이 범무의시작 자세를 취하자 악사가 연주를 시작했어.
한 발을 앞으로, 팔을 올렸다 내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었지.
“저 아이는 몇 년이나 범무를 훈련했습니까?”

“4년입니다. 아직 턱 없이 부족한 것이 제 눈에도 보이거늘 이번이 아니면 범무당이 될 생각 없다는 말에 내보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멈추어있는 물은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호석의 말은 호정이 절대 저 자리에 오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집하고 고집하여 내보낸 자리라는 것이였어. 즉, 범무당에 어울리지 않는 자이기에 ‘버린다.’ 라는 단호한 말이었지.
“어르신께서 허락하셨습니까? 어쩌면 국화 댁에게 먹을 칠하는 일일지도 모르는데요.
“물론 처음엔 반대하셨으나 어르신께서도 마지못해 알겠다 하셨습니다. 모든 어르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터, 저 아이의 나태함이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정은 마지막 동작에서 발이 꼬이며 요란스럽게 무대 위에서 넘어지고 말았어. 악사들의 음악이 끝나고 무대 위는 싸늘한 적막 만이 남아있었지.
호석이 고개를 저으며 그를 바라보고 뒤를 돌아 허리를 숙인 뒤 4인의 어르신들에게 말을 건넸어.
“잠시 쉬었다 하심이 어떻습니까?
그 사이 잠시 동안의 휴식이 이어졌어. 악사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범무당들은 수군댔으며 길무당이 키웠다는 아이는 안절부절 못해 보였어.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으나, 절대 첫범무자들에겐 말을 걸 수도 없었고 그렇다 한들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어.
“성 가의 율화입니다.”
길무당이 키웠던 터라 속한 곳이 없어 안내인에 의해 이름 세 자만 울려퍼지고 율화가 떨리는 팔을 들고 삐끗대며 왼 발을 뒤로 두자 악사가 연주를 시작했어. 반대 팔을 올리려 할 때 가슴을 부여잡고 넘어갈 듯 숨을 내쉬었지. 그러곤 무대에 털썩 쓰러지며 기절하고 말았어.
안내인 둘이 나와 율화를 업고 제일 먼 서쪽에 있는 휴식처로 향했어.

“아까부터 불안해 보였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던데 저희가 데려가면 어떨런지요.”
“난초 댁에서 데려가려 하십니까?”
“예. 열살의 나이로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아하면 족히 다섯에는 이 춤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싹이 보이지 않습니까?”
지민이 뒤를 돌자 난초 댁 홍씨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이에 지민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내인에게 손짓 했지.
“저 아이를 데리고 있던 길무당이 누구냐.”
*
난초 댁에서 나온 아이는 부채를 들고 나와 바람과 같이 많은 사람을 홀렸고 대나무 댁에서 나온 아이는 옥으로 된 검을 들고 나와 날쌔고빛나는 검무로 사람들을 홀렸지. 모듀가 예상한 것 처럼 두 사람의 범무는 화려했어.
“역시 뛰어납니다.”
“호석께서는 너무 염려마세요. 육성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 들었습니다.”
“염려 없습니다. 단지 국화 댁의 범무당이 모이지 않은 것에 근심이 많습니다.”
“마지막 순서가 제일 궁금해 할 순서입니다.”
무대가 정리되고 안내인이 태형을 향해 고개를 숙였어.
“태형님. 준비가 되었습니다.”

“매화 댁 서 가의 연화입니다.”
그 말에 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지. 아이의 이름은 많이 소문이 나있던 터라 많은 범무당들의 시선을 받아야했어. 그래도 아이는꿋꿋하게 무대로 올랐지.
아이는 얼굴에 얇은 천을 둘러 눈만 보일 수 있게 치장했어. 그 모습에 정국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어. 검무를 할 때 얼굴에 칼이 가까워지는 순간 천을 베어낼 것이란 것을 말이야. 모든 사군자의 어르신과 범무당 대표들, 300인의 범무당 범무녀들이 아이에게 집중했어.

아이의 왼팔이 위를 향하고 범무의 시작을 알릴 첫 자세를 취하자 가야금의 고운 줄 소리가 범화당 전체를 울렸어. 눈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를 태형은 하나하나 뜯어볼 기세로 바라보았어. 아이의 눈이 마치 처음 창귀를 만났을 때와 같다고 느꼈지. 푸른 기운이 아이를 둘러싸는 듯 했고 그 빛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 했어. 아이의 팔이 잔잔한 파도가 흘러가듯 넘실거렸어.
아이는 완전히 몸을 악장에 싣고 있었지.
범의 울음소리 같이 웅장한 악장이 울려 퍼지자 아이가 산 속에서는 뽑아내지 못한 검이 날카롭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뽑히고 달빛을 받아 환히 빛났어.
칼의 손잡이를 잡고 칼 끝은 뒤를 향했지. 몸을 틀어 칼을 몸 가까이 놓고 살짝 스쳐 지나가며 천 안으로 미소를 지었어.
팔을 올렸다 칼을 위로 올려 돌리며 몸과 같이 돌고 팔을 양 옆으로 뻗으며 살짝 뛰어 올라 칼을 위로 휘둘렀어. 허리를 뒤로 꺾으며 칼을얼굴 가까이 대고 얕게 베어내자 희고 고운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지.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소름 끼칠 정도였어.
앞으로 다섯발자국 빠르게 움직이며 칼을 휘두르고 뒤로 세발자국 천천히 칼을 위로 뻗었다가 내리며 팔을 쓸어내리곤 칼집에 칼을 집어넣었지.
붉은 치마를 손 사이로 흘러 내리고 처음과 같은 자세로 돌아오자 악장이 끝나며 아이의 춤도 막을 내렸어.
*
범무회가 끝나고 모든 범무당들이 각자가 속해있던 자리로 돌아갔어. 벌써 새벽이 오고 있었지.
매화 댁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아이에게 다가가며 말했지.
“축하합니다.”
“아까는 제가 다 홀려 정신 없이 범무를 보았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이는 한참을 응하다 꾸벅 인사를 하곤 어디론가 뛰어갔어.
*
“태형님!”
그곳은 태형이 있을 홍화당이었지. 태형은 아이를 반기듯 툇마루에서 일어났어. 그러곤 아이에게 다가갔지.
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이의 허리춤에 매어주었어.
“범무녀가 된 것을 축하한다.”
“나는 네가 동이 트던 시간까지 끊임 없이 범무를 연습하던 그날, 이미 너를 인정했느니라.”

“축하한다. 연화야.”
*
그렇게 아이가 정식 범무녀가 된지 3개월, 아이는 많은 무당들에게 도움을 주었어.
“연화야. 혹시.. 창귀가 아니어도 범을 볼 수 있어?”
“네. 옷이나 신발처럼 그 사람이 화를 입기 전에 갖고 있던 거면 돼요.”
“이게 창귀에게 물려간 처녀의 치맛자락인데.. 봐줄 수 있을까? 범을 찾겠다고 산에 들어갔다가 물려 죽은 범무당이 한 둘이 아니야..”
“네.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이가 범을 보는 눈을 적절히 사용하며 산 속으로 숨어든 범을 찾아내니 5인의 밤무당들 사이에 큰 말이 오고 갔어. 그건 바로 아이를 범무당 대표로 올리자는 것이었지. 만약 아이가 그 자리에 오르면 범무당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 있을 여자 대표가 되는 것이였어.

“공식적인 범무녀가 되고 나서 더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르신들께서도 그리 하였으면 좋겠다는 눈치십니다.”
남준이 말을 하자 태형이 그를 보며 말했어.
“저희는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연화가 대표가 된다면 많은 범무녀들에게도 사기가 오를 계기가 될 겁니다.”
호석이 웃으며 연화를 대표로 만들자 치켜세웠지.
“당장은 안됩니다.”
“이유는요?”
지민이 반대하자 남준은 이유를 물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대표의 자리에 앉는 것인데 지금 충분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아이에게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물음이었지.
“혼자서 범을 잡아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음.. 그것도 그러네요.”
“대표의 자리에 오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산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헌데 서 가의 연화는 둘이서 움직일 때 가는 것 뿐,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지금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한양 맨 서쪽 범을 혼자서 잡아온다면 인정해주시렵니까?”
태형의 눈이 번뜩 빛났어. 정국은 이에 놀라 태형의 팔을 잡았느나 태형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어. 대표의 자리는 5인 모두가 동의를해야했기에 지민의 의사가 중요했지.

“예. 그렇게 된다면 인정해드리지요.”
*
“가겠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거다. 그래도 갈테냐.”
아이가 출정의 의사를 밝히자 정국은 한참을 걱정스러워 했어. 무당은 갑옷이 있는 반면 무녀들은 단지 매실액과 부채, 검. 그 뿐이었으니까.
“걱정마세요. 무녀들은 무당들보다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꼭 살아 돌아오거라.”
“예. 태형님.”
송씨에게 인사를 올리러 문을 두드리는 아이에 들어오라 소리가 들렸어.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어.
“어르신. 서가 연화 한양 서쪽 파렴치한 범을 잡으러 매화 댁을 떠납니다. 부디 몸 건강히 하고 계세요.”
“..잘 다녀오거라. 그쪽에 우리 매화가 만들어 놓은 흑월당이 있다. 거기서 터를 잡아도 괜찮으니 부디 크게 다치지만 말거라.”
“예, 어르신.”
“내 오랜 인연인 한 선비님께서 흑월당 윗고개에 홀로 살고 계신다. 몸이 성치 않으신 분이니 잘 모시거라.”
“매화 댁이 누가 되지 않게 모시겠습니다.”
*
[송월께 드립니다. 저희 매화 댁에 몸 담고 있으며 송월께서 꼭 만나야하시는 서 가의 연화가 한양 서쪽으로 떠납니다. 범무당 범무녀들의대표가 되기 위한 길이기에 그만큼 위험하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에 연화가 발을 내딛었습니다. 부디 아이를 잘 보살펴주십시오. 또한, 아이를 가까이 하시어 기력을 찾으시옵소서. 날이 좋아지는 그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 매화 댁 송. ]

“나의 아이가 오는구나. 나의 아이가..”
“열 하고 일곱이라 하니, 그때와 같구나.. 이제 5년 남은 것인가..”
그러곤 저 멀리 범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