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한양으로 향했어. 족히 열흘이나 걸렸지만 매화댁에서 힘 좋은 사람들만 골라 아이의 가마를 들어준 덕에 아이는 조금 편하게 올수 있었지.
한양은 저잣거리가 북적이고 사람들이 복작복작 사는 큰 곳이었어.

“이곳이 한양입니다.”
가마꾼 하나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지. 그러자 아이는 가마에 달린 작은 창을 열어 밖을 보았어.
“이쪽부터는 걸어가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산 입구까지는..”
“아닙니다. 이리 사람이 많은 곳은 처음입니다. 신기해서 그러니 걸어가겠습니다.”
아이가 땅에 발을 딛었어. 아이가 붉은 색과 흰 색이 곱게 뻗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으니 화려한 얼굴과 잘 어울려 빛이 나는 듯 했어. 태형이 달아준 노리개까지 다니 양반 가의 귀한 딸로 보였어.
“허허. 양반가 따님은 어느 옷이나 귀티가 납니다.”
“하하하. 옷에 귀천이 어디있습니까? 양반가라고 하여 모두가 양반인 것도 아니지요.”
아이는 무당 가 중 매화 댁을 상징하는 매화와 범무녀를 상징하는 큰 대호가 그려진 부채 펼치고 얼굴을 가렸어.
*
천천히 산을 향해 가는 길에 가마꾼 하나가 아이에게 물었어.
“무녀님께서 모시는 신은 어떤 분입니까?”
범의 춤을 훈련함과 동시에 아이는 신내림을 받았어. 그때 많은 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것이 아직도 눈에 선했지.

“제가 모시는 신은 백호신입니다.”
“흰 범.. 말입니까?”
“예. 제 가족을 죽인 범도 흰 범인데 말입니다. 이것 참 모순적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하며 산 입구까지 걸어갔어. 어느정도 다 왔을 때 아이는 주막에 멈춰섰지. 그러곤 가마꾼들에게 말했어.
“한양까지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범을 잡고 돌아가는 날 꼭 갚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시장하실터인데 이곳에 국밥이라도 드신 후에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내려가세요.”
그러곤 아이도 주막에 앉았어. 가마꾼들이 먹을 국밥 4개와 자신이 마실 시원한 물 한 잔을 시킨 후 시원한 바람을 맞았지.
“아가씨는 무녀지?”
주막의 주인장이 아이의 옆에 앉으며 살갑게 말을 붙였어. 그러자 아이는 웃으며 말했지.
“예. 사군자 중 매화의 범무당입니다.”
“범무당? 한양에도 창귀가 퍼지기 시작한건가?”
“꼭 잡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아아.. 요즘 사람을 물어간다는 그 범 말인가? 아직 이쪽까지 내려온 적은 없어.”
“혹여 내려오면 안되니 말입니다.”
그러자 주인장은 호탕히 웃더니 고맙다며 손을 쥐었지. 그러곤 또 다시 입을 열었어.

“이 산 서쪽에 사는 선비 아는가?”
“귀하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소문으로는 몸이 약해 산 안에 산다는 거야. 매일 기침을 해대고 어느날은 피를 토하기도 하고.. 사내가 하얀 얼굴색을 띄고서 죽을동 살동 하고 있으니 쯧쯧..”
“저에겐 귀한 분입니다. 그런 말은 삼가하시지요.”
아이의 눈이 어두워졌어. 송씨에게 귀한 이라면 매화 댁 무당들에겐 언제나 귀한 분일테니 말이야.
“어허 이거 무서워서 어디 말을 하겠나. 뭐 그렇게 몸이 좋지 않으니 혹여 병이라도 퍼질까 아무도 그 집에 들지 않는다는거야.”
“그럼.. 양반께서 시종하나, 말동무 하나 없이 계신단 말입니까?”
“그런 셈이지. 그러니 죽었나 살았나 볼 수가 있나.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양반도 양반이려나? 허허.”
그 말에 아이는 서둘러 내려놨던 짐을 들고 산을 올랐어.
“아가씨가 참.. 급하구만 그래. 넘어질라!”
*
“헉.. 헉..”
급하게 뛰어온 터라 아이의 숨은 턱 끝까지 차 올랐어. 흑월당에 올라 짐을 풀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위로 올라갔어. 그 주인장의 말이 아이의 머리 속을 멤돌았지.
‘그러니 죽었나 살았나 볼 수가 있나.’
아니된다. 아니 돼. 소중한 사람이라 들었단 말이다.

그렇게 산 끝에 오르자 덧 없이 넓은 마당이 펼쳐졌어. 매화 댁 만큼은 아니었으나 이 넓은 곳에 고작 한 명이 산다니. 아이는 숨을 몰아쉬고 안채 문밖에 섰어.
“매화 댁 범무녀, 서 가의 연화입니다. 어르신께 말씀 들었사온데. 안에 계십니까.”
하지만 안에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어. 그렇게 아이는 손에 부채를 쥐고 허리춤에는 칼과 매실즙이 담긴 병이 달고서 마당을 이리 저리 배회했지.
이곳에 있다는 선비는 온데 간데 보이지 않았어. 남의 집 문을 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아이는 대청마루에 잠깐 앉아 기다리기로 했어.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오늘에서야 한양에 도착한 아이는 꾸벅꾸벅 졸다가 잠에 들었어.
*

“어찌 주인 없는 곳에 고운 나비 하나가 잠을 자고 있을까.”
그 목소리에 아이가 스르르 눈을 떠보니 하얀 얼굴의 고운 남자가 자신을 보며 서 있었어. 아이는 파드득 떨며 일어나 예를 갖추었지.
“매화 댁 범무녀 서 가의 연화입니다. 이곳에 계시지 아니하여 기다렸습니다..”
“아아 서 가의 연화십니까. 매화의 주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막 주인장의 말 처럼 남자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비틀거리며 마루에 앉았어. 그는 다른 선비들과는 다르게 아이에게 존대를 해주었지.
“내 잠시 산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웠는데 오래 기다렸다면 사과드리죠.”
“아닙니다. 제가 기다리려 한 것인데 너무 염려 마시지요.”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인사는 차차 하면 될 터. 고된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기에 피곤했을터인데 말입니다.”
“선비님을 먼지 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 하였습니다. 얼굴을 뵙고 인사 올리니 전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또 와서 인사 올려도 되겠습니까?”
“문안 인사까지. 허허.. 누가 보면 내가 그대의 부모인 줄 알겠습니다.”
“제게 부모란 날 때는 어머니, 무녀가 되겠다 마음 먹었을 때는 큰어르신, 지금은 선비님이십니다.”

“문안인사보다, 내 말동무가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
그 후로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산 꼭대기를 오르락 내리락 했어. 아침엔 세숫물도 덥게 데워 떠다주고 점심엔 같이 산아래까지 산책도가고 저녁엔 상도 차려두었지. 물론 상차림은 딱 한번. 선비의 말 때문이었지.

“이런 일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대가 아무리 매화의 주인이 나에게 보낸 사람이라 하여도 그대는 나에게 손님입니다.”
하루하루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보니 서로가 어색하지 않게 되었어. 아이는 선비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어색했으나금방 적응 할 수 있었어.
범을 찾으러 왔기에 아이는 흑화당 옆에 지어진 신당으로 가 매일 기도하고 범의 춤을 마당에서 외워보았지.
하지만 범의 모습을 볼 수 없었어.
“선비님께서는 이곳이 적적하여 어찌 지내신단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무녀님이 제 말동무가 되어주시니까요. 헌데 범을 잡으신다죠?”
“예. 창귀를 소멸시키고 100년을 넘게 살며 창귀를 부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범들을 죽여 소멸시키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산으로 오셨단 말입니까. 이 곳에도 범이 있습니까?”
그 말에 아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어.
“매일 여기에 올라오기 전 신당에 가 기도를 올리고 자기 전 범의 춤을 마당에서 외우고 있습니다. 헌데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아는 그 범의행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허.. 보이지 않는다라..”
“혹여 이 산을 떠난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예..?”
“…범이 터를 떠날 줄이야 알겠습니까? 무녀님은 꼭 그 범을 잡으실겝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선비는 아이의 말을 듣고서 헛기침을 두어번 했어. 그러곤 아이에게 물었지.
“실례가 안된다면 왜 이 범을 잡아야만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저는 범무녀가 된지 석달이 되었습니다. 창귀를 잡거나 화를 입은 사람들의 물건을 만지면 저는 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참 신기합니다.”
“다른 범무당 범무녀들은 ‘범을 보는 눈’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이걸 어찌 갖게 된 것인지는 모르나 요즘은 통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허허.. 그렇군요.”
“제 눈으로 많은 범무당 범무녀들을 돕자 사군자 대표 범무당 5인께서 저를 대표로 올리겠다 하셨답니다.”
“그건 잘 된 일 아닙니까?”
“허나, 저는 석달밖에 되지 않은 범무녀고 단 한 번도 혼자서 범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리도 찾고 있는 범을 잡아오면 인정해주신다 하시여 이리 오게 된 겁니다.”
“범을 잡아야만 인정해주는 겁니까? 거 참..”
선비는 한참 말이 없다가 열려있는 문으로 밖을 내다보더니 말했어.

"곧 해가 지겠군요. 제가 말한 것 처럼 범은 꼭 나타날터이니 걱정마세요."
해가 지겠다는 선비의 말에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어. 치마를 손으로 털어내리고 신을 신었지.
"날이 추워 어서 몸을 녹이셔야겠습니다. 제가 눈치없이 오래 앉아있었군요. 나오지 마십시오. 내일 또 오겠습니다."

“어찌 벌써 가시려 하십니까. 무녀님께서 가시거든 저는 긴 밤을 적적히 보내야합니다. 방은 많으니 조금 더 있다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아이는 선비가 이제 그만 가보라는 말에 내려가 범의 춤을 외울 생각이었어. 헌데 저리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선비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
“예. 그러겠습니다.”
“혹여 할 일이 있으십니까?”
“아.. 범의 춤을 외우려 했습니다. 그 춤에 홀려 범이 흑월당 마당에 오거든 금방 베어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매화 댁 주인과 연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범의 춤을 알고 있는데. 이곳 마당이 더 넓지 않습니까?”
선비의 말은 이 곳에서 범의 춤을 추어도 된다는 것이었지. 흑월당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이곳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안됩니다.”
“왜 그러십니까?”
“범을 홀려 춤터까지 걸어들어오게 만드는 춤입니다. 혹여 범이 선비님께 오기라도 한다면..”
“그건 걱정마세요. 무녀님의 춤을 보고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
선비는 아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어. 아이는 끊임 없이 추었던 그 춤을 악장 없이 추고 있었어.대청마루에 앉아있다가검무가 시작될 쯤 선비가 일어나더니 아이 앞으로 향했지.

아이의 칼날이 선비의 팔에 살짝 닿자 선비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는 춤을 멈추었어.
“선비님..!”
“아아.. 아..”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괜찮습니다.. 것보다 참 고우십니다.”
“기력이 떨어져 홀려진 듯 합니다.. 어서 들어가서 쉬십시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여 모르니 내일 동이 트고 제가 올 때 까지는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아주세요.”
“..예..”
아이는 선비의 집에서 흑월당으로 내려갔고 선비는 한참을 자리에 서 있다가 발을 옮겼어.
그렇게 다음날 선비의 집 마당에 쌓인 눈위에 붉은 피가 흩뿌려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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