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7화. 슬기로운 동거 생활



우리는 여유로운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날씨가 제법 선선해 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만나고 서로를 좋아하고

 같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건

 어쩌면 기적 같은 타이밍일지도 몰라...'





내 인생에서 언제 또 이런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후회하기 싫었다. 줄리앙처럼...



그리고,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미루고 싶지도 않았다.





"훈지 씨."





"네~ 왜요?"





"우리... "


나는 잠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당신 말대로 해요."

"한 집에서 같이 살아봐요."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요?

 진심이에요 지금?

 말 바꾸기 없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말 안 바꿔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잠깐..."

"내 휴대폰..."

"아...맞다. 지금 없지.

 정아 씨 휴대폰 좀 줘봐요.

 녹음해 둘래."





"아니, 나를 그렇게 못 믿는 거에요?"






"사람 일이란 게 모르는 거잖아요.

 항상 백업을 해 놔야 든든하다구요."





훈지 씨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그는 정말로 녹음 버튼을 켰다.





"나 유정아는 박훈지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결정을 절대 번복하지 않겠습니다.

 자, 따라 해봐요!"





"애도 아니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빨리요. 안 하면 안 돌려줄 거에요."





"아우...못 말려 정말...

 나 유정아는 박훈지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결정을 절대 절대 번복하지 않겠습니다.

 됐어요?"





"예~~~ 녹음했다!!"





그는 휴대폰을 들고

신이 난 듯 앞으로 뛰어갔다.





"아니... 조금 전까지 인생을 말하던 사람이 맞나?

 갑자기 너무 애가 됐는데..."





나는 훈지 씨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마리아를 찾아갔다.

근처에 둘이 함께 지낼 만한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이미 훈지 씨는 샤워를 마치고

느긋하게 음악을 듣고 있었다.





"와~ 내일 스케줄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너무 좋아요."





"그래도 계속 놀다 보면 일하고 싶어질걸요?"





"그렇긴 하겠죠?

 그래도 지금은 이 여유를 마음껏 즐길래요."





며칠 후,

마리아의 도움으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짐이 많지 않아

이사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사한 첫 날 밤,

나는 훈지 씨를 거실로 불러 냈다.





"훈지 씨, 우리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지켜 줬으면 하는 걸 좀 적어봐요."





"그때그때 말하면 되지.

 적기까지 해야 돼요?"





"적어 놓으면 서로 더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럼 적어 볼께요."





잠시 후에,

훈지 씨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어 보여줬다.




나는 그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는

진심인지 장난인지 헷갈렸다.





[1. 화나도 집 나가지 않기


 2. 거짓말하지 않기


 3. 힘들면 참지 말고 말하기


 4. 일주일에 하루는 꼭 나가서 데이트하기


 5.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기


 6. 싸워도 같은 침대에서 자기


 7. 내 요리가 맛없을 때도 맛있다고 해 주기]





"사랑한다는 말은 하루에 한 번이면 되는 거에요?"



나는 그의 항목들을 읽어 내려 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최소 한 번이요."


그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결국 그의 귀엽기만 한 위시리스트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훈지 아가씨...생각보다 감성적이시네요?"





"무슨 소리에요? 이거 다 중요한 거에요.

 이제 정아 씨 것도 보여줘요."





"아니... 무슨 감옥 생활이에요?" <107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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