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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 (4)


의사
몸을 움직이는 신경을 다쳤습니다.


여주
네?


여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솔직히 말하면 석주와 태형이 곁에서 사라졌다는 것보다도 앞으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 거라는 소식이 더 참기 힘들었다.

여주는 아까부터 조금씩 참아오던 울음을 토해냈다.

의사와 간호사는 눈치를 보며 나가 주어, 여주 혼자 끊임 없이 눈물을 쏟았다.


여주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여주
저, 재활 치료하면 나을 수 있지 않을까요?

며칠 뒤 여주가 의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의사
가능하긴 하지만...

의사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 같은 게 아니라 다른 분들보다 몇 배로 더 힘들 거에요.


여주
상관 없어요.


여주
저는 언젠가 다시, 아이스 링크 위에서 뛸 거에요.

의사
좋아요, 그런 각오라면...

여주는 근육이 절단되는 고통을 느끼며 힘들게 재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석주가 남긴 돈으로 재활 치료비는 충분히 댈 수 있었다.

ㅡㅡㅡ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ㅡㅡㅡ

의사
정말... 정말 수고했어요, 여주 학생.

의사
이건 정말 노력이 빚어낸 기적이에요.

여주가 걷는 건 물론, 예를 들자면 배드민턴도 아무렇지 않게 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주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여주
그럼...

여주는 2년 만에 병원을 걸어 나왔다.


여주
「이제는 몸서리 쳐질 정도로 질린 병원의 소독약 냄새에서 해방되면 무척 행복할 거라 생각 했는데..」


여주
「막상 나오니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네..」

여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 재활 치료를 하면서 수없이 흘렸던 눈물이지만 이렇게 심장이 아파지는 눈물은 흘린 적이 없었다.


여주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기다리고 기다렸던 세상과의 재회는 차갑고 무거울 뿐이었다.

여주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주
흐윽... 흑...


여주
이여주... 바보 같긴.


여주
마음 독하게 먹겠다고 했잖아. 왜...

여주가 캐리어 하나를 들고 좁은 원룸에 들어섰다.

저 멀리서 바퀴 벌레 한 마리가 지나간 것 같았다.


여주
어렸을 때 너무 사치스러웠던 거야.


여주
이젠 익숙해져야 해.


여주
하하...

당장 일할 게 없어서 여주는 근처 편의점에 알바를 구하고 학교에도 입학하기로 했다.


여주
다행히 1년 안 꿇어도 되네.


여주
재활 치료와 동시에 공부도 같이 하길 잘했어.

그리고 매일 빙상장에 갔다.


여주
안녕. 이여주라고 해.

그동안 사람의 정에 굶주렸던 여주는 친구들을 만나 그나마 조금씩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동안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아직 믿고 자신을 맡길 누군가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개인기에 탄 태형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태형은 자신의 비서가 건네준 서류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태형
여주...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네.


태형
다행이다... 석주 형도 없는데.


태형
그러고 보니 그 형은 어디로 간 거지.


태형
아버지도 알리기 싫어 하셨고...


태형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태형
뭐, 그래도 이젠 내가 여주 곁에 있을 거니까.

태형이 여주의 학교로 전학을 간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국
......

정국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기일 때마다 교회로 와서 몇 시간 동안 혼자 가만히 앉아 있고는 했다.


정국
이석주... 이여주...


정국
나한테는 부모님보다도 더 소중했던 할아버지를...


정국
너희가 죽인 거야..

자신의 부모라는 사람들은 아기를 낳자마자 할아버지에게 버리 듯 넘기고는 다시 떠난, 그런 쓸모 없는 부모.

그런 상황에서 어린 정국에게 할아버지란, 마음 속에서 큰 한 칸을 차지하는 존재였다.

정국은 여주와는 달리 할아버지 외에는 친척도 없었기에 잠시 보육원에 보내졌다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는 기업 사람들이 도우미 아주머니를 붙여 주어 생활해 왔다.


정국
이제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은 그만 두고 싶다고...


정국
내가 하루빨리 할아버지의 자리를 물려 받아야 해.


여주
... 태형아.


태형
응? 여주야.

태형과 여주가 재회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여주
혹시... 그...


여주
오빠...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태형
미안. 아버지는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나한테는 알려주시질 않아.

여주는 애써 담담한 척 하려 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는 힘들었다.


여주
이렇게라도.. 찾지 않으면... 영영 못 볼 것 같아서...

그런 여주를 바라보는 태형의 눈가에도 눈물이 살짝 고였다.

태형이 살며시 여주의 손을 잡았다.


태형
「이런 상황에서도 설레는 나레기...」


태형
그... 여주야... 석주 형은 나한테도 소중한 형이었으니까, 내가 꼭 알아 볼게.


태형
금방 찾아낼 테니까... 응? 울지 마...


여주
고마워...

이 날 뒤로 태형은 수시로 뒷조사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 석주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정국
「예쁘다.」

정국이 여주를 다시 만났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기나긴 시간 탓이었는지, 정국은 여주를 알아 보지 못했고 여주를 '누나'라고 부르게 됐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여주가 편의점에서 놀고 있을 때, 여주 뒷목에 나 있는 토끼 모양의 점을 보고 알아채고야 만 것이다.


정국
「이여주!?」

정국은 이성이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여주의 목을 졸랐다.

물론, 편의점에서의 여주가 빙상장에서의 여주임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다.


여주
왜, 왜 그러는 거야!

여주의 목소리를 들은 정국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여주의 목을 잡던 손의 힘을 풀었다.


정국
누나...?


정국
내가 바라고 바라던 복수의 기회를 잡았는데..


정국
왜 나는 이 상황에서조차 여주에게 줄 면제부를 찾고 있는 거지.


정국
십 년이 넘도록 키워낸 분노인데...


정국
왜 너만 보면 이렇게 눈 녹듯 사라지는 거지.

여주를 다시 만난 뒤 찾아온 할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정국은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교회를 찾아가 혼자 앉아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


정국
......


정국
죄송해요, 할아버지.


정국
복수는 못 할 것 같아요.


정국
할아버지가 그랬었죠, 여주와 석주 형을 미워하지 말라고....


정국
어쩌면 전 지금 그 방향으로 돌아선 걸지도 몰라요.

막상 인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 해지는 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