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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there no one who can heal my wounds?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니, 눈은 뜨고 있었다. 간혹 눈이 따가워지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지.

아예 아무것도 안 보였다면 거짓말이다. 뭔가 흐릿하게 번지고, 패이는 자국들이 보였다.

이것이 현실인가, 환상이 아닌가… 아아, 신이시여. 제발요.

시각이 사라지니 안 믿던 신까지 부르짖는다.

유화처럼 그려지는 자국들은 이리 저리 페이드하다가 불쑥 사라지고, 다시 다른 색으로 나타난다.

내 주위에서 주저리 주저리 떠들며 내 정신을 거슬리게 하는 엑스트라들은 약 십 분 씩을 갭으로 계속 바뀌었다.

한 두명이 나가면, 네다섯 명씩 더 들어와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쯤 되자 내 목은 말 정도는 할 수 있게 움직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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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커억,

엑스트라

뭐야, 일어났나 봐.

아차, 자는 척 해야지. 자는 척.

여전히 목은 상당히 아팠다. 말을 하기가 버거웠다, 다행인지 나오긴 했지만.

아직도 엑스트라 여럿이 내 주위를 돈다. 이 정도면 한예화가 사실 교내의 인기쟁이라던가… 하는 건 아닌지 싶다. 사람이 떨어진 걸 구경하러 오다니.

내가 최대한 자는 척을 하며 그대로 누워 있자, 갑자기 엑스트라들의 웅성임이 더 커진다.

왜, 뭐 확실한 증거라도 나왔니? 내가 이여주를 민… 아아니, 한 적이 없으니 증거가 아니지. 입방정이야.

누군가가 나를 일으키고, 김남준 같이 생긴 큼지막한 물감 자국 하나가 엑스트라들을 줄줄이 끌고 나간다. 우왕, 백팔십의 기운.

검은색 대가리를 가진 아이가 내 앞에 착석했다. 살펴보면 두세명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 나와 저 검정색 대가리 하나만 있는 듯했다.

문제는, 눈동자 색이 안 보였다. 얼굴이랑 검은 대가리만 보인다.

흑발에 잘생긴 검은 눈이면 민윤기이고, 잘생긴 파란 눈이면 김태형일진대 보이지가 않았다.

먼저 말을 해 줘야 누군지 알 텐데, 내 앞에 앉은 이 사람은 대화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차마 박력 있게 마! 누고! 하기에 내 심장이 너무 쫄려서….

나는 몸부림 하나 치지 않는 그 인영에게 천천히 말을 건넸다.

찢어질 것 같던 목이 무색하게, 목소리는 세 겹에 네 겹으로 쩍쩍 갈라져서 나오고 있었다. 으윽,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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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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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죄송한데, 어, 제가 지금 안 보여서요.

익명의 학생은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만 있다. 대답 좀 해 주겠니.

나는 그 무례하게도 사람 쉬는 곳에 쳐들어와서 말 한 마디 꺼내지 않는 이에게 뺨싸다구를 날려 줄 마음이 충분히 있었지만, 겨우 참았다.

난 환자다. 나는 환자. 그 환자 나만 볼 수 이쒀요. 내 눈에만 보여효오.

나는 지진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목구멍을 달래며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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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제가 안 보여요, 이, 앞이.

싸가지 바가지! 그 사람은 놀랍게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근데 김태형이고 민윤기고 싸가지는 거기서 거기라.

난 질문을 꺼냈다.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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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러니까… 당신이 누군지 못 알아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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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누구세요?

내 피나는 노력에도 상대 싸가지바가지씨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참내, 이쯤되면 유토피아 내의 최고의 싸가지 전정국이 염색을 하고 들어왔다고 의심될 수준이다. 근데 그건 아닌 거 같고.

내가 수련을 통해 제 삼의 눈을 개안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

나는 이 싸가지바가지 친구를 차라리 벽이라고 생각하고 짜증을 내기로 했다. 꽤 이상한 엔딩이지만.

지금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 고로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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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럼, 벽이라고 생각. 하고… 상담해도 되죠?

상대는 답이 없었다. 나는 이걸 긍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쿠, 내 입이 제멋대로 나불거릴 준비를 하고 있군. 크크, 독설의 기운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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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나는, 시발,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지붕 쪽으로 따라오라길래 그냥 따라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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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존나 따라가니까 갑자기 밑으로 떨어지는 거에요. 난 잡을라고 같이 떨어졌죠. 근데 김태형이 이여주만 살리드라구요.

상대가 살짝 굳어서 손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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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민윤기는 뭐, 못 들었을 수도 있지. 그건 나도 이해해요. 물이니까 따로 손쓸 도리가 없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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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근데 전정국은 아니거든요. 그 새끼는 진짜 손 한 번 휘두르면 사람 넉댓명은 살릴 수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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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뭐 걔가 나를 살리고 싶어할 것도 아니고, 다 이여주 좋아하는 거 알긴 아는데. 난 아무도 안 좋아하거든요. 그냥 의사 된 마음으로 나 좀 살려주지 싶어서.

목이 불타는 것 같았다. 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가,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따끔한 말들의 연속이었다.

아우, 따끔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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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님,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 생각해요? 나만 그래요? 김태형 그 새끼는, 뭐, 네, 알만하죠. 이여주 살려야죠.

남주인공은 당연히 여주인공을 살리고 그런 법이지. 그런데 서브남주까지 그 대열에 끼어들 줄은 몰랐다 뭐 그런 얘기다.

물론 악녀를 살리는 빠가사리같은 남주인공이 있을 리 없긴 하지만, 김태형은 나 도와줬었는데. 쩝.

상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듯이 보였다. 오, 나 지금 긍정받고 있는 거?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쯤 되니 상대가 김태형도 민윤기도 아닐 거라는 확신이 생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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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렇게 생각하죠? 진짜 비겁하고 졸렬한 새끼들. 사람 하나 더 못 살리나. 나 며칠 정도 실명이랬죠? 삼 일?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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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진짜 더럽고 더러워도 그럴 애들 없죠. 그죠.

나 혼자 떠든다고 생각하고 후련해질 때 즈음, 상대가 내게 익숙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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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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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당신이 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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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민윤기?

이 중저음인데 술 취한 것 같은 목소리는, 빼도박도 못하게 민윤기였다.

…그러니까 나, 존나 장황한 앞담을 깐 거야 지금? 졸렬한 새끼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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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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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진짜, 미안하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현재 어장 물고기 중 일 위인 민윤기가 악녀에게 미안하다니?

나는 얼린 참다랑어로 머리를 힘차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에 어벙하게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미친! 이게 무슨 일이람!

영화 개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개막장으로다가, 「윤기: 뜻밖의 사과」.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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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빨리 낫고.

예? 빨리 나으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민윤기가 가장 착한 상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저기, 저기요! 뭐라는 거야! 너 민윤기 맞니?

슬슬 민윤기가 아닌 생명체가 되어가는 민윤기를, 난 생기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뭔가 더 말할 것처럼 웅얼거리다가 다시금 자리를 떴다. 미친, 이게 무슨 일이람. 시바.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몇 분이 지나고, 다시 검은 머리를 한 사람이 하나 들어온다.

또 민윤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김태형 같은 덩치도 아닌데.

저… 아, 저. 저. 누구지?

내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 사람도 내 눈빛을 눈치챘는지 몇 번 웃는다.

아, 아니. 이 악역같은 웃음소리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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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루카스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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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컬스 나인느

이름을 살짝 이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미친! 저 자식이 여길 왜 와!

이만 뷰, 이백 구독자!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다음 편은 그 둘을 합친, 박지훈과 한예화의 설탕대작전 특별편이 올라올 것 같아요.

여주의 고구마를 이번 편의 달달한 윤기로 힐링하시기♡

(이번 화도 삼천자, 허허, 부진하네용.)

늘 좋은 하루, 좋은 오늘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