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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전정국
목, 벗어.

나는 그야말로 쓰레기같은 표정을 했다.

뭐지? 얘는 유토피아에서 한국어도 안 배웠나? 아니, 유토피아어인가? 나 지금 어느 나라 말로 말하고 있는 거지. 흐음.

따지고 보면 내가 친구들과 한 대화도 얘네한텐 암호 수준이 맞긴 했다. 「JMT」이라든지, 「ㄲㅈ」라든지. 유토피아는 편지를 쓰거나 텔레파시를 쓰니까 저런 게 없지.

근데 저 말은 암호를 그렇게 쓰던 내가 생각을 해도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목 뭐? 벗어 뭐? 내 머리를 뜯어 너한테 주라는 소리야? 나는 전정국을 겨우 쳐다보면서 이 궁금증을 잔뜩 모은 질문을 던졌다.


한예화
무우우우우슨 말이야?

전정국이 날 깔보는 표정을 짓더니 아주 작게 대답했다.


전정국
목도리 풀라고.

- 아, 그런 말이었구나아. 빵긋빵긋.


한예화
왜, 더 때리게?

앗 시발, 말이랑 생각이랑 바꿔 말했다! 난 좆됐어!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을 지켜보는 전정국은 그렇게 나를 때리고 싶어하는 거 같진 않았다.

오히려 그냥 가만히 팔짱을 끼고 서 있을 뿐.


전정국
좆 안 됐어. 그냥 본다고.

앗, 응. 내가 미안하구나 사기캐야. 껄껄.

나는 목도리를 끌어내렸다. 분명히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전정국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한예화
…저기, 되게 더러운 것처럼 구는데 니가 한 거야.

뒤에 들어가야 할 새끼야라던지, 시발아라던지 욕은 톡 잘라먹고 말을 했더니 전정국이 마른세수를 한다.

…그렇게 드럽냐? 멍 든 자국이 그렇게 드러워?


전정국
흉해서, 더러운 게 아니라.


한예화
아, 응. 니가 한 거야.

나는 이 유토피아 내 최고의 철판 면상을 가진 전정국 새끼에게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말끝마다 「그리고 니가 한 거야」를 붙이기로 했다.

좋아, 지금부터 실행하자. 너에게서 미안하다는 소리를 꼭 듣도록 하지. 사기캐!


전정국
더 아프지 않냐, 목도리 하면.


한예화
흉하다며, 숨길 수 있잖아. 그리고 니가 한 거야.


전정국
…뭘 숨겨. 나쁜 것도 아니고.


한예화
멍이 나쁜 게 아니면 뭔데, 그리고 니가 한 거야.

전정국의 눈이 러닝머신 타듯이 요동쳤다. 잘한다, 000! 니가 한 거야로 앵무새가 되어 보자!


전정국
치료해줄 수 있는데.

오, 이게 바로 초능력 세계의 사과라는 건가?

그래도 예쁜 예화 언니 몸에 흉을 내다니 내가 용서 못 하지. 미안해 소리 들을 때까지 해야지!


한예화
해주면 고맙고, 니가 한 거니까.



전정국
…그래, 미안해.

헐, 이렇게 쉽게?


한예화
설마 능력 써서 읽었니?


전정국
안 해도 들려. 니가 너무 시끄럽게 생각해서.

시끄럽게 생각을 한다는 말은 또 처음 듣네. 온 지 이 주가 넘어가는데 난 왜 자꾸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는 걸 까먹냐.


전정국
치료해줄까?

난 잠깐 생각을 했다. 이걸 아프지만 부적처럼 가지고 댕겨, 아니면 그냥 치료를 받아?

그리고 내가 고통받고 전정국도 고통받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한예화
됐어.

짜식, 넌 이제 예화 언니 상판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몸부림칠 거다!


전정국
약 치워줄게.

무슨 말인지 여전히 이해는 못 했지만, 순간 전정국의 눈이 붉게 반짝이더니 내 옷에 묻어있던 예비 해독제가 (아니, 예비 해독제 말고 표현할 단어를 못 찾겠어!) 닦여 나간 듯 사라졌다.

약을 치워준다는 소리가 대체 뭐야. 얘 특성이 말 잘라먹기였나?


전정국
다음 수업 준비해.

또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 안에 전정국이 나를 텔레포트시켰다. 기숙사 방 앞이었다.

전정국은 무슨 기숙사였지, 걔도 레임이었나. 그랬던 거 같아.

쉬는 시간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 앞에 반짝이 가루가 뿌려진 거 같은 느낌과 함께.


박지민
한예화…!

저, 저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 같은 면상은…!


한예화
박지민!

좆됐다. 오늘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박지민
보고, 보고 싶었어. 한예화. 보고 싶었어…

박지민은 울먹거리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나에게 안겼다.

지금 말 한 번 잘못했다간 큰일이 난다. 박지민은 한예화와 가장 가까운, 비유하자면 고백 직전의 썸남썸녀 같은 관계이므로 한예화가 아니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다.

아 오늘 일진 진짜 왜 이래. 아아악. 내적 통곡.

난 할 수 있는 반응을 물색했다. 첫째 갓 만난 이산가족식 반응, 둘째 연인식 반응. 셋째…

츤데레식 반응, 이거다!


한예화
너만 보고 싶었냐, 나도 똑같은데.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백육십 칠쯤 되는 한예화보다 키가 훨 큰 박지민을 토닥였다.

크, 오글거리는 인소 츤데레 남주 명대사. 요거지.

박지민은 이젠 눈물까지 훌쩍거리고 있었다. 난 들킬까 봐 심장이 두근두근한데, 넌 펑펑 우는구나. 그래, 울어라. 이쁘다. 허허.


박지민
내가 아는 한예화 맞구나, 고마워. 사라졌을까봐 걱정했어.


한예화
니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

이 멘트의 포인트는 한 쪽 입꼬리만 올린 미소. 내가 내 원래 얼굴에서 이 짓을 했다면 엄청난 면상이었을 것이다.

뭐, 한예화니까~ 좀 슬프지만 최강 이쁜인데 어째.


박지민
보고 싶었어. 한예화.

그렇게 말한 박지민은 내 양쪽 뺨에 입을 맞췄다.

으아아아악! 미친, 미친, 미친. 한예화는 이게 익숙하겠지만 열여섯 000은 아니다.

강양이처럼 생긴 존잘한테 뽀뽀를 받다니 시발, 000. 인생 다 살았다!

속에서 마구마구 댄스를 하며 얼굴을 최대한 무덤덤하게 관리했다.


한예화
더 뜨거워졌네. 너.


박지민
원한다면 이보다 더할 수도 있어. 한예화 위해 뭔들 못 해.

아니야 지민아. 나 죽어. 진정해, 그러지 마.

순간 박지민의 해사하게 웃던 미소가 순식간에 와장창 깨졌다. 천사같은 얼굴을 하다 갑자기 살인 현장 목격자가 된 것 같은 눈빛.

나를, 아니 한예화를 보는 얼굴이 갑자기 썩었다. 팍삭.

뭐지, 여드름이라도 난 건가? 뭐 했길래.


박지민
어떤 새끼야?


한예화
뭐가.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박지민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좇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발, 나 목도리 안 하고 있구나!

그 말인 즉슨 예비 여자친구의 목이 멍이 들 정도로 졸린 걸, 박지민이 알아버렸단 거다.

내 상상에 증거라도 더하듯 박지민은 내 목을 손끝으로 눌렀다.


한예화
아윽!

앗 시발, 참았어야 했는데.


박지민
한예화 목 조른 새끼, 누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