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Royalty [Season 2]
39.




김석진 (27)
"천천히, 천천히! ... 조금 쉬어도 괜찮을 거 같아."

얼마나 달렸을까. 계속되는 불안함에 조금만, 조금만 더 안개 속으로 들어가자며 달린 것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마침 다들 피곤했기에 각자 자리에 앉으며 숨을 돌렸다.

그렇게 시작된 정적.

정적을 작은 목소리로 흔든 건, 다름아닌 정국이었다.

하지만 입을 땐 정국의 눈에서는 투명한 물방울이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최대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 눈이 붉었다.


전정국 (22)
"... 그거 알아?"

어느새 꽤 크게 흐느끼기 시작한 정국이 모두에게 물었다. 다들 애써 정국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석진은 그런 정국에게 애꿎은 손수건만 건네주었다.


전정국 (22)
"나, 호석이 형이 나 그렇게 보는 거 처음 봤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국의 말대로 방금 전 자신들과 싸우던 호석은 정말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함께 싸웠던 모든 이가 충격에 잠긴 상태였다.

정국은 후다닥 눈물을 닦아내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스산한 분위기에 더해지는 축축한 안개가 괜히 기분을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김남준 (27)
"... 김태형은, 어때요?"

잠시 앉아서 쉬자고 결론을 내리자마자 태형을 등에서 내린 백현은, 아직도 제대로 쉬지 않고 그의 몸이 편하게 누울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주고 있었다.


변백현
"모르겠어."


김석진 (27)
"조금만 기다리자. 곧 깨어날 것 같아."

석진의 말에, 다들 긴장했던 몸을 풀고 다시 자리를 편하게 잡고 앉았다. 태형의 자세를 마무리한 백현도 둘러 앉은 그들에게 합류했다.

배고프다던 정국이 갑자기 일어나서 주워 온 이름 모를 열매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피곤했기에 각자 잠시 눈만 감고 있고. 그 후에 남준이 결심한 듯 질문한 상대는 백현이었다.

어떻게 보면 처음 본 그 순간부터 했어야 했던 그 질문.


김남준 (27)
"어땠어요? 백현 씨 삶은."

질문을 들은 백현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숨죽이고 기다려 주었다. 아마 백현의 행실이나 지금 처한 상황만 봐도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복잡할지 예상이 갔기 때문 아닐까.

괜히 얌전히 떨어져 있던 잡초들만 만지작거리던 백현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변백현
"알면, 너희는 날 거부하게 될 거야."


김남준 (27)
"그 말은,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아예 모르진 않는다는 거네. 어쩌면 백현 씨 과거를 싹 다 기억한다는 말이네. 거짓말을 한 이유는 뭐예요?"


변백현
"..."

그때, 가만히 구석에 늑대의 모습으로 누워 있던 정한이 백현에게로 어슬렁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빤히 바라보지. 또 한참이나 정한의 눈을 보던 백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변백현
"내 날개 색."


전정국 (22)
"... 그 진한 남색?"


변백현
"생각나는 거 없어?"


김남준 (27)
"날개 색이 진한 남색이라고요?"


김석진 (27)
"..."


김석진 (27)
"... 설마."


변백현
"맞아."


김석진 (27)
"그래서 이런 말투가 왠지 모르게 어색한 면이 있었군요."


변백현
"... 응."

변백현.

본인 조차도 자신의 이름만 알고, 나이도, 출신도, 종족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한 존재. 하지만 이건 지극히 다른 이들에게서 귀찮은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제가 보여주는 소설일 뿐이었다.

백현은 하나도 빠짐 없이 모든 걸 다 기억했다. 자신의 시작부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도.

연한 하늘빛과 진달래를 닮은 색이 사이좋게 어우러진 두루마기가 환한 아침 햇살에 비춰져 눈부심을 뽐냈다. 머리 위의 갓은 묘한 성숙함을 풍겼고, 별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은 순수함을 보였다.

쉽게 말하면, 백현은 신라시대의 뱀파이어다.

뱀파이어계가 사용하는 정식 종족의 명칭은, "라화랑 족".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를 건 없었다. 각자의 날개색이 각각 다 다르다는 것 제외하면, (좀 두드러지는 특징이긴 했지만) 그냥 다른 뱀파이어들과 거의 같은 삶을 살았다.

그냥 지금 현재에서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신라 시대의 시간도 함께 흘러간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흘러가는 순간은 같고, 공간만 다르다는 것.

하지만 이런 라화랑 족이 보통 뱀파이어들과, 심지어 왕족이나 수뱀파이어 족들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체적 능력이었다.

강력했다. 거기다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자랑했지. 그런데, 백현은 이런 자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였다.

무술은 말할 것도 없었고, 능력 사용도 자유자재였다. 그가 다섯이 될 무렵, 어느새 제 또래들의 역량은 훌쩍 넘었고, 열이 될 무렵에는 감히 백현에게 덤빌 자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수준이었다.

"백현아, 아침부터 어딜 그리 가는 것이냐?"

그리고 그에게는, 누이가 한 명 있었다.

부모를 고작 세 살 때 사고로 잃은 후로, 백현에게 제 누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변백현
"아, 오늘 누구와 만나기로 했어."

"그래? 누구?"


변백현
"그냥... 뭐."

"그럼,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거라."


변백현
"응. 힘든 일 있으면 냅둬. 내가 다녀와서 할 터이니."

"괜찮아."


변백현
"그래도."

"아, 알겠으니 얼른 가거라. 약속 상대분께서 기다리시겠다."


변백현
"네. 다녀올게요."

백현의 누이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고, 백현 역시 미소를 지으며 인사에 답례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오늘 일을 얼른 끝내고 귀가해 제 누이와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을 했지.

휘익-!

탁-!!

"참으로 근사한 움직임이오!"


변백현
"하하,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 자네도 한 번 보내보게! 내 한 번 받아볼 것이니."

서로 꽤 알고 지내는 사이인 듯, 가벼이 말을 주고받으며 각자 부족한 능력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뛰었던지라 노을이 어둑어둑 찾아온다는 걸 조금 지나고 인지했다.

"오늘 고마웠네."


변백현
"나야말로 자네한테 고맙네. 오늘 수고했어."

"자네도 수고했어. 다음에 시간 되면 또 보도록 하지!"

간단한 인사와 함께 등을 돌린 상대방. 백현은 혼자 능력을 사용하며 장난을 치다, 이내 발걸음을 산뜻하게 집으로 옮겼다. 제 누이가 지어 놓았을 갓 지은 밥을 생각하니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물론 이 평범한 그의 생활은, 슬슬 아련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타닥 -

세 명의 뜀박질 소리가 분주하게 바닥을 울렸다. 곧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개꽃 그득한 벌판 앞에 도착한 은비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이 안으로 들어가면 태형을 만날 수 있을까.

혹시 헛된 희망은 아닐까. 은비는 지금 이 상태에서 헛된 희망까지 품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계속 다음 행동이 두렵고 망설여졌다.

근데 갑자기 망설이는 그녀의 앞에서 빈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황은비 (23)
"... 왜."


문 빈 (23)
"우리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

예원은 살며시 은비의 손을 그러쥐었고, 빈도 천천히 그 반대손을 잡았다. 곧 셋은 억울하리만큼 찬란하게 타오르는 빛을 받으며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건너편은 안개가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서인지, 계속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이 마냥 안전하다고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진짜로, 진짜로 여기서 태형을 만날 수 있을까.

은비는 제 주머니에 고이 넣은 태형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손으로 꼭 쥐었다.

뭐가 됐든 확실한 건, 태형이 편지를 통해 자신더러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이 안개꽃밭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며 멍청히 기다리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았다.

그렇게 날카로운 잎들에 피부가 쓸려도, 셋은 무심하게 그것들을 지나며 앞으로 전진하기만 했다.

덜컹-!

저벅

저벅 -

저벅 - 저벅

저벅 - 저벅 -

스윽 -

제 방으로 들어온 승우가, 천천히 제 뒤를 따라오던 호석에게로 몸을 돌렸다. 호석의 표정에는 미동이 없었다. 그냥, 승우의 명령을 기다리는 로봇 같았다.

한승우 (27)
"놓쳤다고?"


정호석 (27)
"... 죄송합니다."

허리를 90도 숙이는 호석을, 승우는 그냥 바라보았다.

한승우 (27)
"그래서... 찾는 걸 포기하고 넌 그냥 온 건가?"


정호석 (27)
"특수 훈련된 군사들만 포함한 수색팀을 근처에 여러 팀 배치하고, 전 도련님께 보고하려 잠시 자리를 비운 것입니다."

한승우 (27)
"주변에 있는 곳은 다 뒤졌어?"


정호석 (27)
"예."

한승우 (27)
"..."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앞쪽으로 돌리던 승우가 눈 크기를 살짝 키우며 다시 호석을 바라보았다.

한승우 (27)
"안개꽃밭은?"


정호석 (27)
"... 네?"

한승우 (27)
"우리가 걔네 놓친 곳에서 조금만 더 달리면 반은 멀쩡하고, 반은 짙은 안개가 깔린 안개꽃 가득한 밭이 나와. 거기는 확인했어?"


정호석 (27)
"아니요.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한승우 (27)
"당장 수색해. 아마 숨기 쉬우려고 안개가 깔린 쪽으로 갔을 거야."


정호석 (27)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