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의 호수와 동산의 호수에 바람이 건듯 불었다.
바람이 천천히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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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그 꽃을 부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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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동안 여주는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릴적 읽은 동화 속의 아름다운 공주, 그리고 그 옆에 선 왕자. 여주는 똑똑히 기억했다. 어렸던 저의 꿈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으니까.
내 인생에 멋진 왕자는 없을테니, 나의 꽃을 만들자는 꿈을 잊을 수 없었으니까.
“아 그분? 이 백작가 막내아들이셔.”
“정말요? 그분 이름이 뭐에요?”
“백작님께서 워낙 막내아들을 아끼셔서 나도 잘 몰라 너보단 2살 많을거야.”
여주는 양을 몰때 쓰는 지팡이를 꾹 잡았다. 관리인 진이 일하러 떠난 후에 여주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분의 이름은 뭘까. 그분은 가명을 쓰지 않을테니 내가 지어줘야겠지.
페어마인니히트, 나의 꽃이여
“우리 물 마시러 갈까? 어때 시스?”
여주는 닿지 않을 말들을 중얼거렸다. 양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나의 꽃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여주는 여느때처럼 양들을 몰았다. 동산의 작은 웅덩이에서 물을 먹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동산 밑의 호수까지 내려왔다. 이러면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어린 소망이었다.
“여ㅈ.. 이자벨! 얼마나 찾았는데”
“지민아? 왜?”
“모자 바꿔줘. 빵모자는 어디 버렸냐고 혼났단말야.”
“응. 여기 가져가.”
“웬일로 고집을 안부리네?”
모자를 고쳐쓰는 지민을 보면서도 여주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나의 꽃이 있으니까 괜찮아. 지민은 바쁜 듯 금세 인사를 하고 자신의 동산으로 돌아갔지만 여주의 눈은 가까운 정원에 꽂혀있을 뿐이었다.
“예쁘다. 저 정원.”
여주는 근처의 물망초 하나를 따서 호수에 띄웠다. 잠자리 하나가 그 위에 앉아 물망초를 타고 유유히 향해갔다. 잠시 엎드려 푸른 잔디를 볼로 느끼며 물망초를 구경하던 여주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정원 저 멀리에 나의 꽃이 서있었다.
“니히트?... 왜 이시간에... ”
양을 모는 꼬질한 제 꼴을 들키기 싫었는지 여주가 급하게 양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제 꽃은, 양들 사이로 겨우 비치는 모습임에도 빛났다. 모든 움직임이 봄바람 같았다. 가끔 보이는 웃음도 따뜻했다. 부르고 싶고, 닿고 싶었다. 그러나 여주는 그대로 숨어있을 수 밖엔 없었다.
“시스, 저 분 어때?”
“...넌 잘 모르겠지? 이제 동산으로 가자. 이제 여기로 매일 물 마시러 올테니까 아쉬워하지 말고.”
여주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자박자박 먼저 걸어갔다. 아까 꽃의 움직임만큼 부드러운 움직임이 온몸을 감쌌다. 슬슬 따뜻해지는 바람결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그이에 대한 한탄을 담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