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주 소믈리에는 현실 감각이 부족한 것 같군요."
"..."
"납품 단가는 더 이상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빌딩 숲의 한복판. 대한민국 최고 와인 수입사 '라비앙'의 이사실.
깔끔한 수트 차림의 한 남자가 차가운 눈빛을 쏘아붙이고 있다.
'라비앙'의 최연소 이사 '강태현'.
그리고 그를 상대하고 있는 와인샵 '벨룸'의 대표이자 헤드 소믈리에 '한여주'
"강 이사님.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저희도 이건..."
"스페셜 한정판 와인을 납품받고 싶으시면 이정도는 가능하지 않나요?"
"..."
"다른 데도 아니고 벨룸인데?"
"이사님..."
태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여주에게 다가갔다.
"라비앙에서 벨룸 많이 도와드린 거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번 시음회 때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와인샵이라는 곳이... 저희도 신뢰가 가야 단가를 어느정도 조정하지 않을까요?"
"..."
태현은 조금더 여주에게 다가가 비웃는 듯 말했다.
"한 달입니다. 한 달 안에 벨룸 재정비 하고 다시 찾아오시죠.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그러고는 여주를 지나쳐 그대로 이사실을 나갔다.
여주는 한숨을 쉬면서 지훈의 책상에 놓인 명패를 내려다보았다.
'이사 강태현'
정말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듯한 인간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할아버지가 성공시켜놓은 '라비앙'
태어날 때부터 이미 금수저로 태어난 것도 모자랐는지
사업 이어받겠다고 아무것도 모르던 20살에 낯선 프랑스로
가서 5년 간 와인 공부를 했다고
그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고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이사 자리에 꽂아줬으니 온 세상이 자기 것처럼 보이겠지
능력이 없으면 뭐라 말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잘하는 걸.
재벌 기업에서 하나씩 나오는 사생활 논란 조차 없고
정말 일에만 미쳐있는 워커홀릭이니 당연히 예뻐하시지
여주는 죄없는 태현의 명패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결국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날 밤.
여주는 와인샵을 마감한 후 문을 잠갔다.
오전부터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지하철역으로 발을 옮기려던 여주의 시야에는 맞은편 꽃집이 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워져있었는데 금세 주인을 찾은 모양이다.
'플리네'
'이름 예쁘네...'
여주는 아무렇지 않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때 꽃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와 눈이 마주치더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네이비색 앞치마를 입은 채 손에는 장미 몇 송이를 들고 있는 남자.
"이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