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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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용은 현실과 무관합니다.
<bgm과 함께 하시면 더 좋습니다!>
이삿짐 트럭이 마지막 상자를 내려놓고 떠났을 때 동네는 이미 개구리 소리로 가득했다
엄마 "하나야 공기 좋지?"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공기는 좋았다 대신 편의점까지 걸어서 이십 분이 걸렸고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였다
엄마가 새 일을 구한 곳이 여기였다
서울을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떠나서 아쉬운 친구가 없다는 게 조금 웃겼을 뿐이다
엄마 "여기선 하나도 친구 많이 사귀자 응?"
짐을 반쯤 풀었을 때 옆집 할머니가 바가지에 오이를 가득 담아 오셨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딱 두 마디였는데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엄마 등 뒤로 반 발짝 숨었다
할머니는 허허 웃으며 낯가리나 보네 하고 돌아가셨다
방 한구석에 통기타 케이스를 세워두고 그 옆에 노트를 올려두었다
이사 오기 전날 밤에 쓴 문장이 첫 장에 그대로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는 먼저 인사해보기'
이사 온 지 한 시간 만에 벌써 한 번 못 지켰다
그날 밤 창문을 열자 개구리 소리가 방 안까지 밀려들었다
나는 노트 귀퉁이에 작게 적었다
'...시작'
첫 등굣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아파트 대신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있었고 논에는 막 물을 대기 시작해서 하늘이 거울처럼 비쳤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눈앞에서 떠났다
하나 "...아"
다음 버스까지 사십 분
결국 걸어갔다
교문에 도착했을 땐 운동화가 흙먼지로 하얘져 있었고 1교시 종이 울리고 있었다
전학 첫날 교실 앞에 섰을 때 스무 명 남짓한 눈이 한꺼번에 나를 봤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담임 "서울에서 온 문하나다 자기소개 한번 해볼까?"
머릿속에는 할 말이 다 있었다
그리고 웃자
첫인상은 웃는 얼굴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나는 있는 힘껏 입꼬리를 올렸다
하나 "...무...문하나...입니다..."
앞자리 남자애가 의자째 살짝 뒤로 물러났다
남자애 "...방금 웃은 거야?"
여자애 "몰라 나 좀 무서웠어"
자연스럽게 웃어보려고 하였지만 어색하여서 얼굴이 경직되었다.
선생님께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셔서 앉았다.
수많은 눈길들이 나를 향한 가운데
오로지 나를 보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창가 앞자리에서 이어폰을 한쪽만 낀 채 문제집을 풀던 남자애
그 애는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 펜 끝이 이상하게 박자를 타고 있었다
톡 톡톡 톡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친해지고 싶어서 옆자리 애가 떨어뜨린 지우개를 주워줬더니 그 애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먹자고 말하려고 뒤에서 한참 서 있었더니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비켜줬다
복도에서 들은 소문은 더 엉망이었다
남학생 : "전학생 서울에서 뭐 하다 왔대?"
여학생 : "몰라 근데 눈 마주치면 그날 운 나쁘대"
그런 거 아닌데
나 그냥 인사하고 싶었던 건데
그날 복도 끝에서 1학년 명찰을 단 남자애가 매점 빵을 한 아름 안고 뛰어오다 나랑 정면으로 마주쳤다
빵 세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얼른 주워서 내밀었다
1학년 : "헉 감사합니다 누나!"
그 애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는 얼굴로 활짝 웃고는 다시 뛰어갔다
누나
여기 와서 처음으로 누가 나를 불러준 말이었다
점심은 늘 별관 뒤뜰 벤치에서 먹었다
등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자리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직 오월인데 바람에서 벌써 여름 냄새가 났다
이어폰에서는 늘 같은 사람의 곡이 흘러나왔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우연히 찾은 이름 없는 작곡가
닉네임은 daymoon
팔로워는 마흔 명 남짓
곡은 늘 새벽 두세 시에 올라왔다
그 사람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나는 한 번도 댓글을 달지 못하고 좋아요만 몰래 눌렀다
계속해서 밥을 혼자 먹었을 때
가끔 등나무 너머 체육 창고 뒤쪽에서 누군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을까 봐 숨죽여 부르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그런데 가끔 한 소절씩 참지 못한 것처럼 높은 데까지 뻗어 올라갔다가
다시 뚝 작아졌다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리면 소리는 거짓말처럼 끊겼다
누가 부르는 건지는 몰랐다
나의 일상의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밤마다 노트를 폈다
오늘도 한마디도 못 했다
매점 아줌마한테 감사합니다 한 번
그게 오늘 내 목소리 전부
쓰다 보면 문장들이 이상하게 가사처럼 줄을 맞췄다
나는 그 아래에 코드를 적어 넣고 통기타를 무릎에 올렸다
소리 죽여 몇 번 튕기다 보면 그제야 숨이 좀 쉬어졌다
엄마 "하나야 학교는 어때 친구 좀 사귀었어?"
하나 : "...응 조금"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다행이다 하고 웃으며 문을 닫았다
나는 노트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전학 온 지 삼 주째 되는 금요일이었다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비가 와서 뒤뜰 벤치에 앉을 수가 없었다
갈 곳을 찾다가 별관 끝까지 걸어갔다
창고처럼 쓰는 교실 문 위에 바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음악실
음악 수업은 본관에 새로 생긴 음악실에서 했다
그러니까 여기는 아무도 쓰지 않는 옛 음악실이었다
그 아래에는 누가 손으로 쓴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테이프는 누렇게 떠서 한쪽 귀퉁이가 들려 있었다
밴드부
노크 필수!!

느낌표 두 개가 이상하게 신나 보였다
그런데 문 앞엔 먼지만 쌓여 있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은 먼지 냄새가 났다
천을 덮어둔 드럼 세트가 구석에 서 있었고
그 옆 벽에는 줄이 다 늘어진 기타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기타 몸통에 바랜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누군가의 이름 같았지만 반쯤 벗겨져서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창가에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다
뚜껑을 열고 건반 하나를 눌렀다
음이 살짝 어긋나 있었다
그래도 비 오는 소리 사이로 퍼지는 그 소리가 좋았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노트에 적어둔 멜로디를 더듬더듬 짚었다
오른손은 멜로디 왼손은 아무렇게나
말로는 한 번도 못 한 말들이 손끝으로는 나왔다
빗소리에 묻혀서 아무한테도 안 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쳤다
얼마나 쳤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음을 누르고 손을 떼는 순간
드르륵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 : "...그거 그렇게 치는 거 아닌데"
나는 숨도 못 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안녕하세요! 히키 입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저질러 버렸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과 하트 부탁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