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2화 - 협상

거실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우진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 총까지 겨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했다. 나는 현관에 주저앉은 채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기한이라는 거, 언제까지예요?”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기한.”

“마음 바뀌어서 날 죽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야 모르지.”

 

 

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다시 휴대전화로 시선을 내렸다.

 

 

“회장님 마음 내킬 때겠지.”

 

 

정해진 기한은 없다는 뜻인가. 지금 당장 전화 한 통으로 죽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일이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아빠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세히 알려준 적은 없지만 적이 많다는 것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납치까지 당했었다. 눈을 가린 채 낯선 창고에 갇혀 있다가 하루 만에 구출됐고, 그날 이후 등하교 때마다 아빠가 붙여준 사람들이 따라다녔다.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지만 벽을 짚으면 걸을 수는 있었다.

 

 

“아빠 방에 가봐야겠어요.”

 

 

우진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안 가는 게 좋을 텐데.”

 

대답하지 않고 아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윽…….”

 

팔을 들어 코를 틀어막았다. 거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서랍은 전부 열려 있었고, 바닥에는 서류와 깨진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검붉게 말라붙은 피가 보였다.

 

여기까지 왔던 거구나.

 

아빠의 책상 옆으로 걸어갔다. 벽에 붙어 있던 금고는 문짝이 통째로 뜯겨 있었다. 금속 금고인데도 마치 천을 찢은 듯했다. 이런 식으로 하겠다는 거군. 내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어지러운 바닥을 뚫고 지나가, 금고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에는 서류철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다지 중요한 문서는 아니다. 금고 안쪽으로 손을 뻗는다. 서류철을 지나쳐, 안쪽 벽에 손을 대곤 꾹 눌렀다. 묵직한 벽이 뒤로 밀리더니 좌우로 벌어졌다. 새로 드러난 한 뼘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 안에는 2G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문자와 통화밖에 되지 않는, 아주 오래된 핸드폰이.

 

아무튼 이쪽은 못 본 거구나. 휴대전화를 집어 드는 순간,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빠 서재. 어릴 때 정말 많이 왔었다.

 

 

-

 

 

아빠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무릎 위에 올라앉아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곰인형을 안은 채로 흥얼거리다, 은빛 금고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금고를 이렇게 놔둬도 돼요? 소중한 걸 넣잖아요.”

“소중하지.”

“내가 도둑이라면 훔쳐 갈 것 같아요.”

 

 

아빠는 호탕하게 허허 웃으시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심시키는 게 가장 큰 방어란다.”

“방심?”

“그래. 이렇게 뒤를 누르면…….”

 

 

아빠는 날 다리에서 내려놓더니, 금고 안쪽으로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러 금고 문을 열고, 금고의 안쪽 벽을 꾹 눌렀다. 막혀 있던 벽이 뒤로 밀려나더니 양옆으로 벌어졌다. 나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트릭같았다.

 

 

“공간이 나오지.”

“우와!”

 

 

나는 곰인형과 목걸이, 팔찌를 전부 여기에 넣겠다며 내 보물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이러면 안심될 것 같아요! 이거 다 넣을래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지.

아빠는 씩 웃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제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올라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곧장 달려가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럼 아빠는 여주를 넣고 싶네. 내 보물.”

 

 

자상한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곤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빠의 품도, 손길도, 마음도 모두 포근했다. 포근했었다.

 

 

-

 

 

코끝이 찡해졌다. 점점 흐려지는 눈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무슨 감상에 젖어있는거야, 나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야한다고. 아빠. 내가 무조건 지켜낼게. 아빠가 지키려고 했던 거는.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핸드폰을 꾹 쥐었다. 은빛의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슬라이드를 해 폰을 열었다. 화면은 여전히 검은색이다. 전원 버튼을 눌러도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언제부터 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데다, 요즘 사용하는 충전기와는 단자도 맞지 않았다.

 

이걸로 협상해야겠어.

 

나는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아빠의 서재를 나왔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서재 문 옆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응? 아까도 열려 있었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입과 코가 틀어막혔다. 굵은 팔이 허리를 감아 뒤로 잡아당겼다. 안돼…! 협상도 해보기 전에,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입이 틀어막혀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다.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씨발, 씨발…!

 

속으로 욕을 삼키는 그 때, 날 제압하고있던 남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단단히 나를 붙든 팔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남자는 눈이 뒤집힌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 쪽에 총을 맞은 것 같았다.

 

남자가 나를 놓으면서 한 차례 몸이 휘청였다. 덜덜 떨면서 고개를 들려던 찰나, 한 차례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내 뒤쪽이었다.

 

 

“씨발, 누구야!”

 

 

목소리도 뒤쪽 창문에서 들렸다.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한 명 더 있었던거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목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열린 창문 너머로 남자가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성큼성큼 창문 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 새끼들은 열쇠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내가 필요하니 함부로 죽이진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행동이 당돌해졌다. 그 남자가 넘어오기 전에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 남자가 복도 안 쪽을 보던 시선을 거두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쨍그랑! 하고 창문이 깨졌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창틀을 붙잡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뒤로 떨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뒤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빠각.

 

유리 조각이 밟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우진은 내 옆에 서 있었다. 손에 든 총 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목을 어루만지며 우진을 올려다봤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휴대전화를 든 손을 우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아빠 금고 안에 있던 거예요. 나랑 아빠만 아는 공간에.”

“…….”

“비밀번호가 걸려 있을 거예요. 충전도 해야 하고.”

“…….”

“비밀번호가 걸린 휴대전화가 있다고 보스한테 말해요.”

 

 

우진이 한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나한테는 죽이는 대신 날 지킨다고 약속해요.”

 

그게 내가 건 협상의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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