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의 푸르스름한 하늘을 닮은 소년이었다.
늘 교실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머물며, 제 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물들이던 아이.
휴닝카이는 학교라는 똑같은 틀 속에서 언제나 외딴섬처럼 혼자
떨어져있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길게 내려앉은 앞머리 틈새로 간혹 내비치는 눈빛은
유독 쓸쓸해 보였다.
"카이야, 이거.."
방과 후의 교실은 낮 동안의 열기가 빠져나가 유독 서늘했다.
주인을 잃고 바닥에 뒹굴던 해진 노트를 주워들었을 때,
마지막장에 흘려 쓴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가방을 대충 챙겨 메고 교문을 나선 것은,
그저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소년의 이면에 일렁이는 정체 모를 슬픔에 자꾸만 시선이
붙잡혔던 탓이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학교 뒷산의 끊어진 산책로 너머,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수풀 안쪽이었다.
도시의 소음이 뚝 끊긴 그곳은 마치
시간마저 느릿하게 흘러가는 투명한 유리병 속 같았다.
지는 노을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공간의 중심에,
그가 위태롭게 서있었다.
바스락-
마른 잎사귀를 밟는 작은 소리가 정적을 깼다.
"...!"
카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교복 셔츠 너머로 돋아난, 은색빛의 신비로운 사자 귀와
길게 늘어진 꼬리.
소년의 겉모습 뒤에 가려져 있던 맹수의 흔적들이 날것의
상처처럼 공기중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밎나는 백사자의 갈기는 기묘할 정도로
아름답고 아련했다.
"...다가오지마."
낮게 긁히는 목소리가 숲의 온도를 순식간에 떨어뜨렸다.
소년의 푸른 눈동자는 잔뜩 날이 서 있었지만,
그 눈동자 안쪽에는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새끼 짐승같은
거대한 두려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카,카이...? 너 머리에 그건..."
"봤으면 그냥 가."
그가 가뿐 숨을 삼키며, 하얀 털이 돋아난 손으로
제 교복 깃을 거칠게 쥐어짰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든 숨기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가서 괴물이라고 비웃든가, 마음대로 해.
어짜피 인간들의 다정함은 늘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호기심이 끝나면, 결국엔 무섭다며 등을 돌리잖아."
휴닝카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오랫동안 곪아 터진 배신의
흔적들이 묻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밀려나,
결국 이 외딴 숲 구석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백사자의 말.
그 외로움의 깊이를 내 마음 한 구석을 먹먹하게 찔러왔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 대신, 카이가 만들어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안 가.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 안할거야."
"거짓말 치지마. 내가 그거에 얼마나 속은지 알아?"
"진짜야. 난 이거 돌려주러 온 것 뿐이야."
나는 가방에서 카이의 낡은 노트를 꺼내 발치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굽혀,
잔뜩 웅크린 카이의 시선과 높이를 맞혔다.
잔뜩 곤두서 있던 카이의 하얀 귀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사자는 밀림의 왕이라는 사자가 왜
고양이처럼 떨고있어. 걱정하지마, 휴닝아 여기는 아무도 오지않는
너만의 세계잖아. 오늘부터 나도 이 숲의 일부가 될게.
네 비밀을 꼭 안아줄 작은 새가 되어줄게."
"진짜.. 날 무서워하지 않는거야?"
날카로웠던 그의 눈빛이 일순간 봄눈 녹듯 아스라하게
풀려갔다. 굳게 잠겨있던 마음의 빗장이, 따뜻한 온기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찰나였다.
휴닝카이는 천천히 나무를 타고 주저앉으며 서있던 귀를
푹 숙였다.
그 솔직하고 무방비한 모습이 지독하게 안쓰러워,
나는 가만히 그의 곁을 지켰다.
비밀이 시작된 숲속에서, 서투른 백사자와 나의 첫페이지가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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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