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이

08











그날 이후, 한동안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그 기색이 옅어졌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민호의 표정 뿐이었다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도드라지던 예전과는 달리
묘한 표정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슬픔도, 피곤함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가끔 민호가 내게 그런 표정을 보일 때면
말문이 턱 막히곤 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


유난히 바빴던 오늘,
뻐근했던 어깨를 뒤틀며 탈의실로 향했다

땀을 가득 머금은 유니폼을 쇼핑백에 대충 쑤셔 넣고
보송한 사복으로 환복했다

탈의실 밖으로 나오니 살짝 열린 사무실 문틈 사이로
검은 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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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머리를 맞대고 잠든 민호였다

닫힐 듯 말 듯 벽에 살짝 닿아있는 문을 밀어내니
감겨 있던 눈을 급히 뜨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일찍 끝났네.. ”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었다

뒷주머니와 후드 주머니를 번갈아 가며 더듬다
이내 차키를 손에 쥐었다

잠이 덜 깬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던 민호는
푹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 오늘 바빴냐 ”

“ 응 졸라 바빴음 “


내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도착한 주차장은 유난히 서늘했다

닭살이 오소소 돋은 팔을 바쁘게 문질렀다


“ 야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호는
입고 있던 후드를 훌렁 벗어 내게 던졌다









“ 오늘은 여기서 내리시죠, 저 기름 넣어야 됩니다 “

” 예예 특별히 그래드리죠~ “


어쩔 수 없이 사거리에서 내렸다

집까지 5분 정도 걸어가야 했지만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중간중간 설치된 가로등이
앞을 노랗게 비춰주었다


” 저기요 “


흥얼거리며 걷던 와중 누군가가 손목을 텁 붙잡았다

한쪽 이어폰을 빼고 뒤를 돌아보니
덩치 큰 낯선 남자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 뒤에서부터 불렀는데 못 들으셨어요? ”

“ 아, 네.. 이어폰 끼고 있었어서… ”

“ 다름이 아니라 번호 좀 주시면 안 될까요? ”


좁고 어두운 골목

이 골목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이 남자 뿐이었다

가는 손목 위를 움켜쥔 손은
도저히 놓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순간 겁을 먹고 세게 손을 뿌리쳤지만
커다란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아뇨, 남자친구 있어요 ”

“ 그래도 번호 주시면 안 되나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


벗어나려 할 수록 점점 조여오는 손아귀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 놓고 얘기하세요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곧바로 손목을 조이던 묵직함이 서서히 풀렸다

남자는 잠시 당황한 듯 얼었지만
이내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 누구신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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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남자친구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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