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ección de cuen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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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篇


사랑을 타고 흐르는 진한 풋사과 향.


말랑공 씀.




*본 글의 소재는 영광스럽게도 자나깨나입조심 님께서 주신 소재입니다.




 “얘들아, 지민이가 전학을 가게 됐어.”


 그 말이 내 귓가에 닿자마자 모든 게 무너져내린다. 내 마음도, 조그마한 희망도, 내 세상도. 그저 낭떠러지뿐인 저 너머로 무너져내려간다. 아주 조금이라도 지탱해 줄 엉성한 지푸라기조차 없다. 낭떠러지 너머엔 시커먼 블랙홀만 빙빙 돌고 있을 뿐.


 박지민. 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다. 그러곤 주위 애들을 둘러보며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의 시선이 점점 옮겨지며 내 시선과 맞닿으려고 할 때 나는 고개를 떨궈버린다. 그와 눈만 마주치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것만 같아서, 부끄러워하며 어색한 표정을 짓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질 것만 같아서 최대한 그의 시선을 피한다.


 아쉽다고 말하는 애들과 달리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입을 꾹 닫고 있다. 샤프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는 애들과 달리 나는 샤프를 꼭 잡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연습장 위로 꼭 잡은 샤프를 올려 무의식적으로 박지민이라는 이름을 꾹꾹 눌러쓴다. 박지민. 그 석 자를 다 썼을 때즈음 나는 놀라고 만다.


 내가 이 이름을 왜 쓴 거지. 어지간히도 널 붙잡고 싶은가 봐, 지민아.


 “자, 얘들아. 종례하게 조용히 좀 해라.”


 어느샌가 선생님께서는 종례를 시작하고 계셨다. 오늘 하루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그가 전학 간다는 소식밖에 못 들은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내 시간은 아무래도 그가 전학 간다는 소식을 선생님께서 들려 주셨을 때 그때 멈춘 듯하다.


 “정말 급작스럽게 내일 전학 가게 됐으니까 다들 지민이랑 인사 잘 하고.”


 그 후로 선생님께서 종례를 계속하셨지만 내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오직 그가 전학 간다는 소식과 그에게 고백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잔뜩 들어있었다. 차일 확률이 거의 90%라서 너무 무섭기도 하고, 한 번도 말을 걸어 본 적 없는 애가 갑자기 고백을 하면 불쾌해할 수도 있고, 하지만 여기서 안 한다면 미련이 남아 후회가 될 것 같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뭐 해, 안 가?”


 내 친구 미현이가 책가방을 메고서 내게 다가와 묻는다. 나는 미현이의 물음에 주위를 둘러본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나가 없으셨고 애들은 모두 뒷문과 앞문을 통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종례가 다 끝난 모양이다.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도 못 했는데… 하지만 내게 종례 따위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박지민, 그뿐. 나는 그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나 그 또한 나갔는지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미현이에게 그의 행방을 물어보려 입을 떼었지만 이내 입을 다시 다문다. 미현이에게 물어본다면 분명 미현이는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 것이다.


 “가자, 미현아.”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는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짝사랑 상대. 박지민. 조금씩 마음을 접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라도 그에게서 정을 떼어 보려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에 대한 사랑을 도려내려 한다. 그래야 내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세상은 야속하게도 내게 진한 풋사과 향을 흘려보낸다.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그의 풋사과 향. 오늘따라 진한 그의 풋사과 향. 그 풋사과 향은 조금씩 접어가는 내 심장을 다시 한 번 더 간지럽힌다. 이대로 집에 가버리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후회할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접는다 한들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용기를 내 고백을 해야 한다. 다시는 내게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차이더라도 내 마음을 그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편이 훨씬 더 후련하고 미련이 덜 남을 것 같다. 나는 미현이에게 먼저 가라고 말한 후 진한 풋사과 향을 따라 내 발걸음을 옮긴다.


 산뜻한 풋사과 향이 점점 진해질 때즈음 그가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계단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그가. 나는 그런 그를 불러본다.


 “지민아…!”


 그는 내 부름에 우뚝 선 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뒤를 돌아본다. 그는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예쁜 미소를 짓는다. 무슨 일이야? 라고 말하는 그.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기회는 지금뿐이니깐.


 “나… 너 좋아해…!”


 그는 내 고백에 얼굴이 잠시 풀어진다. 아무래도 놀란 듯 보인다. 그와 나 사이에 아주 잠깐 정적이 흐르다 그가 예쁜 미소를 머금으며 하는 말에 그 정적은 깨진다.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자신이 가던 계단을 유유히 내려간다. 고맙다라… 그건 내 고백을 거절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차일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마음이 아프긴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을 전해서 후련하긴 하다. 계속 묵히기만 했다면 마음이 더 답답했을 것이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그가 지나간 계단을 바라보고만 있는다. 그러곤 그가 남긴, 은은하게 풍기는 풋사과 향을 맡는다.


풋사과_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