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35화. 폭풍전야



한 동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는 

몸도, 마음도 지쳤는지

소파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의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가만히 그의 옆에 앉아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거실 창으로 스며들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 날 수연이의 전화를 받지 못 했다면,

 오늘 이런 일이 없었을까...



내가 그 날 인터뷰에 늦어 

수업을 하지 못 하게 됐다면

우리는 애초에 만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살았을까.'







나는..

내 눈물보다 상대의 눈물로

내가 더 아플 수 있다라는 것을

그 날 밤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참 아픈 거네.'





한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다보니,

창 밖이 어렴풋이 환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매니저님께 오늘 스케줄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보내 놓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있는 재료들을 확인하고,

요리할 만한 것들을 꺼내어

싱크 상판에 올려 놓았다.





혹시라도 소리에 깰까봐

조심스럽게 씻고, 썰고...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요리를 하느라

조용히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두시간 쯤 지났을까...





그가 부스러거리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요?
 
 소파에서 자느라 불편했죠?

 너무 곤히 자길래 안 깨우고 놔뒀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매니저님한테 여쭤보니,

 오늘 스케줄이 오후에 있다길래

 아침 식사 준비하고 있었어요.


시끄러워서 깬 거죠?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나...

마지막으로 밥 먹이고...

헤어지려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멈칫했다.






"밥 먹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훈지씨 그냥은 밥 못 먹겠네..ㅎ

 불안해서."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남친한테 밥 먹일 정도로

 요리를 잘 하지 못해요..

 그런 건 요리 잘 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 ㅎ"





나의 농담에도 웃지 못하는,

불안해 보이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밤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좀...

 인정하기 자존심 상하기는 한데

 훈지씨보다 내가 당신을 더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좀 더 아팠던 것 같아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계속 지기로 했어요."







그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미간에 힘을 주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형편없는 요리 솜씨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움직이느라

두 가지 모두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레시피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느라 

휴대폰을 집어 든 순간,

그가 뒤에서 조용히 나를 안았다.





따뜻한 그의 체온이 천천히 등을 감쌌다.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이제 가서 세수하고, 샤워해요.

 지난 번에 사용했던 칫솔이랑 그대로 있어요.

 나는 하던 거 마저 하고.

 우리 아침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내가 촬영장까지 데려다 줄께요."





그를 욕실로 들여 보내고,

다시 레시피를 읽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왠지 번호가 낯설지 않았다.





"저장이 안 된 번호인데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지?"





받기 전에,

화면에 떠 있는 번호를 보다 보니

왜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졌는지 알게 되었다.





'훈지씨랑 뒷번호가 같잖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천천히 통화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유정아 씨 휴대폰인가요?"





"네...맞는데요..."





"...누구세요?..."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36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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