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95화. 진격의 훈지

sophie97
2026.08.01Vistas 40
그는 집 안을 둘러 보다가
내게 물었다.
"나는 어느 방을 쓰면 돼요?"
"이 집에는 방도 하나 밖에 없어요.
여기서 어떻게 나랑 1년을 살겠다는 거에요?"
"그럼 좀 더 큰 집으로 옮길까요?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죠?"
"훈지씨.
여기 와서 앉아 봐요.
이건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다짜고짜 짐 들고 와서
'이제부터 너랑 살겠다'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구요."
"뭐가 문젠데요?
둘이 살기에 좁으면
좀 더 넓은 집으로 옯기면 되잖아요.
관광도시이긴 하지만
여긴 한국 사람도 거의 없고...
왜 그렇게 모든 걸 심각하고,
복잡하게 생각해요?
결혼 생각 없다면서요?
그럼 우리 같이 한번 살아 봐요."
내가 말하는 문제점마다
해결책을 내놓는 게 너무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뭐라고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이 문제는 지금 당장 결론 내리기 어려우니까
우선 나는 파스타부터 만들게요.
훈지 씨는 먼저 씻고 와요."
우선 대화를 여기서 마무리한 뒤,
우리는 식사부터 먼저 하기로 했다.
"와~ 파스타 너무 맛있다.
그 때 내가 끓인 콩나물국 기억나죠?
우리 둘 다 요리를 잘 하니까 걱정 없네요."
나는 내 요리 솜씨도 인정하지 않는데,
자신의 요리까지 당당하게 인정하는 훈지 씨가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왜요? 웃고 있는데 묘하게 기분 나쁜 이건 뭐지?
나 때문에 웃는 거에요?"
"아니에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인마트가 없어서
한국 음식은 거의 못 먹어요.
훈지 씨, 이런 곳에서 1년이나 지낼 수 있겠어요?"
"아...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나는 뭐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괜찮아요."
'단단히 마음먹고 온 거 같은데...
이 사람을 어떻게 막지?'
이래서 자업자득이란 말이 나왔나 보다.
나는 그와의 이별을 나 혼자 감행한 죄로
이 상황에서 더 세게 밀고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훈지 씨...
내가 아직도 줄리앙이랑 만나고 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무작정 온 거에요?"
"아...그거...
그 때 파리로 떠나고 난 후에
그 줄리앙 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전화를 했었어요.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니
이 번호가 누구 전화인지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았어요.
내가 전화를 받았으니까
파리에 가서 헤어졌겠구나 짐작했어요.
설령 헤어지지 않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다시 찾아 올 자신이 있었어요.
그때 당신 마음이
여전히 다 나한테 있다라는 걸 봤으니까요."
'와... 내가 줄리앙을 섣불리 판단했던 것처럼
훈지 씨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었구나...'
나는 그의 섬세함만 알았지
이렇게 치밀한 계획자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는 나의 마음에 대해
나 자신보다 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계획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다 먹고나서 설거지는 내가 할께요."
"아니에요. 내가 할게요.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그냥 쉬어요.
앞으로 하우스메이트가 되면
훈지 씨도 하게 될 텐데요."
내 말을 들은 그가 환하게 웃었다.
"역시 날 잘 알아.
결국 내가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한 거죠?"
"훈지 씨 좀 어떻게 해 봐" <96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