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113. 더럽게 맛없는 커피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웃고 울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 나는 밤새 영화를 보기도 했고,

그녀가 좋아했을 법한 작가의 전시회도 찾아갔다.




'정아 씨가 있었다면

 이 작가의 작품에 얽힌 이야기며

 그림에 담긴 의미까지 하나하나

 알려 줬을 텐데...'




그녀는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정아 씨. 혹시 줄리앙 만났어요?

 나 없는 사이에 줄리앙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그건 진짜 반칙이에요.'





소파에 앉아 그녀가 선물해 준

'데미안'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 눈이 오네...'





"맞아!! 캠핑!!"




나는 그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눈 오는 날의 캠핑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사이트에 접속해 예약을 마치고,

필요한 짐을 대충 챙겨 차에 실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했던 그 캠핑장으로 향했다.






'정아 씨!!

 눈와요!! 거기서도 눈 오는 거 보이죠?

 내가 얼른 가서 모닥불도 피우고

 불명도 할 수 있게 해 줄게요.'





캠핑장에 도착하자마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캠핑 의자 두 개를 펼쳐 놓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사이 눈은 잦아들고 있었다.





'안 되는데...

 계속 눈이 와야 하는데.

 그래야 정아 씨가 소원했던 캠핑이 완성되는데.'





고기를 구우려다 그만두고,

라면만 끓이기로 했다.





'둘이 왔더라면 고기도 굽고

 라면도 끓였겠지?

 귀찮다...

 정아 씨 같으면 과일도 챙겨오고

 짐을 한보따리 싸 왔을 텐데...'





그녀가 두 번째 캠핑 때 챙겨 왔던

커다란 캐리어가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을 끓이는 사이,

다시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라면을 넣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아 씨. 아까 라면 어디다 뒀죠?"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순간 멈칫했다.





이내 아무헣지 않은 척

가방에서 라면을 꺼내 물에 넣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또 참았다.





'이깟 캠핑이 뭐라고...

우리가 만난 시간이 몇 년인데,

눈 오는 겨울에 한 번도 같이 못 왔을까...'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 순간에 터져 버렸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팔로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이 잦아든 뒤,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라면은 이미 다 불어 있었다.




다 불어 버린 라면을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먹었다.





'정아 씨...

 나 바보같죠?

 그래도 당신이 있었더라면

 귀엽다고 해 줬을까?'




 
오늘은 커피를 내려 줄 정아 씨가 없으니

내가 직접 내려야 했다.




커피 두 잔을 내려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봐요...

 당신이 없으니까 이렇게 엉망이잖아.

 커피 맛도 더럽게 없네...

 정아 씨가 하던 대로 똑같이 했는데.'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정아 씨!

 눈 오는 날에 우리 캠핑 왔어요.

 꼭 기억해줘요...'





눈송이가 내 커피 잔 안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그런데...

정아 씨가 사라진 내 삶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정아 씨는... 저한테 타투같아요."    <114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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