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109화. 훈지의 오열

**109화 부터는 훈지 시점입니다.



눈을 떴을 때, 간호사는 이식 수술이 끝난 지

반나절이 지났다고 말했다.




아직은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머물러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고가 난 뒤 며칠 동안 의식이 없었다가,

깨어난 후에도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매일 누워있다 보니

사고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하나뿐이다.

수술 전에 정아 씨가 면회를 와서

내 손을 잡아 주었다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워 있는 내게 여전히 멋있다고 칭찬해 줬던 것 같다.





'보고 싶어...

 손도 잡고, 안고 싶어.'





얼마나 더 지나야 중환자실에서 나가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는 걸까.





수술 후 며칠이 지나자

의사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며칠만 더 지켜보고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은 한 명씩 교대로 면회 시간에 맞춰 찾아와

나를 보고 갔다.




그런데 그 중에 정아 씨는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났다.

상태가 안정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된다는

의사의 허락을 받았다.





일반 병실로 옮긴 뒤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살아났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형에게 물었다.





"형, 정아 씨는 왜 안 와?"





"어... 집에 일이 좀 있는 거 같더라..."





"무슨 일? 무슨 일인데 나도 못 보러 오지?

 부모님께서 편찮으신 건가...?"





"어... 아버님이 편찮으시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네 몸 상태에 집중해. 훈지야..."





"보고 싶은데...

 아... 배가 아직 많이 당기네..."




나는 숨을 고르며 배를 움켜 잡았다.




수술을 받은 뒤 처음으로 검사를 받았다.

수술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하면서 경과를 지켜본 뒤,

차차 퇴원 날짜를 잡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누나. 나한테 간을 기증해 주신 분은 누구셔?"





"... 그런 건 뭐하러 물어봐?"





"뭐 하러 물어보다니...

 내 목숨을 살려 주신 분인데..."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라도 찾아뵙고 꼭 인사드려야지."





"그래... 나중에...

 네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




며칠 후,

간호사가 이제는 조금씩 걸어 보라고 했다.




병실 안에서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직은 배가 심하게 당기고 아프기도 했지만,

꾹 참고 한 걸음씩 내디녔다.





밤에는 주로 형이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잠들기 전,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아 씨가 이렇게까지 안 올 리가 없는데.

심지어 전화 한 통도 없다는 게 이상했다.




"형, 정아 씨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봐?

 나 휴대폰 좀 줘봐.

 그 동안 기다리기만 하고

 왜 내가 먼저 전화 해 볼 생각을 못 했지?"





"휴대폰? 전화해 보게?"





"어... 오지는 못 하더라도

 전화도 한 통 없는 게 이상해.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정신이 없나 보다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다는 게...

 정아 씨답지 않아.

 형도 알잖아? 정아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내가 간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전화도 안 한다고?"






"훈지야... "






"휴대폰 좀 줘보라니까?"






"... 여기..."



나는 형이 건네 준 휴대폰을 받아

정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혹시 아버님이 돌아가신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누님한테 전화해 볼까...?'





"정아 씨 전화는 꺼져 있어.

 정아 씨 언니한테 한번 연락해 볼까?"





형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지금 너무 늦었어.

 내일 해... 내일"





"어?? 그러네...

 내일은 누님한테 한 번 해봐야 겠어.

 뭔가 이상해..."




다음 날 오전 일찍 김 대표님이 병실로 찾아왔다.




"대표님!!"





"많이 좋아진 것 같다. 괜찮아?"





"네...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조금씩 걸을 수도 있고요.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퇴원해도 될 것 같아요."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저 사고 나고 거의 매일 오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해요."




대표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대표님. 그런데... 혹시 정아 씨 소식 아세요?

 중환자실에 있을 때만 해도

 면회 왔던 게 기억나는데,

 수술 후에는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고...

 뭔가 이상해서요...

 형 말로는 정아 씨 아버님이 편찮으시다고 하던데

 그래도 정아 씨가 이렇게

 전화 한 통 안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대표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참는 사람처럼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가 꺼낸 것은 편지 봉투였다.




"이게 뭐에요?"





"정아가 전해 달라고 하더라..."





"대표님한테요? 직접 전해주지 않고... 왜...

 대표님은 언제 만나신 건데요?"





"수술 전에... 너한테 전해 달라고 했어."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훈지야...회복 잘 하고... 건강해..."




그 말을 마친 대표님은 갑자기 나를 안아주었다.





"닭살 돋게 왜 이러세요, 대표님?"





"그만 갈께."





대표님은 짧게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떠났다.





"오늘따라 이상하시네...

 그나저나 정아 씨 러브레터인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고 안에 든 편지를 꺼냈다.

그녀가 정성껏 쓴 글씨들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정아 씨가 나한테... 간 이식을 해 준 건가?

 수술하다가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 편지를 쓴 건가...'





"형..."





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형!! 편지 내용이 이상해...

 이게 뭐야?

 정아 씨가 나한테 간 이식을 해 준거야?

 정아 씨 지금 어디 있어?"





형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형!!!! 대답 좀 해 봐.

 이게 뭐냐고?

 혹시 정아 씨 수술하고 나서 혼수상태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못 오고 있는 거야?"






"훈지야... 그게...

 정아 씨가 너한테 수술해 준 건 맞아..."





"뭐....?  

 정아 씨가 나한테 자기 간을 이식해 줬다고?

 지금 어디 있어?

 정아 씨 지금 어디 있냐고?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어?

 그런거야?"





나는 머릿 속이 하얘졌다.

그녀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형!!!!!!!!

 말 해!!! 뭐야??"






"정아 씨가..."





형은 차마 말을 잇지 못 했다.





"뭐냐고?? 정아 씨가 뭐???"





"정아 씨가... 수술 후에 의식을 되찾지 못했어."





"그래서?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태인데?"





형이 한동안 말하기를 망설였다.





"아!!!! 씨발!!!!

 빨리 말해!!!! 뭐야???"





"혼수상태에서... 뇌출혈이 와서...

 하늘 나라로... 갔어."




내 심장이 땅으로 곧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하늘 나라로 갔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정아 씨가... 죽기라도 했다는 거야?"






"...미안하다..."





나는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형... 지금 농담하는 거지?

 나 놀래키려고 그러는 거지?

 정아 씨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빨리 정아 씨 데려와.

 아니, 내가 갈께. 어디 있어? 어느 병실이야?"





형이 눈물을 흘렸다.





"훈지야... 미안해...

 정아 씨가 유일하게

 너에게 간 이식을 해 줄 수 있었어."





나는 가만히 멈춰서 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 편지는 정아 씨가 수술 전에,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는 걸.





"아아아아악!!!!!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아아아아!!!!!!!!!!!!!!!!!"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내가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댓가가

그녀의 죽음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저를 죽여 주세요...제발..." <110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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