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76화. 절대적인 내 편

sophie97
2026.09.30Vistas 74
그날 저녁.
훈지 씨 누님과 다음 날
점심을 함께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훈지 씨에게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망설였다.
왠지 만나지 말라고 할 것 같았다.
이미 약속은 잡았고,
만나고 난 후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식당으로 갔다.
그녀는 이미 와 있었다.
"제가 한식을 좋아해서 여기로 정했는데
괜찮으세요?"
"네."
"메뉴는 제일 무난해 보이는 코스로
이미 시켰어요."
"네."
나는 긴장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앞에 놓여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며칠 전에 훈지가
아, 그 자동차 극장에서 만난 다음 날이구나."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다음 날 우리 집에 왔었어요.
훈지가 얼마나 노발대발하던지...
걔 화난 거 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꽤 오래 만났는데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는데
걔가 한 번 화가 나면 정말 무섭거든요.
아무도 못 건드려요."
누님은 그날이 떠오르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 만나거나 전화해서
정아 씨 속상하게 하면
자기 못 볼 줄 알라고 협박하더라구요?"
"훈지 씨가요?"
"최근에 또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진서는...
정아 씨가 누군 줄 모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훈지가 정아 씨 힘드니까
수업도 받지 말라고 해서
진서가 울고불고..."
"아휴...그날 난리도 아니었어요."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누님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김 대표님 일로 그동안 모질게 이야기한 거...
사과하고 싶어요.
따지고 보면 엄연히 남인데 내가 예민했어요.
진서 수업은 받고 싶고,
훈지랑은 떼어 놓고 싶고...
많이 이기적이었죠?"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오늘 보자고 하신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많이 걱정했어요.
사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훈지 씨 누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눈 녹듯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누님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카페에서...
그 분은 예전 남자친구 어머니이신 것 같던데...
맞아요?"
"네."
"정아 씨를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혹시... 김 대표님 부모님도 보셨어요?"
"아니요.
그 때는 학생이어서
서로 친구 부모님처럼 뵙고 했는데...
오히려 나이 들면서는
남자 친구 부모님 뵙기가 부담스러워서요."
식사를 마치고,
누님은 차를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일을 핑계로 헤어졌다.
사과를 받으면
미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님과 헤어지고
카페로 들어가면서 훈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훈지 씨."
"왜요 세모네모씨?"
"지금 어디에요?"
"지금? 여기 일산 쪽이요.
왜 그래요?"
"내가 그리로 가면
잠깐 얼굴 볼 수 있어요?"
"무슨 일이에요? 누나가 찾아갔어요?"
"아니요. 아니 만나긴 했는데
사과해주셨어요.
그것 때문이 아니라... 보고 싶어서요."
"진짜 아무 일 없는 거 맞아요?"
"네. 주소 보내줘요."
"알았어요. 운전 조심해서 와요."
나는 주소를 확인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촬영장에 도착하고
쉬는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기다렸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촬영장 쪽에서 그가 내 차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옮겨탔다.
그도 나를 따라 뒷좌석으로 탔다.
"왜? 무슨 일이에요?
촬영장까지 오고 그러지 않잖아요."
나는 말없이 그를 안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도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훈지 씨.
나는 누님이 사과해 주시면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이 사라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내가 정말 많이 상처받았었나 봐요."
말하면서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 내렸다.
"사과를 받고 났는데도
마음이 다 안 풀려요.
너무너무 섭섭했던 게
계속 생각나요."
그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등을 토닥였다.
"누님이 내 자존감을 많이 무너뜨렸어요.
훈지 씨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지 않을 거에요.
그래도 되죠?"
훈지 씨는 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서 떨어져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아 씨가 진짜 힘들었구나...
맨날 이해한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몰라줘서 미안해요."
"누님네 집에 갔었다면서요?"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마음이 다 풀리면
그 때 진서 수업도 해 줄 거에요.
안 내키면 안 할 거에요."
"정아 씨 마음대로 해요~
나는 절대적으로 정아 씨 편이니까!
나한테 제일 소중한 건 정아 씨에요."
그런데 이상했다.
그 전까지 그렇게 슬펐던 마음이
그가 내 편이라고 말해 준 순간
이미 행복해져 있었다.
"나 이제 매일 이리로 올래요." <77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