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onito esmoquin y un vestido elegante.
#_03


물을 다 마시고 계수대에서 컵을 씻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
...

-
...

우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인사도, 별다른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세미나에 참석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는 정장을 입을 것이고

나도 깔끔한 차림으로 갖춰 입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함께 집을 나서겠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나도 알 길은 없었다.

카톡이 왔다.


보검
/무슨 일 있어?/

화장대 위로 휴대폰을 내려놓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14일 전.

그러니까, 이 집에 발을 들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할 걸.

그래도 자식인데 결혼 안 한다고 죽이기야 하겠느냐 마는.

그에 상응한 고통을 받고 지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인정이라고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결혼하지 않겠다고 수천번 말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후회가 됐다.

아빠
우리 집안에 사위가 지민 군이면 앞으로 사업은 걱정할 게 없는데 그게 어떻게 고민할 게 되고 걱정이 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말 한 마디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책망들이 쏟아졌다.

우리 집안이 대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끔찍한 오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좋은 집, 비싼 침대, 값나가는 옷과 액세서리가 일순간 쓸모없는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모두 다 버려도 좋으니

스스로 독립해서 밑바닥부터 가도 좋으니

대기업 경영자의 딸이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면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게

장래희망이 될 줄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상견례를 하던 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박지민이 떠올랐다.

엄마
대표님께서는 참 좋으시겠어요~

엄마
이렇게 멋진 아드님이 있어서~

흐뭇하게 웃던 박대표님과 함께 옆에서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지민
아닙니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나는 차마 이 상황을 직접 헤집지 못하고, 내 앞에 놓인 접시 위의 목살 스테이크를 향해 힘을 주어 칼질을 했다.

썰려나가는 고깃점처럼 이 결혼이, 아니 이 상견례부터가 파토나기를 기도하면서.

박대표
그럼. 식은 두 사람이 원할 때 올리면 되는 거니까 조급하게 생각할 건 없고.

박대표
신고 먼저 하고. 두 사람 살 집을 알아봐야겠네요.

어쩌면 걸림돌 하나 없이 말끔히 진행이 되는지

누가 일부러 이 정략결혼이라는 길목에 매끄러운 기름칠이라도 해놓은 것만 같았다.

흰색 투피스를 입고 이에 어울리는 귀걸이를 고르다가 보검이에게 미처 답장을 하지 못했던 게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애한테

나 결혼했다고 말하면..

-
...

답장할 화면을 켜놓고 거울을 보며 귀걸이와 목걸이를 마저 걸었다.

마스카라를 열어 속눈썹을 쓸면서 뭐라고 답을 할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다.

똑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
10분 뒤에 나가야 돼.

열리지 않은 문 너머로 그 목소리와 발걸음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는 식탁에 기대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내가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휴대폰을 끄고 차키를 집어들었다.


지민
가자.

나는 먼저 앞장 서서 현관문을 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박지민이 운전을 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박보검 카톡창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읽기는 했는데

아직까지 답장을 못했다.

첫 마디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답장하고 싶었다.

아무일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내가 결혼했다는 걸 알았을 때 보검이가 어떤 마음일지.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다고 했다가 모든 걸 말했을 때의 보검이는..

둘 다 내가 나쁜년이 되는 길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박보검이 좋은데

창문 결로 비치는 내 모습은 입을 살짝 벌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지민
무슨 생각 하냐

큰 소리도 아니고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물은 것 뿐인데 내 귀에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
친구.

-
친구라고 말하니 박지민이 내 쪽으로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도로로 시선을 고정했다.


지민
친구.

-
어.

-
친구.

그 뒤로 박지민은 더는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박지민이 타사 대표들과 사업을 이야기할 때 나는 슬쩍 그 무리에서 빠져나와 샐러드 바를 기웃거렸다.

음식을 접시에 담는 순간까지도 입꼬리를 올리고 있느라 내가 풀을 담는 건지 과일을 담는 건지도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승완
어머, 오랜만이다~

내 어깨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놀랄 뻔했지만 곧이어 보이는 해사한 얼굴에 나도 같이 웃음지었다.

-
승완 언니 오랜만이에요~


승완
어우, 나 유학 갔다 온 사이에 너 더 이뻐졌어?

-
예뻐지긴요. 언니도 좋은 물 먹고 더 예뻐졌는데?

고등학교 이후로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훨씬 더 성숙해져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같은 사람이 맞나 헷갈렸을 정도로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승완
나 너한테 소개할 사람 있는데.

-
소개할 사람? 누군데요?

승완 언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사람을 데리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승완
소개할사람 강준 오빠야. 나 다음 달에 결혼하거든.


강준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서강준입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서로 웃어보였다.

승완 언니는 마치 어린아이가 커다랗고 달콤한 사탕을 자랑하는 것 처럼 내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승완
어때? 우리 좀 잘 어울려?

-
선남 선녀끼리 잘 만난 것 같은데요? 물론 강준씨가 좀 고생할 것 같긴 한데..


승완
어우 야. 무슨 소리야~ 내가 강준씨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강준
맞아요. 잘해줘요.

마지못해 서로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니 말 다 했지.


강준
그런데 오늘 소문의 주인공 아니에요?


승완
맞아. 너 이번에 결혼했다며?


승완
주인공 너랑 니 낭군님 아냐?


승완
신랑은 어디있어?

박지민이라면 아직 대화하느라 바쁠 텐데

일부러 불러왔다가 기분만 망칠 것 같아서 나중을 기약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지민이 지금..


지민
아- 안녕하세요.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라서 하마터면 들고 있던 음식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얘가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힐끔 곁눈질 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박지민이 보기드문 미소를 띄면서 내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섰다.


지민
인사가 늦었네요. 박지민입니다.

들고 있는 음식접시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이 된 것마냥 꽉 움켜쥐었다. 내 어깨에 닿는 손의 촉감이 낯설어서 당장이라도 신고 있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싶기 까지 했다.


승완
대박. 요즘 제일 잘나가는 분이신데?


승완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가워요.


승완
저는 '-'랑 오래 알고 지낸 언니에요-


승완
여긴 제 남편 될 사람~

비단같은 대화가 오고가면서 세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만 이곳에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굳어 있는 표정을 매처럼 캐치한 박지민이 화제를 돌렸다.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상태를 살폈다.


지민
피곤하지


지민
얘가 요즘 감기몸살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

아프다는 말에 앞의 두 사람의 표정도 덩달아 걱정스러운 빛을 띠기 시작했다.


승완
몸살? 그런데 여길 왔어? 이럴 땐 쉬어야지..


강준
여기 의무실 있을 거예요. 안내해달라고 할까요?

다들 걱정스러운 와중에 나는 눈을 돌려 박지민을 쳐다봤다.

박지민도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내가 감기몸살이라니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박지민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고 욕먹이는 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나를 욕먹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나는 순순히 그 장단에 맞춰줘야 했다.

-
아. 그러게요. 좀. 추운 거 같기도 하고..

진짜 춥다는 듯이 움츠렸더니 박지민이 내 손에 들려있는 접시를 들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지민
같이 가자.

자신이 입고 있던 수트 자켓을 벗어서 내 어깨에 걸치고는 앞에서 걱정하는 두 사람을 향해서 단정히 고개를 숙였다.


지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승완
어...그래요. 잘 부탁해요.


강준
다음에 봐요.

그 자리를 벗어나서 박지민은 나를 복도까지 에스코트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의무실이라고 적힌 룸이 하나 나왔다.

그곳에 그를 따라 들어가자마자 나는 어깨에 망토처럼 붙여놓은 자켓을 벗어 박지민의 손에 쥐어주었다.

-
갑자기 뭐하는 거야


지민
...

-
물어보잖아


지민
니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박지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자켓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쪽으로 몸울 틀었다.

-
왜 거짓말해?


지민
곤란했잖아.

-
뭐?


지민
니가 곤란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