𝑨𝒅𝒐𝒓𝒂𝒃𝒍𝒆 𝒀𝒐𝒖𝒕𝒉

[합작] 봄의 신부






그 아이는 사랑스러운 봄의 신부가 될 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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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청첩장은 간만이었다. 민윤기는 자택의 우편함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하얗고 고급스러운 봉투를 꺼내며 생각했다. 온통 거멓기만 한 민윤기의 집에서, 한 올의 검은 티 없이 새하얗기만 한 봉투는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민윤기는 곱게 붙여놓은 실링을 뜯는 게 부담스러웠다.



한참을 바라보다 겨우 뜯은 청첩장에는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틀 안에, 감성적인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런 게 그 아이의 취향이었던가. 그 아이라면 청첩장마저도 분홍빛 도는 봉투로 돌릴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나 보다. 민윤기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신부 강다혜」






익숙한 이름이지만 신부라는 단어 뒤 강다혜는 낯설다. 그렇구나. 네가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그렇게 결혼, 결혼 노래를 부르더니.



식 날짜는 그리 멀지 않았다. 민윤기는 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청첩장을 놔두었다. 날짜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민윤기는 장롱 구석에 고이 모셔둔 검은색의 슈트를 꺼내 들어 한참을 바라보더니 청첩장 옆에 위치한 행거에 고이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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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화창해도 아직 추위가 기승이었다. 이 날씨가 어떻게 봄철이라는 건지. 민윤기는 두툼한 코트를 껴입고도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평소라면 롱패딩이나 입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지. 민윤기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민윤기는 열린 문을 지나 헤어숍 안으로 들어왔다. 문소리와 함께 일제히 제게 쏟아지는 인사와 지나친 친절은 언제 받아도 민망하다. 엉거주춤하게 입구에 서 있자 카운터의 여자가 웃으며 민윤기에 물었다.





“손님, 찾으시는 디자이너 분 계신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머리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결혼식에 가는데요, 제가 축가를 부르거든요.”





민윤기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그냥······ 멋있게 해주세요.”





그리 말하면 다 알아서 해준다고 적힌 걸 인터넷에서 봤는데, 제 입으로 뱉기에는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었다. 카운터의 여자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어딘가로 향했고, 곧 앞치마에 각종 미용 도구를 치렁치렁하게 꽂은 미용사가 민윤기를 자리로 안내했다.



특별한 날, 고작 단 하루를 위해 머리를 꾸미려고 헤어숍에 온 건 처음이다. 민윤기는 가운을 입고 멍하니 눈앞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되뇌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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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호텔의 로비에는 벌써부터 하객들로 북적였다. 민윤기는 많은 인파에 머뭇거리며 걸음을 뗐다. 강다혜의 인맥이야 대학 시절부터 알아줬으니 이럴 만도 했다. 만약 내가 결혼했다면··· 가족과 친척 몇몇을 제외하곤 따로 부를 사람은 몇 없을 것 같은데.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다 민윤기는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에 잠시 발을 멈추었다. 결혼. 결혼이라니. ‘결혼한다면’이라는 가정이 지나치게 현실감 없다. 그리고 그 현실감 없는걸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강다혜가 한다.



민윤기는 입술을 여리게 깨물었다.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참석한 기분이다.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발을 잘못 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걸어 도착한 곳은, 강다혜가 있는 신부 대기실이었다. 민윤기가 망설이며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민윤기?”





그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민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민윤기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귀에 박힌 듯 선명한 그 목소리.





“······강다혜.”





강다혜다. 강다혜가 바로 앞에 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서, 누구보다 예쁜 얼굴로. 민윤기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예쁜 얼굴.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과 다를 게 없어서 오히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





“오랜만이야.”

“민윤기 너···”





강다혜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민윤기의 웃는 낯이라든가, 식상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와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지, 네 결혼식인데.”

“허, 그렇게 의리를 챙기는 놈이 5년이라는 시간을 잠수를 타?”

“기껏 와준 사람한테 너무하네.”





내가 여기 온 이유.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헤어숍에 들러 치장하고 주구장창 노래를 들으며 연습하고, 이 자리를 계속 지킨 이유. 민윤기는 강다혜와 재회하는 이 순간을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들왔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괜찮다곤 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막상 마주한 강다혜는 너무나 기억 속의 그녀와 똑같아서, 걱정과 고민이 다 부질없음을 통감했다.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다. 민윤기는 이제, 그녀를 대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약속했잖아.”

“······”

“축가 불러주겠다고.”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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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던 웨딩홀은 암전이 되자마자 조용해졌다. 그와 동시에 웅장하고도 익숙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신부, 입장합니다. 장엄한 목소리가 들린다. 민윤기는 신부 측 하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강다혜에게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강다혜는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강다혜는 정말이지, 행복하고 벅차 보였다. 민윤기는 그런 강다혜를 눈에 빼곡히 담았다.



나란히 서고, 지루한 주례를 듣고, 반지를 끼워주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 속에서 민윤기도 그들을 힘껏 축하했다. 행복해 마지않는 연인은 눈이 시릴 만큼 하얗고… 아름다웠다. 식이 끝나갈 무렵, 강다혜가 마이크를 잡고서 운을 띄웠다. 민윤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결혼식에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있죠. 축가인데요. 아, 제가 부르는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노래는 영 아니라 큰일 나요.”





하객석에서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긴장이 풀린 강다혜의 입담이 날아다닌다.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인데 글쎄 졸업하고 잠수를 타더니 몇 년 만에 축가를 불러주러 왔지 뭐예요? 참 이상한 녀석이죠? 그래도 한 번 들어는 봐야겠죠? 네, 소개합니다. 민윤기-”





강다혜가 민윤기에게 손짓했고, 민윤기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다혜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은 민윤기가 어색하게 피아노 앞에 엉거주춤 섰다. 강다혜와 그녀의 신랑이 민윤기가 가장 잘 모이는 곳에 섰다.


민윤기는 숨을 들이켜고, 뱉어내듯 노래를 시작한다. 중독성 있는 목소리가 장내에 깔렸다. 민윤기가 속으로 강다혜의 이름을 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불렀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는데,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 그랬다.





강다혜. 다혜야.

나는 정말······

너를,

많이······






민윤기가 강다혜를 바라보고, 강다혜도 민윤기를 바라본다. 민윤기를 본 강다혜가 이내 새하얗게 웃는다. 그리고 그건 정말 순백의 드레스보다 새하얀 웃음이라서… 민윤기는 웃어주기가 버거웠다.



이내 여운을 진하게 남긴 노래가 끝난다. 객석은 뜻밖의 수준 높은 공연에 박수갈채를 쏟아내었고, 그중에는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감수성 풍부한 하객들도 있었다.





“다혜야.”





민윤기가 강다혜를 불렀다. 마이크를 탄 음량이 홀 가득 울린다. 강다혜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민윤기를 본다. 그리고 그런 강다혜에게, 민윤기가 꽃 한 송이를 건넨다. 하얀 은방울꽃 한 송이를.





“결혼 축하해.”






있잖아, 다혜야.

나는 아직도 만연한 청춘 한가운데, 그 봄에 있어.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들어줄래?





“다혜야.”






민윤기는 한 번 더 강다혜를 불렀다.





전하지 못했던,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언제나 사랑해. 넌 내 삶의 전부야.





이 말을 하러, 나는 여기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