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방금 김태형 뭐라고 한거냐…”
무언가에 홀린 듯 몇 년간의 짝사랑 끝에 고백한 후에 밀려오는 현타는 표현할 수 없을만큼 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취하다 못해 깊은 잠에 빠져버린 여주였다. 잠시 전정국을 부를까 고민했지만, 오늘만큼은 전정국을 보기 싫어했던 여주가 생각났다.

“…여주야, 일어나. 집 데려다줄게.”
“…웅…”
뭐라 웅얼웅얼 말하는 듯 들렸지만, 이내 곧바로 다시 잠에 든 여주였다. 이걸 어떡하지, 택시에 태워 보내기에는 너무 늦었는데.
“여주야, 업혀.”
“…우응…”
“빨리.”
여주가 비몽사몽한 채로 내 등에 업혔다. 그렇게 나는 여주의 집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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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여주의 집 앞에 도착하니 보이는 건 전정국이었다. 전정국은 문 앞에 기대어 폰을 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으로 뛰어왔다. 전정국의 표정에서는 의문으로 가득했다.
“뭐야…? 이 상황?”
“김여주랑 우연히 가게에서 만났어. 같이 한 잔 한거야.
그러다 김여주는 완전 뻗어버렸고.”
“…나 부르지. 여주 핸드폰은? 연락도 안 받던데.”

“핸드폰 전원 꺼졌나봐.”
“…….”
“오늘 여주가 너 보기 진짜 싫어했는데.”
“…나를? 왜.”
“너 밉대.”
“……”
“그래서 연락 안 한거니까 오해는 하지 마라.”

“오해는 무슨… 네가 그냥 친구도 아니고.
그냥 놀랐을 뿐이야. 내 여자친구 챙겨줘서 고맙다.”
“…응.”
“너도 취했냐?”
“조금? 걸어오면서 깨긴 했는데.”

“술도 잘 마시는 새끼가 얼마나 마신거야…
가자, 태워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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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절대 술을 적게 먹은 건 아니었기에, 따뜻해진 차에 타자 나른해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우리 둘 사이에 오가는 침묵이 나를 더 졸리게 만들었다.
“엄청 졸려보인다 너.”

“어, 졸리네. 좀 마셨거든.”
“…태형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정국이 내 이름을 불렀다. 김태형이라고는 불러도, 야라고는 불러도, 내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무슨 중요한 말을 할까 긴장되는 순간에, 나의 눈은 감겼다.
“…너.”
“…응…”
전정국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아했지?”
나는 정국이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하고 잠에 빠져 버렸다.
그때 정국이가 했던 말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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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얼마나 마신거야…”
“김태형한테 헛소리 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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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혼자 나왔네?”
“응. 간단하게 너 인트로만 딸 거라.”
“너 지금 여기서 일하는 거 행복해?”
“…갑자기?”

“그냥… 서울 중상위권 대학 나왔는데 고작 이런 회사에 있는게 안타까워서.”
“행복한 건 아니어도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은 갖고 살아.
이렇게 회사에서 영상 쪽 일 다루는 것도 재밌고.”
“…….뭐, 그래.”

“오늘 촬영 길지는 않을거야. 5시 안에 끝내자.
일단 이걸로 갈아입고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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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기억 못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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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갑자기 날이 엄청 추워졌죠?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감기에 걸리더라구요…
다들 감기 조심! 따숩게 입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