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시작

반대로 다가오는 사람

스터디가 끝나갈 무렵,

조원들 몇 명이 먼저 나갔다.

 

누가 먼저 정리하고,

누가 더 늦게 나갈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나는 가방을 천천히 챙겼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남은 사람은 나와 송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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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석은 노트북 화면을 닫고

조용히 말했다.

 

“이따가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아… 네.”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왜 대답했을까.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

왜 두근거리는 걸 숨기려고 애쓰는 걸까.

 

우리는 카페에 앉았다.

스터디룸 근처,

사람 별로 없는 조용한 자리.

 

그는 먼저 커피를 주문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그때 이야기요.”

 

나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없었다.

 

“…어떤 거요?”

 

“지난번에.

제가 거리 두냐고 물었잖아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돌리며 말했다.

 

“사실은,

제가 좀 늦게 눈치 챈 것 같아서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뭘 눈치 챘다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이지?

 

“제가 불편하게 한 게 아니라면,

그냥… 예전처럼 대해줘도 괜찮아요.”

 

예전.

예전이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냈지만

나한테는 너무 가볍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예전이 언제였는데요.”

 

그가 멈칫하더니

살짝 웃었다.

 

“소개팅 이후요.”

 

심장 소리 때문에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릴까 봐

나는 잠깐 눈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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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거리를 두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가까웠다.

 

단정하게 말하고,

편하게 웃고,

가끔씩 시선을 맞췄다가

천천히 피했다.

 

나는 자꾸만 생각했다.

 

왜?

지금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뭘 착각하고 있는 건가?

 

그때도 그냥 말 수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 말수가 이렇게 능동적일 수가 있나 싶었다.

 

나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그는 다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터디 끝나고 시간 남으면,

가끔 얘기해도 돼요?”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 사람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그 말은

그날 소개팅 끝날 때랑

똑같은 말이었는데,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나는 그 자리에 혼자 남았다.

 

잔에 얼음이 천천히 녹는 소리를 들으면서

방금 일이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그가 달라졌던 건지,

내가 그때 몰랐던 건지.

 

아니면,

그때도 지금도

나만 이렇게 심각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