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시작

고백 다음 날

스터디룸 문을 열었을 때,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은석이 있었다.

 

평소처럼 앉아 있었고,

익숙한 표정이었고,

익숙한 자세였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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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가 쳐다보는 걸 알아도

고개를 안 들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반응은 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작았고

웃음은 더 없었다.

 

스터디는 이상하리만큼

빨리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빠른 게 아니라,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이 하나둘 정리할 때,

나는 노트를 덮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그냥 바로 집에 가야지.

 

근데,

생각보다 먼저

그가 다가왔다.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은석이 서 있었다.

 

표정은 진지했고,

어제보다 더 조심스러워 보였다.

 

“조금만요.

진짜 금방 끝낼게요.”

 

나는

도망칠 이유도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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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룸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뒤편 벤치에 앉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주변은 조용했다.

 

그는

잠깐 내 얼굴을 보다 말했다.

 

“어제 말한 거…

부담 줬다면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담 아니었어요.”

 

“근데 아무 말 없어서,

혹시 또 내가 선 넘은 건가 싶어서.”

 

그 말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울컥했다.

 

“아니에요.

그냥 좀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 끝났어요?”

 

그의 질문은

천천히 던져졌지만,

내 마음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돼 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응. 저도 좋아해요.”

 

그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다행이다.”

 

그리고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어두워졌고,

누군가가 웃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지만,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둘만은

그 순간,

정확히 같은 마음이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은석에게 먼저 메세지를 보냈다.

 

집 잘 갔어요?

 

답이 바로 왔다.

 

응. 지금 도착했어.

그리고, 고마워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폰을 뒤집어 놓았다.

 

웃음이

자꾸 나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