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시작

대답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그 이후로

은석은 조금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숨기던 걸 굳이 숨기지 않게 된 느낌.

 

스터디할 때면

자리도 늘 내 옆,

쉬는 시간엔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점심 뭐 먹을 거예요?”

“이건 답 쓰는 방식 바뀌었대요.”

“이거 좀 어려웠죠? 나도 틀렸어요.”

 

하나하나 다

작은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이 다 나한테만 왔다.

 

스터디원들도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은석 선배, 원래 이렇게 말 많이 했어요?”

“둘이 친했나?”

“그냥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 슬쩍 물었을 때,

나는 “아니야,

그냥 스터디에서 자주 봐서 그런가 봐”라고 웃었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 질문이 쌓이고 있었다.

 

이 사람, 진짜 왜 이러는 걸까?

그냥 호의야?

아니면 그날 말한 게 전부는 아니었던 걸까?

 

스터디 끝나고

은석이 나를 기다리는 게

이젠 이상하지 않았다.

 

“지하철 역까지 같이 갈래요?”

 

“편의점 들렀다 가도 돼요?”

 

그의 말들은

다 일상 같았지만,

그 안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는

나만 알 것 같았다.

 

어느 날,

스터디 끝나고 나가려는데

다른 조원 하나가 내 어깨를 톡 건드렸다.

 

“너네… 혹시 진짜 사귀어?”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아니, 진짜 아니야.”

 

“근데 분위기 이상하잖아.

은석 선배, 너한테만 말 걸고, 너한테만 웃고,

그거 다 보여. 우리 다 눈 달렸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는 척을 했다.

 

그 척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미지

 

집에 오는 길,

은석이 보냈던 메세지를 다시 봤다.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 발표 잘 들었어요.

내일도 도서관 가요? 있으면 잠깐 보일지도.

 

딱딱 끊긴 문장들인데,

그 사이에 감정이 너무 많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이제

거리를 두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그 거리 안에

내가 어느 정도 들어와 있는지

그걸 아직 모르겠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