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
그가 나를 부른 건
몇 주 뒤 급식실 앞에서였다.
그의 부름과 동시에 놀란 나는 우르르 쏟아진 유인물들에 미간을 확 좁혔다. 솜뭉치 하나 죽여놓고선 무슨 낯짝으로 얼굴 들고 그간 하던 짓 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건지 소문 안 낸 걸로 감사하다 넙죽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바쁜 사람 붙잡고 야? 그날 밤 미쳐 입 밖에 내놓지 못한 물음이 속에서 들끓고 올라오듯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침착히 유인물들을 주우며 그의 부름에 답했다.
"부르잖아."
"뭐."
"··· 고양이 보러 갈래?"
"뭐?"
이건, 무슨···.
"지난 번 일은 내가 좀, "
"·········."
"미안해서."
그녀는 그가 지난 밤의 일은 비밀로 해달라는 식의 부탁 비슷한 말을 전하려 저를 불러세운 것이라 추측하였건만,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의외의 대답을 내놓은 그다. 저번 일은 우연찮게 일어난 사고였으니 오해도 풀 겸 고양이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저 인간과 풀 오해가 있나 싶었지만 고양이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하고야 말았다.
"이번 주 금요일 학교 정문 앞."
"··········."
"데리러 갈게."
"어·········."
급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당황한 여주가 말끝을 흐리자 한쪽 입꼬리를 올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는 그다. 이번 주 금요일, 학교 정문 앞······.

여주는 그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돌고 돌아 약속 당일인 금요일. 시간은 열한 시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데 퍼런 모자는 감감무소식이다. 고양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쩌다, 정말 어쩌다 전정국 그의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되짚어 생각해보니 그는 약속 일자만 알려 주었지 약속 시간의 '시' 자도 꺼낸 적이 없었다. 이러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될 때까지 가보자란 마인드로 텅 빈 교실 안에서 흰 종이에 검은 잉크 자국을 휘갈긴다.
제 어깨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질 때 즈음에
고개를 돌려 그 쪽을 응시하면,
"와. 공부하는 거냐?"
"아, 깜짝이야······."
퍼런 모자 그가 제 뒤에
쪼그려 앉아있다.
"역시 전교 일 등은 다르네."
"······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괜한 공기가 어색해진 그녀는
말을 돌려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너 김여주잖아."
"·········."
"이학년 사 반, 김여주."
"···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너를 어떻게 모르냐."
"········· 뭐?"
"가자."
그가 굽은 상체를 핌과 동시에
무릎자락을 탈탈 털어낸다.
"가긴 어딜 가?"
"고양이 보러."
"아직 수업 시간인데?"
"점심 시간이잖아."
"······ 학교를 째자는 소리야?"
학교생활 십일 년 간
학업 위주의 일탈은 해본 적이 없던 여주가
당황한 듯 동공을 키우며 말했다.
"어."
"·········."
"뭐, 싫음 어쩔 수 없는 거고."
생기부에 줄 그일 일 있나.
평소 같았다면 망설이지 않고
단칼에 거절을 했을 그녀였건만.
"가자."
이유 모를 반항심이
그녀의 속 깊은 곳에서 피워올라
펑 하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갈 거야?"
"가자고, 맘 바뀌기 전에."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서는 그를 따라
여주도 얌전히 그의 발걸음을 쫓았다.
정돈 안 된 검은 철자들이
여주 책상 위를 나뒹굴 뿐이었다.

눈 밝은 선도부들을 피해 도착한 곳은 학교 정문 앞 ㅡ그가 저번 급식실 앞에서 만나자 했던 곳ㅡ 이었다. 굳게 닫친 철조망 안 제 몸 간신히 꾸깃여 놓은 퍼런 오토바이 한 대가 그녀의 시선 안에 들어온다. 눈을 조금 더 크게 뜨니 오토바이 앞좌석에 검붉은 피가 묻어있는 것이 보였는데, 이를 통해 이 오토바이가 그 날의 밤 그와 그녀가 탔던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주변 밝기가 어두웠던 탓에 당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는데, 오토바이 몸체 쪽에 적혀 있는 이니셜 P 가 그의 모자에 씌여져 있었던 디자인과 같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타."
오토바이 핸들 부분에 걸쳐 있던
붉은 헬멧을 제 머리 위에 씌여준다.
"미쳤어? 대낮에 오토바이를 탄다고?"
"뭐, 어때."
사람들의 평판으로 이미지의 값어치를 매겼던 그녀에게 학교를 째는 행위는 제 이미지를 스스로 낮추는 것에 불가했다. 학교를 째는 것은 괜한 오기가 생겨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인 반면, 사람들 눈 번뜩 뜬 대낮에 이 퍼런 모자 양아치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누비는 것은 제 이미지를 더더욱 악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내 경시대회 최다 수상자' 타이틀을 쥐고 있는 여주라면 더더욱.
"나는 못 해."
"뭐?"
헬멧을 벗어 내려놓은 여주가
오토바이와 그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진다.
"학교 째는 것도 모자라 오토바이 타고 다닌 걸 사람들이 알기라도 하면?"
"·········."
"그 땐 정말··· 감당 못 해, 나는."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걸."
"······ 뭐?"
"이미 한 번 나온 거, 벌점 받고 귀 따가운 소리 들을 바엔."
"······."
"한 번 쯤 일탈해 보는 것도 나는···."
"·········."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넌 여태 남들이 가라는 길만 꿋꿋이 걸어왔잖아. 그래서 얻게 된 천재라는 타이틀이고. ㅡ그가 나에 대해서 어찌 이리 잘 아는지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지만ㅡ 그의 말이 맞았다. 성공한 두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제 수준에 안 맞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명분을 지키는 일이었고, 시도때도 없이 붙드는 연필과 종이 몇백 장이 지금의 나, 타고난 천재 김여주를 만들어낸 것이었으니까. 우습게도 그의 말에는 틀린 구석 하나가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씨발···.
"선택해."
"·········."
"갈 거야, 말 거야."
구속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냐,
제 명분을 꿋꿋이 지켜낼 것이냐.
"야, 니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제 뒤통수 너머로 한 남학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여주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아··· X발."
조급함을 느낀 그가
저를 오토바이 위로 앉힌 뒤로
"꽉 잡아라."
"지금 뭐 하는···!"
생각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면 주워줄 생각 없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완전한 청춘 中
~ 위에
* 下 편에서 이어집니다.
Ps. 원래는 짧게 쓰고 말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단편이 상(上) 편이 되고 중(中) 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ㅜ 결말을 기대하셨을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드리고 싶고요! 마지막에 첨부한 사진은 유튜브에서 청춘 관련 노래를 듣다가 문구가 너무 좋아서 들고 온 댓글이랍니다! 원래는 저 댓글을 첨부할 생각이 없었는데 내용이 너무 정국이와 여주의 상황을 우려낸 것 같아서 그만... 😂😂
아무쪼록 오늘도 무탈없이 좋은 하루 보내셨음 하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