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서히
여명의 빛이 아침이 밝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쏟아져 내리는 여명의 빛으로 흠뻑 젖은 여주. 오늘도 평소와 같이 침대에서 몸을 힘겹게 떼어낸 후, 주방으로 어슬렁 어슬렁 잠이 덜 껜 호랑이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에는 어젯밤에 미리 꺼내놓았던 샌드위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오늘 하루는 매우 바쁠 예정이라 하루를 책임져 줄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심한 거부감이 들어 샌드위치를 옆으로 치워두고 바닥에 나뒹굴어져 있는 가방을 무심히 매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 … 오늘도 야근감이다. “
찰박찰박, 여주가 괜히 심술궂은 마음으로 물웅덩이를 밟자, 청명한 소리가 아닌 흐리멍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라이 기분 안 좋게. 젖은 구두를 멀뚱멀뚱 내려다 보다 손목시계를 황급히 확인하고선 물이 스며든 구두를 뒤로하고 회사로 뛰어간다. 회사로 향하다 중간에 딴짓을 하는 게 여주의 하루 루틴 중 하나랄까.
‘ 또각 또각, ‘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평소와 같이 표정 관리를 철저히 하고 건물 안으로 입성했다. 우르릉 쾅쾅, 머릿속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것 같이 기분이 뭣 같았지만, 그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띠고 활기차게 인사했다. 온화하고 기품 있는 인사로 회사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대로 자신의 자리에 털썩, 기운 없이 앉는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좌절해버리고 싶었지만, 이미지가 있지, 콧볼 아래까지 내려와 있던 안경을 올리고 업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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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점심 먹으러 갑시다 “
웬일로 부장님께서 먼저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내셨다. 여주는 아침을 굶었던 터라 많이 배가 고픈 상태. 부장님이 ‘ 점심 ‘ 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이 반응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린다. 허허.. 여주 사원님이 많이 배고프셨나 보군..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사원들을 급식실로 이끄는 부장님. 여주는 수치심으로 볼이 불그스레 물들어져 얼굴을 가리고 급식실로 후다닥 향하려 하는데,
“ 아악..! “
빗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나 보다, 구두에 아직까지 고여 있는 미끄러운 물 때문에 휘청휘청 거리다 결국 뒤로 넘어지려 하지만

“ 조심. “
순간, 뒤로 젖혀진 여주의 허리를 팔로 휘감고 여주를 지탱해 주는 누군가. 잘록한 여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정국이었다. 새빨개져 터질 것 같은 여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정국.
“ 괜찮아요? 바닥이 많이 미끄러웠나 보네. “
“ ㅇ.. 어..! 괜찮아… “
“ 아, 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여주의 허리에 자신의 팔이 여전히 둘러 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황급히 팔을 뺀다. 여주는 고맙다고 덕분에 안 넘어졌다고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정국이는 어느새 볼이 방금 막 개화한 장미꽃의 빛깔로 채색되었고 어색한 말투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여주를 급식실로 인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