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여유롭게

1. 첫만남

제1화

첫 만남.

(여주 시점)

"저기요!! 잠시만요~!!"

아침부터 달리고 또 달렸다. 첫 출근인데... 지각이다.

그래도 집부터 죽어라 달린 덕에 좀 더 빨리 도착했다.

나는 1층에서 잠시 숨을 돌리려고 멈춰 섰다. 

'후... 하.. 후... 하... 뭐야! 1분 남았잖아!!'

하지만 1분 남은 시간을 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이 건물 11층.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마침 내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그 엘리베이터에는 한 남자가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를 향해 기다려 달라고 소리쳤다.

"저기요~! 잠시만요~!!"

하지만 그 남자는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아아, 저기요! 같이 가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고, 나는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남자가 내 목소리를 못 들었나 하고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에도 그는 반응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려던 찰나,

내가 닫히고 있는 문을 손으로 턱, 하고 잡았다.

"하.. 하... 하.. 하.."

엘리베이터에 서둘러 올라타 다시 숨을 돌렸다.

정말 출근하다가 숨차서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좀 쉬고, 그 후에야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앞만 응시한 채 내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반응도 없었다.

'분명히 들었어.. 내가 부르는 거 들었는데도 닫았어..'

출근 첫 날인 데다 아침인데.. 벌써부터 재수가 없다.

'딱 보니까 나이도 어린 게.. 나랑 비슷할 것 같구먼,

어린놈의 자식이 싸가지가 없어가지고.. 쯧쯧..'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9층에 내렸다.

'오늘 모이는 장소는 11층인데?'

말해주려다가 말 섞기 싫어서 그냥 놔뒀다.

바로 11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인생은 경주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문 앞에 도착하여 숨을 다시 가다듬었다. 지금 이 상태로 들어가면 조금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후.. 하.. 후.. 하'

몇 번 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내 자리만 비워져 있었다. 

"이제 다 모였네요. 그럼 시작할게요"

"네"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흔히 첫날 하는 것처럼 소개를 했다. 먼저 병원 소개를 줄줄 해주시고,

다음은 자기소개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 출신 정보람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소개를 끝으로 나의 레지던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이름은 정보람. 특별한 것 하나 가진 게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집이 부자라던가, 그냥 태어나 보니 재벌 2세라던가 그런 금수저도 아니었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다거나 찢어지게 가난하다거나 왕따를 당했다거나 그런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었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회사원과 주부이신 평범한 부모님과 함께 살며, 평범한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게다가 학교생활에서 마저도 아주 평범한 한 반의 일원이었고, 첫사랑과의 눈물겨운 이별이나, 재회를 한 적도 없는.. 조금 지나치게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여기서 누군가 내게 남들과 같은 환경에서 살면서 어떻게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냐고 물으면 답은 하나다.

'피나는 노력'

나는 누구든 의사가 되고 싶으면 그냥 미친 듯이 공부만 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내가 살아있다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부만 했고, 그 결과 난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평범하다.

천재? 나도 그런 사람 참 부럽다. 

운명을 타고나? 개뿔. 세상에 그러게 있으면 왜 노력이란 걸 해?

운발? 허.. 참, 참고로 난 가위바위보 제비뽑기, 사다리 타기 같은 랜덤, 운발 게임을 하고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다 내 피 터지는 노력 더 분이었다.

남들 잘 때, 남들 먹을 때, 남들 시험 끝났다고 놀 때,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쪼개서 나는 공부를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공부에 미쳤다고 했고,

내게 그 말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럴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게 내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해서 난 Sky 대라 불리는 연세대에 들어갔고, 그곳에는 진짜 천재인 애들, 백 있는 애들, 재벌집 애들, 나보다 더 미친 애들로 수두룩했다.

그런 애들과 섞여 의사가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잘하고 싶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남들에게 대단한 의사선생님이란 말이 너무 듣고 싶어서 나는 또 남들보다 바쁘게 살았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방법이었으니까.

그런 삶을 살다 보니 주위에서 안 힘드냐고 물었지만, 난 그 노력의 끝에 얻는 것들이 너무 달콤해서, 그 달콤함을 맛보기 위한 힘겨운 과정조차도 좋았다.

내 삶은 항상 그랬다. 그냥 그렇게 혼자 살아갔다. 이 세상을.

첫날이라 일단 병원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이쪽이 수술실이고요, 저쪽으로 가면 중환자실, 저기는 응급실이에요."

다리가 아팠다. 그냥 지도나 하나 주지.. 참 친절해서 탈이었다.

"이 분은 치과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이분은 산부인과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잘해봐요"

"이분은 정형외과 선생님이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열심히 해요"

인사를 몇 번이나 한 건지 허리가 뻐근했다.

역시, 서울의 큰 병원.. 병원이 큰 만큼 의사도 많았다.

"그리고,"

또 남았어...?

"이분은 신경외과 선생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강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 ㅇ...."

어?!  엘리베이터 싸가지 남!?!?

뭐야, 전문의였어???  저렇게 어린데.. 레지던트가 아니고???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속으로 욕을 퍼부은 남자는 

나와 같은 신경외과의 의사였다... 나는 전공의, 그 남자는 전문의..

"헐... .대박..."

옆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반응했다.

엥? 뭐가? 왜?

"진짜 강다니엘 선생님?"

"네"

"대박.. 사건. .."

왜왜왜??

"크음... 다들 좀 아는 것 같은데 그럼 소개를 해볼까요?"

아까부터 계속 소개를 시켜주던 선배님이 말을 꺼냈다.

"이 분으로 말하자면,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는 신경외과 전문의! 수술 성공률 99퍼센트를 자랑하는 최고의 의사선생님이십니다!"

"에이 ... 무슨 소개를 그렇게 해요.."

"왜요? 맞잖아요.ㅎ"

"와~~!!!!"

그 엘리베이터 싸가... ㅈ..  아니, 강 다니엘 의사 선생님께서는 당황스러워하셨고, 나머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사람이??......

하.... 이번 병원 생활....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