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직장 상사.
"네. 알고 싶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그럼 잘 들어요.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네."
"정 선생이 그 아이에게 원했던 게 뭐였죠?"
"대화... 요?"
"아니, 그전에요"
"마음을 열어주는 거요."
"그래요. 그걸 원했잖아요. 그걸 정 선생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정 선생이 그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한 행동들 중에 하나가 빠졌어요. 제일 중요한."
"그게... 뭐죠..?"
"잘 생각해 봐요. 그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정 선생이 먼저 해야 할 것이 뭔지."
"
"모르겠어요?"
"..... 네에......"
"ㅋ그럼 질문 하나 합시다. 정 선생은, 그 아이 보고는 마음을 열어달라면서 정 선생은 정 선생의 마음을 열었나요?"
"네...? 제... 마음... 이요?"
"그래요. 정 선생의 마음. 정 선생은 자기의 마음조차 열지 않은 채, 그 아이에게 마음을 열어달라고만 했어요. 이제 감이 오나요?"
"네!"
그런 것이었다. 내가 내 마음도 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혜인이의 마음만을 요구했다. 그것이 그 아이가 나에게 거리를 둔 이유였던 것이다.
"풋 흐,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정 선생"
"네??"
"사람이란 동물은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물론, 정 선생이 했던 방법대로 계속했어도 그 아인 정 선생에게 마음을 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죠? 그래서 더 섬세하게 다루라는 겁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이제 나가 주시죠."
".. 네...."
방문을 잘 닫고 밖으로 나왔다. 가르쳐준 건 고마운데... 왜 잘 가다가 끝에 또 그 싸과쥐... .아니... 아무튼!! 그거! 나오냐고...
그래도 그 싸과.. 아니... 그거 받아줄 만큼 좋은 걸 배웠다. 그래서 썩 욕을 하고 싶을 만큼 싫진 않았다.
"헤이~ 보뢈 보뢈 보뢈...."
성우 선배다.
"왜요?"
"어떻게 된 거야? 진짜 궁금해 죽는 줄 알았어... ㅜㅜ"
"앜ㅋㅋㅋㅋ 그게요 오늘 아침에 혜인이 병실에 갔는데 강선생님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애가 말을 하더라고요ᄒ 깜짝 놀라서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보러 갔다 왔죠!"
"헐... 그렇게 쉽게 끝낸 거야...? 역시 대단하다..
그래서, 들여보내 줬어?"
"네! 웃으면서 잘 말해주시던데요?"
".........."
성우 선배의 모든 행동, 표정들이 일시 정지되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돼..."
"진짠데ㅎㅎ"
나는 넋이 나가서 돌아오려는 기색이 안 보이는 성우 선배를 버려두고 내 일을 하러 갔다.
웃으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려면, 나의 마음부터 열어라.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때의 강선생님 목소리와 말투, 표정까지 함께.
'나의 마음을 열고, 열렸다는 걸 상대방한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문제였다. 방법을 알아냈는데, 답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답답했다.
문뜩, 강선생님은 어떻게 답을 찾았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강선생님의 연구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연구실은 비어 있었다.
그 뒤로 약 3일간 계속 강선생님의 연구실을 들락날락했지만, 만날 수 없었고, 혜인이는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어제 혜인이가 내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제가 발레 전공을 준비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는 제가 발레에 소질이 있는 걸 보고 어릴 때부터 하루 24시간 중에 15시간은 발레를 시키셨어요. 그리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화를 내셨고요. 그래서.. 발레가 너무 싫어서, 발레를 시키는 엄마 아빠가 너무 싫어서 그랬어요.. 이젠 허리를 다쳐서 발레를 하려고 해도 못하겠네요.."
"좋아?"
"아주 좋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게 막 좋진 않아요."
" 음..."
"그냥 다시 열심히 해보려고요."
"좋은 생각이야, 힘내 혜인아! 힘들면 선생님 찾아오고.. 아이스크림 사줄 테니까.! ㅎ"
"ㅎㅎ좋아요"
그렇게 혜인이는 원래의 명랑함을 찾았다. 그 작은 아이에게 그런 생각과 힘듦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들을 어린 나이에도 잘 견뎌내는 혜인이를 보니, 그 아이는 커서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보인다?"
"음... ㅎ 그저 그런데요?ㅎ"
"근데 왜 웃어?!"
"그냥요ㅎ 좋으니까.. ㅎ"
"그래, 기분 좋잖아~"
"그저 그렇다고요~!"
"...... 아.... 네네..."
성우 선배랑 하는 모든 대화가 즐거웠다. 마치 어린애가 된 것처럼 장난도 치고 싶었다.
"근데 선배랑은 왜 이렇게 자주 마주칠까요?"
"왜... 싫어??"
"음... .... 쪼금??"
"...."
"에이, 농담이요 농담~~ ㅋㅋㅋㅋ"
성우 선배를 놀리는 것도 재밌었다.
그 아이 덕분에 내가 지겠다고 한 책임을 다한 것 같아서, 나의 환자가 밝은 미소를 띠며 건강하게 퇴원을 해서, 난 그 아이가 퇴원한 일주일 내도록 의사 생활이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답은 찾지 못했다.
'나의 마음이 열렸다는 걸 상대방한테 전하는 법'
강선생님은 도저히 만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너무 바쁘시고, 너무 잘 피해 다니시는...
이젠 마치 나를 피해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선배,"
혹시 성우 선배는 알까?
"응?"
"내가,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열었는데, 그걸 상대방이 알 수 있게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뭔 소리야.... 너 그런 생각 하고 살지 마, 머리 아파... 아 맞다, 너 수술 있때 매.."
"아, 맞다! 나중에 봐요!"
성우 선배도 모른다. 내 수술시간만 안다. 쓸데없진 않네....... ㅎ
아무래도 내 물음의 답은 강선생님 만이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성우 선배가 알려준 덕에 바보처럼 수술에 늦진 않았다.
수술복으로 후딱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오늘 담당 의사선생님은?.. 강선생님이길 바랐다.
내 느낌대로 만약 내가 귀찮아서 나를 피하고 있는 거라면, 수술실에서 수술 중엔 피하지 못하니까.
"수술.. 시작합시다"
진짜..로... 강선생님이 왔다. 이거... 실하지??
일주일 내도록 그림자도 안 보이던 그가 드디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선생님... 수술실 아니면 볼 수가 없구나...?'
수술이 시작되었고, 나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의사이기에, 내 손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기에 잡생각을 접어두고 수술에 집중했다.
강선생님의 손놀림은 여전했다. 완벽, 그 자체.
더 이상의 발전이 필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선생님 출혈량이 너무 많아요!"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수술 중 수술 부위에 출혈이 생겨 시야를 가렸다.
"석션"
"선생님, 출혈이 안 잡혀요!!"
긴급한 위기 상황이 들이닥쳤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눈을 깜빡일 시간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이런 상황에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강선생님이 갑자기 수술을 멈추고,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 출혈이요!!"
조금 소리를 높여 불러보았다. 그래도 강선생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긴급한 상황에서 넋이 나간듯한 강선생님이 돌아오기를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레지던트이지만, 환자를 위해 책에서 본대로 출혈을 잡았다.
"휴...."
수술실을 맴돌던 압박감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강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수술. 마저 하셔야죠"
그 말을 하니, 곧 정신을 차린듯한 강선생님이 다시 수술을 시작했고, 다행히도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감정이 북받친 나는 수술실을 나가고 있는 강선생님을 붙잡았다.
"선생님, 오늘 뭐 하신 거예요?!"
감정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큰소리를 냈다.
"무슨 뜻이죠?"
하... 모르는 척, 하시겠다? 오늘 일 까발려지면 명예에 금갈까 봐? 이때까지 쌓아 놓은 게 무너질까 봐?
나, 참 어이가 없네..
"선생님, 방금 환자가 죽을뻔했습니다! 의료 사고요!"
"정 선생"
"네?!"
"그래서, 환자가 죽었습니까? 의료사고가, 났습니까?"
"나진 않았죠, 하지만...!"
"그럼, 왜 그러십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쓸데없이 감정 낭비... 참 보기 안 좋군요."
"선생님, 그래도 오늘 같은 상황이...!"
"정 선생, 나는 정 선생 직장 상삽니다. 1년 차 레지던트가 전문의한테 지금 뭘 가르치려는 겁니까?"
".... 아.... 아뇨...."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레지던트, 선생님은 전문의.
그건 반박할 수도 부정할 수도, 바뀔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제 나와주시죠?"
앞길을 막고 자신 있게 소리치던 내가 한순간 팩트 한 마디에 쭈글해져 길을 비켰다.
하....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답도 물어보지 못했다.
오늘 여러모로 되는 일이 없었다.
왜 하필 오늘, 내가 들어가는 수술에다가, 강선생님 수술이었을까...
감히 상사에게 큰 소리를 친 내가 참 우스꽝스러운 바보 같이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