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여유롭게

6. 책임

제6화
책임.




(남주 시점)




어느 평소와 다를것 없는 하루 중, 어느 시간.
내가 왜 그랬는지 알수 없었다.
왜 내 연구실을 놔두고 전공의들 방에서 쉬었는지 알수 없었다.

단지, 힘들고 오랜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연구실은 멀고, 다리는 풀리고..그래서 어쩔수 없이 가까이 있던 전공의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저려오는 다리를 쉬게 했다. 
아마도 밀려오는 피로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던것 같다.


나는 습관이 있었다. 나 말고 다른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잠들지 않는 습관.
사실 그 습관은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일종의 생존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잠깐 눈을 감기만 하고 생각을 했다.
어떤 생각이냐고?.. 아주 행복한 생각.. 비밀이다.아직은..



시간이 몇분지나지 않아, 누군가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난 실눈을 뜨고 누구인지 확인했다.
'또 그 여자네..아니, 전공의라 부르는게 맞나..?'

그 여자는 바보같은 자세로 밖으로 조용히 나가려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내가 나가는게 맞지..'


"나 안자요"

"..제가 나갈게요. 쉬세요"

그 여자는 내가 말을 하자,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 봤다. 그리고는 나더러 계속 쉬란다. 

"안잔다니까ㅋ 잠깐 생각한 거에요"

어차피 나가려던 참이었기에 내가 나갔다.

"잠깐 생각중이었어요. 쉬어요~"

이건 그냥 인사말. 아무런 뜻없는 영혼없는 말이었다.



"아, 저기..전에 엘리베이터..요.."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여자가 먼저

"엘리베이터요? 언제말씀이신지..."

물론 기억한다. 그렇게 잊기힘든 첫인상을 박아줘놓고...어떻게 잊어..ㅋ 하지만 모르는척 한거다.
그 말을 꺼낼때의 그 여자 표정이 꼭 몰라줬음 좋겠다는것 같아서..



방을 나서고 연구실로 올라가 일을 하려고 컴퓨터를 켰다.

'어!?'
휴대폰이 없었다.
아까 그 방에 놔두고 온 듯 했다.

'아....씨...'

할 수 없이 다시 그 방으로 내려갔다

'어...?'

그 여자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휴대폰이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바다가 참 예쁘네요..ㅎㅎ"

바다?? 잠을 자던 전공의, 그 여자가 잠꼬대를 했다.
근데 왜 바다일까...하필...


그 잠꼬대는 계속되었고,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잠깐 보고 가기로 했다.

"하하하...좋아요..ㅎ"

뭔가 행복한 꿈을 꾸고있는듯 하다.

"다음에도요?...좋아요...ㅎ"

뭐가 계속 좋다는건지... 듣고있자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 자고있을때의 그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행복한 표정을 짓다가...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나도 놀랐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게 아닌가.

그 모습에 웃음이 나는걸 꾹꾹눌러 참았다.


"악!!깜짝아!!"

이내 나를 보더니 또 놀란다. 아...깜짝아.. 왜 나까지 놀래키냐고.. 오늘만 벌써 두번째 당했어...
당한건 나 같은데, 나도 모르게 사과를 했다.

"아, 미안해요..많이 놀랐어요?"

".....강다니엘 선생님...?..."

"아...뭘 놔두고 가서..."

나를 보고 왜거기 있냐는듯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가 뭘 놔두고 갔다고 둘러대니 곧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유치원생보다 더 단순하잖아..'


머쓱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했다.
'근데...아까 좀 이상한걸 느꼈는데...?
아,.....'


보통 우린 같은 의사에게 성만 따고 선생님 혹은 친하면 쌤을 붙혀 부른다.
'킄ㅋ강 다니엘 선생님?ㅋ 너무 길지 않낰ㅋ'

웃겼지만, 내가 안가르쳐주면 다른사람들이 또 웃을것 같아 가르쳐줬다.

"그냥, 강선생님, 정선생님, 이렇게 부르는겁니다"


그 말을 해주고 밖으로 나가 한번 더 웃었다.
"킄ㅋ"










그리고 내 수술에, 그 여자가 있었다.
하...정말 끈질긴 인연이구나..생각했다.

"수술 시작합니다"


물론 그 아니, 그 전공의도 표정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전공의 된지 얼마 안됬으니까, 아마 이 수술이 처음일텐데도 생각보다 잘 해줬다.

처음인데도 서툼이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은 의사가 될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 내 수술에 들어오는것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년 후.




나는 1년이 지나도 별반 다른 생각이나, 행동, 말을 하지 않는다.
내겐 작년이나 올해나 그냥 같은 날들이다.


하루는 회진을 도는데, 우연히, 정말 의도치 않게 남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대화의 주인공은 남녀였다.


"아, 이번에 허리 수술받은 앤데.. 도저히 대화가 안돼요..."

"왜?"

"무슨 사연이 있나 봐요, 이번에 다친 것도 자살하려고 했었데요"

"아..... 레지던트 1년 차가 별 환자 다 만나보네.. ㅎ 원래 그런 애들이 제일 감당하기 힘들어.. 마음을 안 여니까.."

"마음.. 이요?"

"응. 그런 애들이랑 대화라는 걸 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해. 그리고 대화를 해야 해. 그런 애들... 몸이 다 나았다고 퇴원시켜주면 또 똑같이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야. 그땐 살아서 올지, 죽어서 올지는 모르지만.."

"아... . 하.. 어쩌죠.."

"힘들면, 정신과 불러. 그게 제일 편할 거야"

"아뇨, 제가 해볼래요. 제 환자니까 책임. 지고 싶어요"

"그래 해봐. 대신 너무 힘 빼지는 말고.."

"네"




낯이 익는 목소리였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살짝 쳐다봤더니,


또 그 전공의...... 와 나랑 같은 대학 나온 전문의인데....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둘이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대화를 듣자 하니, 레지던트 1년차 의사에게 골치 아픈 환자가 생겼나보다.
자살을 하려던 사연이 있는 아이라...
딱 한마디로 해도 골치 아프다.

그 이름이 기억 안나는 전문의가 하는 말이 맞았다.
그런애들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야한다.

그 과정이 힘든 것이지... 방법은 간단하다.
'대화'


그래도 전공의에겐 감당이 힘들텐데.. 

'아, 내가 왜 남 일에 신경을...끄자, 신경.'

쓸데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제 환자니까 책임. 지고 싶어요"


책임이라 했던가...그 레지던트..

'책임은 개뿔. 책임이란 말을 참 책임없이 하네.'


책임이란 말은 정말 무겁고도 어두운 말이다.
누구도 책임감이 강할수는 없다. 적어도 '내가 책임 질게요.' '저 책임감 강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다 '책임'의 '책'자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책임'이란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 쉽게 말하지 못할것이다. 그토록 무겁고, 어둡고 두려운. 그런것이다 책임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