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망상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

텅 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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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시간조차 멈춘 것처럼 보였다.
벽에는 오래된 그림자들이 얽히고설켜
마치 어둠 속 비명을 토해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창백한 손끝이 떨렸고, 숨조차 얕게 이어질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지만,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과거는 무겁고 잔혹했다.
그날 이후,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작고 사소한 금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금은 퍼지고 갈라져 결국 온전한 형태를 잃고 말았다.
그 상처는 깊었고, 아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마음은 단단히 닫힌 쇠문 뒤에 갇혀 있었다.
그 문은 그녀가 스스로 쌓아 올린 벽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려 할 때마다 그 벽은 더 단단해졌다.
그녀는 두려웠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 벽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벽 뒤에 숨은 채, 그녀는 손끝 하나 내밀지 않았다.
아니, 내밀 수 없었다. 모든 감정이 도려내진 채
남은 건 텅 빈 껍데기뿐이었다.

그녀는 기억 속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아픔은,
몸 속에서 끓어오르는 독처럼 그녀를 망가뜨렸다.
그 고통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누구도 들이지 않으리라.

상처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독은 또 다른 형태의 상처를 남겼다.
고요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지만 그 의문조차도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모든 빛을 거부했다.
눈을 감은 채, 고독 속으로 자신을 가두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리라.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마치 구경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텅 빈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