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망상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

하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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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가을날, 유진은 산책을 나섰다.
그는 손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
무력감 속에서 집을 나왔다.
며칠 전, 사랑하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항상 다정한 눈빛과 말투로 그를 보듬어 주었던 분,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유진은 할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하려 애쓰지 않으려 했지만,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바람 소리도,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도,
그리고 자신의 발걸음 소리조차 고요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때, 눈앞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하얀 나비는 부드럽게 바람을 타며
그의 앞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순간 멈춰 서서 그 나비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나비에서 할머니의 냄새가 느껴졌다.
유진은 손을 뻗어 나비에게 닿으려 했으나,
나비는 손끝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그의 곁을 맴돌았다.

어릴 적, 할머니는 종종 이야기해 주었다.

"유진아, 하얀 나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거란다. 누군가 떠났을 때, 그 영혼이 나비로 다시 찾아오는 거지.
그러니 나비를 보면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그건 우리 곁에 다시 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그냥 옛날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하얀 나비는 마치 그 모든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진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유진은 조용히 그 나비를 따라가기로 했다.
나비는 천천히 숲 속 깊은 곳으로 유진을 이끌었다.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금빛으로 빛나고,
나비는 마치 그 빛을 타고 날아가는 듯했다.
그 뒤를 쫓는 유진의 마음은 점점 차분해졌다.
어쩌면 이 나비는 진짜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 속 작은 공터에 이르자, 나비는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자주 앉았던 그 벤치였다.
유진은 그곳에 앉아 나비를 바라보았다.
나비는 천천히 날개를 접고,
마치 평온한 휴식을 취하듯 고요히 머물렀다. 

유진은 그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손길은 말없이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 순간, 유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슬프지만 따뜻한, 아프지만 위로가 되는 눈물이었다.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나비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유진은 나비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비는 서서히 멀어져 가며 햇살 속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하지만 유진의 마음은 더 이상 텅 빈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나비는 영원히 떠나지 않고,
그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비는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비록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