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망상으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

내 안의 너, 너 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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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은 방.
한 줄기 흐릿한 불빛만이 벽을 타고 번져 거울을 적셨다.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거울 속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너무 깊어 무언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손을 들어 거울에 닿았다.
유리 너머의 나는 역시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거울은 나를 비추는가, 아니면 나를 삼키는가.

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왜 이리도 비어 있는 거야?"
거울 속의 내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어 있는 건 너야."

그 말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나는..."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내 안을 헤집어도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았다. 지금 내 안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멀어져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던 사람들, 내가 이루고 싶다던 꿈들,
심지어는 나 자신의 기억마저.
손에 쥐려 하면 먼지처럼 흩어졌고,
떠올리려 하면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남은 것은 나, 그리고 거울 속의 나뿐이었다.

나는 입술을 물었다.
"넌 뭘 원하는 거지?"
거울 속 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살짝 비틀려 있었다.
"네가 나를 채워주길."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뭘로 채우라는 건데?"
"모든 걸."
거울 속의 나는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너 자신도 모르게 비워낸 모든 것을."

그 순간, 나는 내게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던
그 오랜 순간들을 떠올렸다.
말하지 못한 말들, 붙잡지 못한 순간들,
지나쳐온 길 위에 흘린 나의 조각들.
그것들이 모두 한데 모여 거울 속의 나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거울은 더 이상 내 얼굴만을 비추지 않았다.
그 안엔 내가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우주가 있었다.

나는 거울을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거울을 부순다고 해서 나를 되찾을 수는 없으리란 걸.
부서진 파편 속에서조차 나는 나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결국 네가 나를 삼키겠지."
나는 힘겹게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내가 말했다.
"그럼 너는 살아남을 이유를 찾아야겠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거울 속의 나는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나 공허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닿을 수 없는, 차갑고 끝없이 깊은 무언가가.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거울 속의 나는 사라졌지만, 그 공허는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나타날 것이다.